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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 작업실에서 새로운 작업 ‘춤추는 박스’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 김봉태 화백. 그는 늘 긍정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작업의 모토라고 말한다. |
평면과 입체를 오가며 나름의 조형세계를 집요하게 천착해 나가는 한국 추상화단의 중진 김봉태(71) 화백의 새로운 작업인 ‘댄싱 박스(Dancing box)’ 시리즈의 탄생과정이다. 상자를 모티브로 한 수많은 드로잉은 그에게 다양한 조형세계를 열어주었다. 어릴 적 색종이 놀이 같은 유희적 동심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작업과정도 놀이하듯 재미가 있다고 한다.
춤추는 박스작업은 2005년 말부터 시작됐다. 작가는 어느 날 우연히 로댕 갤러리에 설치된 ‘생각하는 사람’과 ‘지옥의 문’을 바라보고 왜 함께 놓여 있어야 하는가에 의문을 던졌다.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라, 그는 그때부터 환희의 문, 천국의 문을 염두에 뒀다. 그즈음 그는 우연히 길을 걷다가 슈퍼마켓 앞에 버려진 박스 더미를 보게 된다. “자기 생명(기능)을 잃은 처량하게만 보이는 박스에서 인간의 삶을 보게 됐습니다.”
그는 3개월간 약국, 슈퍼마켓 등에서 100여개의 박스를 모아 색칠을 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드로잉을 하는 등 요리조리 궁리를 하며 작품의 모티브로 삼았다. 팝아트와 기하학적인 요소, 인간의 삶까지 아루르고 있어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투명한 플렉시글라스 양면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박스들의 모습은 깊이있는 입체감까지 준다. 전통 한국화의 배채 같은 느낌이다.
상자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로 승화되고 있다. “상자는 어린 시절 우리에게 귀한 선물을 전해주던 대상이었지요 .귀한 생명도 죽으면 사라지는데 인간도 늘 남에게 상자처럼 선물을 줄 수 있는 모습이 돼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그에게 상자는 고정관념의 틀을 표상하기도 한다. 상자의 사각틀이 벗어져 자유로이 화폭과 공간을 누빈다. 상자의 면을 재구성하고 다양한 색을 부여한 평면작업과 알루미늄 조형작업은 자유로운 인간 영혼의 표출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자신의 작업을 색면추상이나 기하학적 추상의 틀에 집어 넣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은 이 세상에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왔습니다. 따라서 제 작업의 초점은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가 신바람나는 화려한 색체를 쓰는 이유다. 특히 오방색이 녹아 있는 원시미술과 민화를 좋아한다.
“세계 어디를 가도 원시미술은 대개가 오방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명쾌하고 발색도 좋아 즐겨 쓰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캘리포니아 사막의 열기와, 강한 햇빛에서 그림이 밝아졌다. 한국 첫 전시 땐 가볍고 천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사실 한 나라의 수묵화와 유교가 들어오면서 색이 절제됐습니다. 여기에 일본모노크롬도 한몫 했지요.” 그는 샤머니즘의 원색을 주목한다. 다양성이 공존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역사드라마의 화려한 색상에서 이를 확인한다고 한다. “디자인을 전공한 아내가 색감의 균형을 조언해주고 있습니다. 아내는 종종 저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비평자지요.”
그는 작업 외엔 국민대와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아카데미에 간간이 출강하는 것이 외부활동의 전부다. 골프 등 특별히 즐기는 것도 없다.“생전에 장욱진 선생님께서 작가는 잡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지요. 이제야 그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는 평창동 집 지하에서 작업을 한다. 작업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외부활동은 엄두도 못 낸다는 것이다. 강의도 가르친다기보다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아이디어를 얻고 상식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김 화백의 부친은 한국전쟁 직후 만들어진 문화영화 ‘낙동강’의 제작자였다. 일본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사진작품을 취미 삼아 했다. “지금도 아버지의 멋진 젖무덤 사진이 생생합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카메라를 잡게 됐습니다.” 그의 사진작업도 기대가 된다. 16일∼8월5일 갤러리현대. (02)734-6111
편완식 문화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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