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알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정보공개가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뒷걸음질치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민 행정감시의 기본인 정보공개법이 정부의 안일한 인식과 행정 편의주의에 가로막혀 ‘무장해제’되고 있다.
본지가 취재한 각종 정보공개 청구 사례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현 정부에서 이와 관련한 법과 원칙이 어떻게 무시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220일 만에 정보를 공개한 통일부=통일부가 공개한 정보공개처리대장에 따르면 지난해 3월3일자로 청구된 ‘각 부처별 위원회 현황과 유관단체의 현황자료’를 공개한 날짜는 10월 10일이다. 법에서 정한 정보공개 처리 시한(10일)을 무시한 채 220일 만에 공개한 것이다. 같은 내용을 다른 부처에 청구했을 때에는 대부분 10일 이내 자료가 공개됐다.
지난해 5월2일 ‘남북 간 경의선과 공사 관련 협의 문서 및 통일부 장관 업무추진비’ 정보 공개도 처리시한을 170여 일이나 넘긴 10월22일에야 공개했다.
통일부는 지난해 2월25일∼9월4일 공개를 결정한 44건의 정보공개 청구 중 21건을 처리 시한 내에 공개하지 않았다. 이 중 정보공개 결정통지 연장시한(20일)을 어긴 것도 12건에 이른다.
◆서울경찰청, 개인정보 거론하며 격려금 영수증 공개 거부=참여연대는 지난해 10월 31일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의 업무추진비 상세지출명세와 그 증빙자료 공개할 것을 청구했다.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 등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업무추진비 지출 증빙자료 공개대상에 속한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이 공개한 증빙자료는 세금계산서와 신용카드 영수증뿐이었다. 격려금 지출을 입증할 영수증은 비공개했다. 개인 자료가 있는 격려금 수령 영수증은 비공개 대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경찰청은 영수증에서 개인자료 부분을 지운 채 공개해 대조를 이뤘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서울경찰청에 ‘경찰청에서는 격려금 수령 영수증까지 보내왔다’고 이의를 제기하자 담당자는 ‘어디, 누구냐’며 따진 뒤 ‘난 바쁜 사람’이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기도 했다”면서 “나중에야 태도를 바꿔 사과하며 해당 자료 공개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정보공개 청구 아예 무시하는 성남문화재단=경기 성남시 산하의 성남문화재단은 지난해 9월 재단 이사장의 해외출장 명세, 상임이사의 관용차량 실태 등에 대한 정보공개센터의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했다. 재단 측은 ‘민법상 재단법인이므로 정보공개 대상 기관이 아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성남문화재단은 성남시가 출연한 기관으로 시 정보공개조례에 따르면 정보공개 의무가 있다. 특히 동일한 민법상 재단법인인 서울문화재단과 경기문화재단이 동일한 청구에 공개한 것을 감안하면 비공개는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성남문화재단은 그동안 재단이 정보공개 대상인지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묻는다는 이유로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법제처는 지난달 16일 성남문화재단은 정보공개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법제처가 성남시 조례를 검토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지난주 성남문화재단이 정보공개 대상임을 분명히 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따라 성남문화재단은 청구한 지 5개월이 지나서야 정보공개센터에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청와대, 인수위 명단공개 외면=청와대는 일부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담당 공무원 성명을 삭제한 채 공개하고 있다. 이는 정보공개법상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의 성명과 직위를 공개하도록 한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다.
게다가 청와대는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언론과 시민단체 등이 공개를 요구한 인수위 참여자 명단을 계속해서 공개하지 않는 등 비공개 풍토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복사는 안 되고 열람만 허용하는 국회사무처=한 KBS 기자는 2007년 국회의원들의 해외 체류와 관련해 국가에 낸 방문외교 계획서, 외교활동 경비명세가 담긴 문서, 이를 증빙할 수 있는 영수증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국회사무처는 무려 8만쪽에 이르는 자료 복사를 거절한 채 열람만 허용했다. 사실상 자료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2004년 청구자가 원하는 대로 공개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도 정면으로 어긋난다.
결국 이 기자는 본인 비용부담으로 국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벌였고, 지난달 29일에야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국회는 2년간 국민 혈세의 용처를 감춰온 셈이다.
정보공개 공공보도팀=김용출·나기천·장원주 기자 kimgija@segye.com, 유선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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