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모시 관을 구경하고 우리는 금강하구 둑을 지나 전라도로 향한다. 다리하나를 사이에 두고 충청도와 전라도가 경계선이다. 군산항에는 컨테이너 박스가 많다. 지방 곳곳에 길이 잘 뚫어져 있다. 익산까지 마중 나가 귀한 손님을 맞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는 반가움이 번진다.
주꾸미 철판 볶음을 시킨다. 나이든 아주머니가 홀 서빙을 하는데 영 거북스럽다. 아직 그런 문화에 익숙지 않아서 일까? 외국 영화에서 보면 할아버지도 서빙을 하는데 나이든 아주머니는 서빙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자꾸 우리일행을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아 영 마음이 쓰인다.
비체 팰리스를 지나 바닷가를 돌아가면 또 다른 바다가 보인다. 사람들이 많기에 거기에 차를 대고 우리도 합류한다. 갯벌에서 이루어지는 그 넉넉함, 양동이를 든 사람, 호미와 삽을 든 사람, 조그마한 통에다 맛소금을 들고 나온 사람도 있다. 조개를 캐기 위해 물 빠진 섬 주변을 따라 조개 캐기에 열중이다. 아이들의 함박웃음에 좋아하는 어른들, 어른도 아이도 끝이 뾰족한 마요네즈 통처럼 생긴 통에다 소금을 넣고 조금씩 부어주면 조개가 그 소금 맛을 보려고 입을 쏘옥 내 민단다. 그때 얼른 조개를 캔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친구를 따라 염포로 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는 물 반 조개 반 부대자루에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왔던 기억도 있다. 조개를 삶아 건져 먹던 그 짭조름한 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부슬 부슬 비가 내리는데 나도 따라 들어간다. 물 빠진 바닷가에는 가족들의 행렬이 이루어지고 삶의 환희를 찾아 긴 장화를 신고 쩌벅 쩌벅 걸어간다. 어깨위에 삽을 걸친 사람, 땅에다 대고 질질 끌고 가는 사람, 저마다의 포즈를 취하며 하루를 만끽하는 사람들 틈에 재미를 더한다. 누가 그랬든가? 서해바다 구경은 이 맛이라고.......조개를 캐보지 않고는 서해 바다에 온 의미가 없다고 한다. 몰랐던 생활의 일면들, 바다가 남기고 간 의미를 되새기면서 돗자리의 따뜻한 기운을 감싸 안는다.
빨간 망태자루에 한가득 들고가는 저 아저씨는 남보다 먼저 바다를 알았으리라. 물컹한 고무신에 헐렁한 바지, 그 여유로운 걸음걸이에 세상 살아가는 법을 익혔으리라.
모래사장에서 골프연습을 하는 골프 마니아들도 있다. 길은 있어도 가지 못하는 길이 있는데 남겨진 발자국을 바다는 흔적없이 지운다. 슬픈 사람이나 즐거운 사람이나 괴로운 사람이나 행복한 사람이나 모두의 아픔을 기억조차 못하게 지우는 의미를 파도는 또한 알기에 간간히 돌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소리만 남길 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닷소리는 잔잔히 물결만 남긴다.
이 바다가 좋아 한없이 보고 있노라면 새들이 날아가는 것을 본다. 그래 저 새들도 살기위해 수천 마일을 날며 때로는 바다를 횡단하지 않던가? 살아가기 위한 휴식의 공간, 그 공간이 없으면 우리는 어디서 숨을 쉴 것인가?
서로를 잃지 않으려고 손잡은 터전은 작은 사랑을 이루어 간다. 생명처럼 질긴 단결심으로 납작하게 돌 위에 붙어서 서식하는 담쟁이 넝쿨, 바닷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오르던 손 멈추고 다시 한 번 힘차게 조상을 생각한다. 옆으로 위로 또 옆으로 , 아래로 뻗어서 자생하는 힘찬 줄기는 땅나리꽃 피어있는 작은 섬바위에서 갈매길의 울음도 파도의 기침도 다 들었을 터이지. 숱한 조개들의 한숨소리도 들었을 을 터이고 바다가 삼키고 간 물고기의 아픔도 다 알고 있겠지.
흔들리며 살아 온 고개만큼이나 붉은 자태로 세월을 지키고서 꽃잎을 뒤집어 너의 그 화사함을 자랑이나 하듯 꼿꼿하게 서서 자신을 지키는구나.
점점 불어나는 물 때문에 돌 건너 밖으로 나와야 한다. 행여 갇혀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저만큼 바위위에서 어서 나오라고 손짓하는 남편을 보면서 그래도 나를 아끼는 사람은 역시 남편뿐임을 느낀다.
/ 이명희 myung769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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