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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힙합, 홍대에서 BTS까지 | 세계일보 탐사보도

한국힙합, 홍대에서 BTS까지

글세계일보 탐사보도팀그림김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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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SIDE A 4008곡 가사로 본 한국힙합 30년 · 쇼미더머니 경연곡 176곡
세계일보 탐사보도 · 한국힙합 30년

“돈 자랑만 한 건 아니었다”… 4000곡 가사로 본 한국힙합 30년

돈, 슈퍼카, 명품. 한국힙합을 떠올리면 재력을 과시하는 ‘플렉스(flex·자랑하다)’가 연상된다. 서로를 깎아내리는 ‘디스(diss·비판하다)’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이미지가 자리 잡은 데는 부와 성공을 내세운 가사와 ‘디스’ 배틀(대결)을 대중에게 선보인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의 영향도 작지 않다. 하지만 30여년치 한국힙합 가사를 모아 들여다보니 예상과 달랐다. 래퍼들은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고, 세상을 비판하고, 음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12일 세계일보가 1990년 이후 발표된 주요 한국힙합 4008곡의 가사를 분석한 결과, 돈과 명성 등 현재의 성공을 과시하는 플렉스가 담긴 가사의 비중은 5.3%였다. 특정 인물이나 세력을 공격하는 디스의 비중도 6.6%에 불과했다. 반면 연애와 이별 등을 다룬 사랑은 17%로 가장 높았다. 삶과 가치관을 돌아보는 개인적 사유는 9.5%, 사랑을 제외한 불안·우울·고독 등 내면 감정은 7.8%였다. 사회 현실과 음악에 대한 헌신도 각 7.5%로 플렉스보다 비중이 컸다.

1989년 이후 한국힙합(4008곡) 가사 주제별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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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별 주제 비중 평균, 결측치 제외

자료: 세계일보 탐사보도팀 가사 분석

그림 김수용

힙합의 비트(박자)를 타는 것은 한국 청년의 역사를 운반하는 것이었다. 가사는 래퍼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각 시대 청년들이 무엇을 보고 겪었는지를 담았다. 강일권 대중음악평론가는 한국힙합의 고유한 색을 “한국에 살면서 그 나이에 겪는 경험을 가사에 녹여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평론가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정서를 담은 가사가 당시 팬들의 공감을 얻었다며, 그런 이야기는 다른 나라 힙합에서는 들을 수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19년간 영어 가사 2만3461곡을 번역해 온 래퍼 출신 의사 댄스디(본명 권우찬·39)는 힙합의 특징으로 자유로운 표현을 꼽았다. 강북삼성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인 그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마저도 표현할 수 있는 게 힙합”이라며, 직접 가사를 쓰고 랩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풀어낸다고 말했다.

현재 활동하는 래퍼들도 가사의 출발점으로 자신의 경험을 삼았다. 래퍼 마이노스(43·최민호)는 “10대, 20대, 30대, 40대의 나를 그때 가사에 담아내야 한다”며 “지금의 내가 생각하고 있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래퍼 권선홍(32)도 “힙합이라는 음악은 원래 자기 얘기를 하는 장르”라며 “클래식이나 아이돌 음악을 좋아했다면 내 음악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못 했을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분석에서는 한 곡을 하나의 주제로만 분류하지 않았다. 한 노래 안에 돈과 가족, 불안,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함께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사에서 각 주제가 차지하는 의미상의 비중을 나눠 곡별 합계가 100%가 되도록 했다. 기사에 제시한 수치는 해당 기간 곡들의 주제 비중을 평균한 값이다. 성공에 대한 이야기는 두 가지로 분류했다. 고난과 무명을 딛고 올라온 이야기는 ‘성장 서사’, 이미 얻은 돈과 명성을 드러내는 내용은 ‘플렉스’다.

