학계 “백제 유적 파괴 불가피” 강력 반발 초등학교 운동장, 공영주차장, 기숙사식 영어체험마을까지 사적에 속한 동네. 서울 송파구 풍납동이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7000㎡ 정도의 너른 공터에서는 어린이 몇몇이 야구를 하고 있었다. 풍납동 136번지 일대 ‘경당지구’로 이곳 역시 사적이다. 2000년 ‘경당연립’을 지으려다 유물이 나와 공사가 지연되자 이를 참지 못한 조합원 중 일부가 굴착기로 유물을 훼손한 이래 8년간 방치됐다가 지난해 재발굴됐다. 우물터임을 확인하고 흙으로 다시 덮은 이곳은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표류하는 풍납토성(사적 11호)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풍납토성이 백제의 도성으로 추정되면서 정부는 토성 내 일부 지역을 사적으로 지정했고 풍납 1·2동은 2001년 이래 지상 15m 이상, 지하 2m 이상의 건축물은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묶었다.
하지만 정부는 개발만 막았을 뿐 10년이 되도록 제대로 된 발굴이나 문화재 활용 안은 내놓지 못했다. 재산권 행사를 제한당했다며 강력 반발했던 주민들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견디다 못해 먼저 나서서 “발굴을 진행하고 보상할 건 보상하라”고 외칠 정도였다.
대안이 제시된 건 지난 4월. 문화재청은 토성 내 일부 지역의 개발을 허용하는 ‘풍납토성 보존관리 및 활용 기본계획안’을 마련했다. 이 안에 따르면 성벽 등 사적으로 지정된 지역(1권역)은 현상을 유지하거나 정비·복원하고, 사적 주변 핵심시설지구(2권역)는 순차적으로 매입해 발굴조사 한다. 1·2권역에 포함되지 않은 저층 연립주택과 단독주택 등(3권역)은 중규모 건축을 허용하고, 이미 지어진 아파트(4권역)는 관련 법규에 따라 재건축이 허용된다. 계획안대로라면 풍납토성 전역의 가구를 매입해 사적으로 지정·보존해오던 정책의 전환이 불가피해진다.
주민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풍납동 문화재대책위원회 이기영 위원장은 “유물이 발견되면서 이 지역은 죽은 동네가 됐다”며 “주민들이 그동안 느낀 상대적 박탈감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주민들이 집단이주를 원했지만 그것도 안 해줬지 않느냐”며 “보호할 곳은 보호하고, 개발할 수 있는 곳은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계는 풍납토성 보존 정책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며 우려한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지층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형구 선문대 역사학과 교수는 “백제사 복원에 필요한 유일한 유적을 파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주민들의 보상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하지만, 그것이 풍납토성 개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문식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는 “과거 정부 때 전체를 매입해 보존하기로 해놓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책을 뒤집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정부·지자체가 특별예산을 편성하거나 기금을 조성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강경환 보존정책과장은 “주민들이 불편 없이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개보수·리모델링을 허용하려는 것”이라며 “풍납토성의 역사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팀장)·박성준·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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