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
북한의 메시지는 미국이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하라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6월26일 핵 신고서를 제출함으로써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단정하고,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을 삭제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른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가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한 불만으로 위기조성 전술 차원에서 대미 압박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해 10·3 합의에 따라 북한이 완전하고 정확한 핵 프로그램 신고서를 제출하고,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하면 미국은 그에 대한 대가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키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 신고서를 제출한 다음날 미 의회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할 방침임을 통보했다. 45일간의 의회 통보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미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6자회담 당사국들이 모두 만족하고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핵 검증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며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는 것을 유보하고 있다.
미국은 ‘신고와 검증은 한 패키지’라면서 플루토늄뿐만 아니라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 우라늄 농축 의혹 등도 포괄적으로 핵 검증체계에 담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검증방법에서도 ‘특별사찰’에 준하는 샘플 채취와 불시 방문,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 허용 등을 요구했다. 지난 22일 북한과 미국은 뉴욕에서 북핵 프로그램 검증체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협의를 벌였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판을 깨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위한 대미 압박용으로 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핵 해결 2단계인 불능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외교적 실패에 따른 여론의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금은 부시 행정부를 압박해 테러지원국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일차적 목적을 두고 위기를 조성한 듯싶다.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한 법적 요건을 충족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결단하면 해제는 가능하다. 따라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가 목표이지 당장 판을 깨자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와의 협상이 여의치 않으면 북한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누리면서 미국의 다음 정부와 협상하려는지도 모른다. 북한은 최악의 경우 판을 깨더라도 핵보유국의 지위를 유지하며 핵무기를 억지력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불능화 중단카드를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대해 핵보유 인정이냐 테러지원국 해제냐 양자택일하라는 것이다.
북한이 불능화 중단 조치를 선언한 데는 긴장으로 치닫고 있는 최근의 한반도 정세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해당 기관들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를 거론한 것으로 봐 외교부가 냉각탑 폭파 등 ‘성급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되지 못한 것에 대해 군부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불능화를 완수하고 비핵화를 촉진하려면 한반도 정세가 완화돼야 한다. 북한은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경색,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연합군사훈련 실시 등을 ‘핵전쟁 위험’ 증대로 인식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 긴장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 폐기의 동기보다는 핵 보유의 동기를 강하게 가지게 할지도 모른다. 남북 갈등이 심화되면 북한이 핵 보유의 동기를 미국과의 대결뿐만 아니라 남북 대결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새만금 AI 밸리](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6/09/128/20260609517674.jpg
)
![[데스크의눈] 균형발전과 지방선거 그리고 2030 집회](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14/128/20260414521104.jpg
)
![[김상미의감성엽서] 그림이 주는 선(善)](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5/26/128/20260526517047.jpg
)
![[오늘의시선] 선관위 개혁,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2/08/30/128/20220830525048.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