시기별 한국힙합 가사 주제 변화

단위: %

장르·사회 = 사회·현실 비판+음악 헌신+크루 자긍심 · 성공 서사 = 성장·상승+플렉스 · 내면 = 내면 감정+개인적 사유·철학

※시기별 곡 수: 181/1005/1204/600/541/477 ※2026년은 17곡만 포함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반올림

자료: 세계일보 탐사보도팀 가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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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로 보면 가사의 관심사가 달라진다. 1990∼1998년에 발표된 181곡에서 사랑이 차지한 비중은 평균 44.6%였다. 랩이 대중가요 안에서 하나의 표현방식으로 널리 쓰이던 시기의 특징이다.

시기별 사랑 비중

단위: %
그림 김수용

언더그라운드(방송·대형 기획사 밖에서 활동하는 음악 영역) 힙합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1990년대 말에는 장르와 사회를 향한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1999∼2005년에 발표된 1005곡에서 사회 현실은 10.4%, 음악에 대한 헌신은 8.7%, 크루 자긍심은 4.3%였다. 세 주제의 합은 23.4%다.

외환위기 직후 청년들이 마주했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15~29세 청년 실업률은 1997년 5.7%에서 1998년 12.2%로 치솟았고 1999년에도 두 자릿수(10.9%)를 유지했다.

시기별 장르·사회 비중

단위: %

그림 김수용

이 시기 가사에서는 개인의 부와 성공보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장르에 관한 이야기가 더 큰 몫을 차지했다. 사회 현실에 대한 비중은 1999년 15.8%, 2000년 15%였다. 음악에 대한 헌신은 2001년 13%까지 높아졌다. 힙합을 향한 애정, 자신들이 만드는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가사에 담겼다.

2010년대 들어서는 자신의 성공에 관한 이야기가 커졌다. 성장 서사와 플렉스를 합친 비중은 2006∼2011년 평균 6.6%에서 2012∼2016년 16.7%로 뛰었고, 2017∼2020년에는 20.7%까지 높아졌다. 반면 사회 현실 비중은 1999∼2005년 10.4%에서 2017∼2020년 5.5%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시기별 성공 서사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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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돈과 명성을 직접 드러내는 플렉스가 빠르게 늘었다. 1999∼2005년 평균 1.3%였던 플렉스 비중은 2017년 11.1%, 2018년 13%, 2019년 13.4%, 2020년 14.0%로 4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이 무렵은 청년 소비문화를 설명하는 ‘욜로(YOLO)’가 부상한 때와도 겹친다. 욜로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미래를 위한 준비보다 지금의 행복과 경험에 돈을 쓰는 태도다. 도서 ‘트렌드 코리아 2017’은 ‘욜로 라이프’를 그해 주요 트렌드로 꼽았다. 이 시기 청년 가구의 빚도 늘었다.

FLEX

플렉스 14.0%

2020년 발표곡 가사에서 플렉스가 차지한 비중 · 1999~2005년 평균은 1.3%

그렇다고 돈 이야기가 다른 목소리를 밀어낸 것은 아니었다. 플렉스가 커진 2017∼2020년에도 내면 감정과 개인적 사유를 합친 비중은 평균 19.6%로, 성장 서사와 플렉스의 합계인 20.7%와 비슷했다. 2019년에는 내면 감정이 10.6%, 개인적 사유가 10.3%로, 둘을 합하면 20.9%에 달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며 한국 경제는 성장해 왔지만, 2017년 15~29세 청년 실업률은 9.8%로 두 자릿수에 육박했다. 높아진 국가 소득 수준이 청년 개인의 안정까지 보장하지는 못한 것이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까지 겹쳤다.

시기별 내면·성공 서사 비중

단위: %
그림 김수용

2021년은 내면 감정과 개인적 사유의 합이 22.8%로 성장 서사와 플렉스의 합계(19.9%)를 앞섰던 때다. 2022년에도 각각 22.5%, 19.7%였다. 불안·우울·고독 등을 담은 ‘내면 감정’만 보면 변화가 더 선명하다. 2017년 7.8%였던 비중은 2019년 10.6%로 높아졌고, 2021년에는 14.6%로 2010년 이후 가장 높았다. 2022년에도 12.2%를 차지했다.사회 현실을 직접 다루는 비중은 줄었다. 1999∼2005년 10.4%였던 비중이 2021∼2025년 평균 3%로 떨어졌다. 사회를 향한 목소리가 작아진 자리에서 성공과 좌절, 불안 등 개인의 경험이 가사의 주요 축으로 남았다.

래퍼 노아차(오세관·29)는 “1세대는 저항정신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면 요즘은 장르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다. 그 사람이 얼마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지가 요즘 시대의 힙합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지가 요즘 시대의 힙합”

— 래퍼 노아차
박스 쇼미더머니 경연곡 176곡 분석

욕설·디스 난무는 편견… 성장 서사로 샤라웃!

ON AIR

쇼미더머니

01그림 자리

그림 김수용

‘쇼미더머니’(쇼미)가 키운 랩의 문법은 자신의 성공담에 가까웠다. 쇼미는 마니아의 음악이었던 힙합을 대중문화의 한복판으로 밀어 올린 엠넷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인기가 커지면서 ‘쇼미 힙합’이라는 말도 생겼다. 프로그램 속 욕설과 디스(diss·비판하다), 자극적인 가사가 힙합의 얼굴처럼 굳어졌다.

12일 세계일보가 시즌1이 방송된 2012년 이후 올해 시즌12까지 경연곡 176곡을 분석한 결과, 실제는 달랐다. 래퍼들은 상대를 공격하기보다 가난과 무명을 버틴 과거를 곱씹었고, 손에 쥔 돈과 명성을 자랑했다. 고생 끝에 올라선 과정을 노래한 ‘성장 서사’가 가사의 평균 21.2%를 차지했다. 돈과 명성, 지금의 성공을 뽐내는 ‘플렉스’는 18.1%였다. 둘을 합하면 39.3%다. 세계일보가 분석한 한국힙합 4008곡에서는 이 비중이 평균 11%였다. 쇼미 방영과 같은 시기에 발표된 한국힙합 1619곡에서 ‘플렉스’와 ‘성장 서사’의 합은 18.7%였다. 경연곡에서 이 비중이 두 배 넘게 높았다.

한국힙합 가사 속 ‘성공 서사’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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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별 주제 비중 평균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반올림한 수치 ※격자 1칸은 1%로, 반올림해 환산

자료: 세계일보 탐사보도팀 가사 분석

가장 큰 주제 하나만 따져도 비슷했다. 쇼미 경연곡 가운데 69곡은 ‘성장 서사’, 41곡은 ‘플렉스’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176곡 중 110곡(62.5%)은 성장 서사나 플렉스가 중심이었다. 10곡 중 6곡꼴로 성공 이야기를 노래한 셈이다. 같은 시기 한국힙합에선 이 비율이 23.4%였다.

정작 쇼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디스’는 많지 않았다. 경연곡의 디스 비중은 8.9%로 같은 시기 한국힙합(9%)과 사실상 같았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보다 자신이 어디에서 출발해 얼마나 올라왔는지를 보여주는 말이 쇼미에서 더 뚜렷했다는 의미다.

쇼미더머니 시즌별 ‘성공 서사’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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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별 곡 수: 6/4/10/11/18/14/19/11/21/22/12/28 ※시즌11과 시즌12 사이 4년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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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말하는 방식은 시즌마다 달랐다. 2012년 시즌1에서 성장 서사는 30%였지만 플렉스는 0.8%에 그쳤다. 초기 쇼미 무대의 래퍼들은 무엇을 가졌는지보다 어떻게 버텼는지를 노래했다. 무명과 가난, 실패를 견딘 시간이 일종의 자격증이었다.

쇼미가 한창 달아오르던 무렵 고등학생이던 래퍼 히피쿤다(김지호·27)도 이런 가사에 기댔다. 그는 “미대 입시 학원비가 너무 비싸 그림을 포기해야 했을 때 쇼미더머니가 미친 듯이 끓기 시작했다”며 “그때 힙합 가사는 대부분 ‘이런 어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걸로 먹고산다’는 얘기였다. 나도 바닥에서 시작하지만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학창 시절을 버텼다”고 말했다.

돈과 명성이 전면에 나온 것은 쇼미의 대중성이 커진 뒤였다. 플렉스 비중은 2014년 시즌3에서 17.5%, 2016년 시즌5에서 23.3%로 올랐다. 2018년 시즌7에는 29.2%로 정점을 찍었다. 같은 시즌 성장 서사는 11.3%였다. 성공 이야기의 중심이 성장 서사에서 플렉스로 기울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런 변화를 ‘멋의 변화’로 설명했다. 그는 “쇼미더머니 이후 힙합의 멋은 밑바닥에서 상류사회로 올라가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부를 과시하는 가사가 계속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아니다. 2020년 시즌9에선 성장 서사가 31.4%로 뛰고 플렉스는 13.8%로 내려갔다. 2021년 시즌10에서도 성장 서사가 26.8%로 플렉스(10.5%)를 크게 앞섰다. ‘내면 감정’과 ‘개인적 사유’를 합친 비중도 이 시즌 22%까지 높아졌다.

경연이라는 형식도 무시할 수 없다. 래퍼는 몇 분 남짓한 무대에서 자신이 누구이고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 심사위원과 시청자를 설득해야 한다. 이런 구조가 성공 서사를 키웠을 수 있다. 김 평론가는 “쇼미더머니는 짧은 시간 안에 ‘나’라는 캐릭터를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한 경연 프로그램”이라며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기 위해 내면을 고백하고 개인을 표현하는 가사가 등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공 서사는 다시 강해졌다. 2022년 시즌11에서는 성장과 플렉스를 합친 비중이 51.3%로 역대 가장 높았다. 2026년 시즌12도 41.3%였다. 쇼미 속 래퍼들은 끊임없이 무대 위에서 성공을 증명해왔다.

▶PLAY SIDE B 청년 래퍼 80명 설문 · 여성 대상화 · K팝 속 랩
청년 래퍼 80명 설문

성공 리스펙, 현실은 팍팍… ‘슬픈 자기소개서’

“난 핸들이 고장 난 8t 트럭.”

다이나믹 듀오 ‘고백(Go Back)’(2005)

2인조 힙합 그룹 ‘다이나믹 듀오’가 2005년 발표한 노래 ‘고백(Go Back·돌아가다)’의 한 구절이다. 20대 중반의 방황을 그린 이 곡은 “이건 슬픈 자기소개서”라는 말로 시작한다. 가사 속 화자는 스물여섯 번째 생일을 맞아 넓어지는 이마를 걱정하고, 음악을 붙잡고 사는 불안을 털어놓는다. 월세살이에 지쳐 빨리 집을 사고 자리를 잡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친다. 21년 전 노래지만, 그 속의 고민은 현재 청년들의 사정과 다르지 않다.

래퍼 크루셜스타(박세윤·37)는 지난해 발표한 ‘Man’s Fear’(남자의 두려움)란 곡에서 “낭만이 내주진 않지 월세”, “센 척을 해보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내 머리에 가득해”라는 가사를 썼다. 래퍼 릴재우(조재우·28)도 같은 해 ‘내가 공무원이었다면’에서 “현대백화점 10층에 가서 영화를 보기보다는 7층의 가구를 고르고팠어”라고 노래했다. 비싼 월세를 감당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적인 미래를 꾸리는 일은 20년이 지나서도 청년의 걱정으로 남아있다.

청년 래퍼들이 가사에 가장 많이 담는 이야기도 지금 자신의 삶이었다. 세계일보가 8월20일부터 9월21일까지 한 달 동안 청년 래퍼 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사에 주로 담는 이야기’(최대 3개 선택)를 물었다.

그 결과 65명(81.3%)이 ‘나의 삶과 경험’을 선택했다. ‘꿈과 목표’(43명·53.8%), ‘사랑과 인간관계’(42명·52.5%)가 그 뒤를 따랐다. ‘감정(불안·우울·분노 등)’을 고른 사람도 28명(35%)에 달했다. 반면 ‘성공과 부’를 선택한 사람은 12명(15%), ‘실력 과시·경쟁’은 7명(8.8%)에 그쳤다. 돈과 명성을 드러내고 경쟁자를 공격하는 힙합의 익숙한 이미지와 달리, 응답자들이 주로 가사로 쓴다고 밝힌 것은 일상의 경험과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청년 래퍼 80명이 가사에 주로 담는 이야기

최대 3개 선택 · 단위: %

※조사 기간 2026년 8월 20일~9월 21일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설문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 래퍼가 성공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쓰고 싶었지만 아직 쓰지 못한 이야기’를 묻자 80명 중 35명이 답했는데, 이 가운데 7명이 성공이나 과시를 꼽았다. 활동 3~5년 차인 20대 초반 남성 래퍼는 쓰지 못한 이야기로 “자신감 있게 하는 성공의 이야기”를 들고, 이유를 “아직 성공을 못 했다”고 적었다. 1~2년 차인 20대 후반 남성 래퍼는 “아직 성공 못 했고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3~5년 차인 30대 후반 남성 래퍼는 ‘플렉스(flex·자랑하다)’와 실력 과시를 잘 못 쓰는 이유를 “지금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서”라고 했다. 1~2년 차인 20대 초반 남성 래퍼는 높은 곳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자기 위치를 잘 알기에 늘 낮은 곳의 이야기만 쓰게 된다고 털어놨다.

가족과 친구를 다룬 이야기는 힙합에서 쉽게 볼 수 없었다. 12일 세계일보가 1990년 이후 한국힙합 주요 4008곡의 가사를 분석한 결과, 연애와 이별을 다룬 사랑은 평균 1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가족·친구를 다룬 가사는 3.1%로 사랑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자 기 소 개 서

지원자 청년 래퍼 80명 사진
작성 기간 2026. 8. 20 ~ 9. 21
주로 쓰는 이야기 나의 삶과 경험 65명(81.3%)
가족 이야기 주로 쓴다 80명 중 2명 → 아직 쓰지 못했다 35명 중 6명
성공 이야기 아직 쓰지 못했다 35명 중 7명“아직 성공 못 했고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다”
아직

지금의 청년 래퍼들에게도 가족은 쉽게 꺼낼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가사에 주로 ‘가족을 담는다’는 사람은 80명 중 2명(2.5%)뿐이었다. 그러나 아직 쓰지 못한 이야기엔 35명 가운데 6명이 가족을 꼽았다.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활동 3~5년 차인 20대 후반 남성 래퍼는 “가족. 소중하다 보니 어렵다”는 의견을 남겼다. 활동 1년이 안 된 10대 남성 래퍼는 “쓰고 싶지만, 가족 얘기를 하면 마음이 아파 못 쓴다”고 적었다.

박스 가사 속 여성

한국힙합은 여성을 어떻게 불러왔나

한국힙합에서 여성은 사랑과 이별의 상대인 동시에 욕망과 소비의 대상으로 등장했다. 올해에도 래퍼 ‘리치 이기’의 가사에 논란이 일었다. 여성을 함부로 대한다는 표현과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으로 묘사한 가사가 주목 받았다.

세계일보가 1990년 이후 발매된 주요 한국힙합 4008곡을 분석한 결과, 여성을 향한 사랑·연애 감정이 가사에서 차지한 비중은 평균 7.4%였다. 여성을 신체나 성적 정복·소비의 대상으로 묘사한 ‘여성 대상화’는 4.1%였다.

평균 비중만 보면 여성을 향한 사랑이 여성 대상화보다 컸다. 그러나 그런 표현이 등장한 노래의 수는 반대였다. 여성을 향한 사랑이 조금이라도 포함된 곡은 508곡으로 전체의 12.7%였다. 여성 대상화가 등장한 곡은 743곡, 18.5%였다. 여성 대상화 표현이 더 많은 노래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이번 분석에서는 기존에 ‘사랑’으로 분류했던 가사를 다시 들여다봤다. 연애·짝사랑·이별의 상대가 가사에서 ‘그녀’, ‘girl’, ‘여자’ 등 여성으로 확인되는 경우만 ‘여성을 향한 사랑’으로 별도 분류했다. ‘너’, ‘그대’, ‘baby’처럼 성별을 확인할 수 없으면 임의로 추정하지 않았다. 전체 사랑 비중은 17.0%였다. 이 가운데 사랑의 상대가 여성으로 확인된 비중은 7.4%, 상대의 성별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는 9.2%, 남성으로 확인된 경우는 0.4%였다.

시기별로 보면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성장한 1999∼2011년 2209곡에서 여성을 향한 사랑은 평균 9.4%, 여성 대상화는 2.9%였다. 여성을 향한 사랑이 등장한 곡은 14.8%, 여성 대상화 표현이 등장한 곡은 12.5%였다.

흐름은 2010년대 중반부터 달라졌다. 2012∼2022년 1307곡에서는 여성을 향한 사랑의 비중이 4.8%로 낮아진 반면 여성 대상화는 5.3%로 높아졌다. 여성을 향한 사랑이 등장한 곡은 9.8%에 그쳤지만 여성 대상화가 담긴 곡은 25.9%였다. 네 곡 중 한 곡꼴이다.

한국힙합(4008곡) 가사 속 ‘여성 사랑’과 ‘여성 대상화’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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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속 평균 비중

해당 표현이 들어간 곡 비율

*‘여성에게 향한 사랑’은 연애·짝사랑·이별 등의 상대가 가사에서 여성으로 확인되는 경우 *‘여성 대상화’는 여성을 육체·성적 정복·소비의 대상으로 묘사한 경우 ※2026년은 분석곡이 17곡으로 표본이 적어 시기별 비교에서 제외

자료: 세계일보 탐사보도팀 가사 분석

연도별로는 2015년 처음 여성 대상화 비중이 여성을 향한 사랑의 비중을 넘어섰다. 그해 여성을 향한 사랑은 3.1%, 여성 대상화는 5.1%였다. 2016년에는 여성 대상화가 10.3%까지 치솟아 여성을 향한 사랑(7.1%)을 웃돌았다. 2019년에는 격차가 더 벌어져 여성을 향한 사랑은 3.3%, 여성 대상화는 8.6%였다.

최근에도 이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2023∼2025년 294곡에서 여성을 향한 사랑의 평균 비중은 6.0%, 여성 대상화는 7.5%였다. 여성을 향한 사랑이 등장한 곡은 12.6%였지만 여성 대상화가 들어간 곡은 37.1%였다. 세 곡 중 한 곡이 넘는다. 2025년에는 여성을 향한 사랑이 3.0%, 여성 대상화가 7.7%로 여성 대상화 비중이 두 배를 넘었다.

최근 10년간 한국힙합 가사의 ‘여성 사랑’과 ‘여성 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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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곡 수는 그래프에 마우스를 올리거나 ‘표로 보기’에서 확인할 수 있음

자료: 세계일보 탐사보도팀 가사 분석

표로 보기

두 표현은 한 곡 안에 동시에 존재하기도 했다. 4008곡 가운데 여성을 향한 사랑과 여성 대상화가 함께 나타난 곡은 158곡이었다. 1999∼2011년 여성 대상화가 등장한 277곡 가운데 85곡(30.7%)에는 여성을 향한 사랑도 함께 있었다. 2012∼2022년에는 여성 대상화가 등장한 338곡 가운데 두 표현이 함께 담긴 곡이 48곡(14.2%)이었다. 2023∼2025년에는 109곡 가운데 18곡(16.5%)이었다. 과거에는 여성을 향한 사랑과 여성의 외모·신체를 소비적으로 바라보는 표현이 한 곡에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면, 이후에는 여성을 향한 사랑 표현을 동반하지 않는 여성 대상화가 더 많은 곡에서 나타났다.

물론 여성 대상화 표현이 있는 곡이라고 해서 노래 전체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그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두 구절에서 여성 대상화가 나타난 경우도 포함됐다. 여성 대상화가 들어간 곡만 따로 보면, 그 표현이 한 곡에서 차지하는 평균 비중은 1999∼2011년 23.2%에서 2012∼2022년 20.6%, 2023∼2025년 20.2%로 조금 낮아졌다.

여성 대상화가 등장한 곡에서 해당 표현이 차지하는 평균 비중은 다소 줄었지만, 그런 표현이 등장하는 곡의 비율은 높아진 것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여성혐오를 비롯한 거친 표현을 힙합의 문법 자체로만 볼 수 없다고 했다. 현실의 삶과 분리된 온라인 집단성이 혐오 표현과 결합하는 방식과, 그런 표현을 소비하고 확산하는 커뮤니티의 구조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평론가는 “여성혐오를 하는 래퍼라고 낙인을 찍기보다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이런 메시지를 통해 결집시키려는 집단은 누구인지 봐야 한다”며 “왜 이런 음악이 발생하는지를 파고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 관련 가사는 ‘사랑’과 ‘대상화’를 구분해 분석했다. 기존 ‘사랑’으로 분류된 가사를 사랑의 상대가 여성·남성·성별 불명인지 2차 분류했고, 여성의 신체를 소비적으로 묘사하거나 성적 정복·소유의 대상으로 다룬 내용을 ‘여성 대상화’로 분류했다. 주제별 정의·분류 기준, 분석에 사용한 프롬프트는 인터랙티브 페이지에서 공개한다.

박스 K팝 1035팀 분석

K팝 그룹에 스며든 랩… 10팀 중 8팀 래퍼 보유

1990년대 초만 해도 랩은 대중가요 그룹에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30여년이 지나면서 랩은 일부 힙합 그룹만의 문법을 넘어 케이팝(K―POP) 그룹을 구성하는 익숙한 표현 방식이 됐다.

12일 세계일보가 1992~2026년에 데뷔한 케이팝(K―POP) 가수 1035팀의 멤버 구성을 분석한 결과, 래퍼를 한 명 이상 둔 팀은 761팀으로 전체의 73.5%를 차지했다. 래퍼 수를 확인하기 어려운 84팀을 빼면 그 비율은 80%로 올라간다.

1992~2026년 데뷔 K팝 그룹의 래퍼 수

데뷔 연도별 팀 비율 · 단위: %

※1993·1994년은 해당 데이터 없음 ※세대별 수치는 래퍼가 1명 이상인 팀 비율. 세대 구분은 1세대 1992~2002년, 2세대 2003~2011년, 3세대 2012~2017년, 4세대 2018~2022년, 5세대 2023~2026년

자료: 세계일보 분석(KProfiles 데뷔 연도 자료, KBS ‘가요톱텐’ 자료 참고)

표로 보기

랩 포지션의 확산은 세대별로 뚜렷했다. 1992~2002년에 데뷔한 1세대 아이돌 34팀 가운데 래퍼를 둔 팀은 64.7%였고, 나머지 35.3%는 래퍼 없이 활동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랩이 대중음악 전면에 나섰고 H.O.T와 젝스키스 등 아이돌 그룹에도 랩을 전담하는 멤버가 생겼지만, 모든 팀의 당연한 구성원은 아직 아니었다.

2세대(2003~2011년) 아이돌팀에는 래퍼를 둔 팀이 74.1%로 늘었다. 빅뱅과 2NE1처럼 복수의 래퍼를 둔 그룹도 등장했다. 랩은 노래 사이에 잠깐 들어가는 장치에 머물지 않고 그룹 안에서 별도의 역할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랩 포지션이 가장 보편화한 것은 3세대였다. 2012~2017년 데뷔한 327팀 가운데 래퍼가 없는 팀은 12.2%에 그쳤다. 래퍼가 한 명인 팀이 28.4%, 두 명 이상인 팀이 57.2%였다. 래퍼 수가 확인되지 않은 팀까지 포함해도 85.6%에 달하는 팀에 래퍼가 있었다. 강일권 대중음악평론가는 “과거에는 ‘노래를 못하면 랩을 해라’는 정도의 인식도 있었지만 이후 케이팝에서도 래퍼를 별도로 훈련시키고 가사와 플로(랩의 리듬감과 흐름)를 신경 쓰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연도별로도 변화가 보인다. 2009년 데뷔팀의 80%에 래퍼가 있었고, 2010년에는 93.3%로 높아졌다. 2012년 데뷔한 40팀은 95%가 넘는 비율로 래퍼가 포함됐다. 특히 77.5%는 래퍼가 두 명 이상이었다. 2017년에도 래퍼를 둔 팀은 88.4%, 2020년에는 86.9%였다.

최근에는 또 다른 변화도 보인다. 4세대(2018~2022년) 아이돌팀에는 전체 346팀 중 74.9%가 한 명 이상의 래퍼를 뒀다. 5세대(2023~2026년) 아이돌팀에서는 56.7%까지 내려갔다.

그룹의 데뷔 연도는 케이팝 아티스트 정보 사이트 ‘케이프로파일’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고, KBS ‘가요톱텐’ 자료 등을 참고해 당시 활동한 그룹을 보완했다.

다큐멘터리

한국힙합 정정보도

기사 모음

만든 사람들

취재·글
조병욱 배주현 정세진
사진
최상수
그림
김수용
디자인
정세진 양혜정
개발
정세진 유희웅
배경음악
가리온 ‘무투(武鬪)’(Inst.)
릴재우 'I Love Rap'(Inst.)
배수정 'BLUE DIVE'(Inst.)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PLAY SIDE A 5년 차 래퍼 릴재우의 증명
세계일보 탐사보도 · 한국힙합 30년 · 1화

‘빛’날 때까지… 배달앱 콜 잡듯 무대 찾아 오늘도 뛴다

랩은 땅 밑에서 올라왔다. 비좁은 계단을 타고 새어 나온 뭉개진 소리였다. 문 없는 공연장 입구에서 들리던 목소리는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갈 때마다 또렷해졌다. 마지막 계단에서는 발끝에 닿은 스피커의 묵직한 진동이 머리까지 올라왔다. 킥(큰북)과 스네어(작은북)가 심장박동처럼 ‘쿵쿵’ 고막을 때렸다. 관객들은 두 손을 머리 위로 흔들어도 서로 방해되지 않을 만큼 듬성듬성 서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미러볼이 붉은 조명을 흩뿌리는 스탠딩석 너머로 무대 위 래퍼 릴재우(본명 조재우)가 보였다.

왼손에는 마이크를, 오른손에는 흰 수건을 쥐고 랩을 뱉고 있었다. 복슬복슬하게 부풀린 아프로 파마머리에 불꽃 그림이 들어간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저는 지금 최고로 재밌어요. 다시 놀아볼까요?”라고 외쳤다. 스무 명 남짓한 관객이 무대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7월25일 오후 8시, 서울 신촌의 지하 공연장 허니클로버. 100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이곳에서 서울예대 힙합 동아리 웨이브가 마련한 공연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게스트로 무대에 오른 재우가 숨을 고르더니 입술에 힘을 주고 랩을 내뱉었다. 객석에서 함성이 터졌고, 사람들은 박자에 맞춰 뛰었다. 그가 손을 좌우로 흔들면 관객들도 물결처럼 출렁였다. 흰 수건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yo 나의 흰 수건
절대 안 던지는 이유 뭐냐고
물으신다면 나의 답변
난 절대 질 수 없어
항복하지 않아 난 행복

릴재우 ‘소년만화간지’ 중에서

한 달여 뒤인 8월27일 낮 12시30분. 경기 부천 북부역사거리. 점심시간을 맞아 배달 오토바이들이 상가 골목을 빠르게 지나갔다. 재우는 그 사이를 묵묵히 걸었다. 왼손에 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콜(배달 주문)을 기다렸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켠 지 5분 만에 알림이 울렸다. 빙수 가게였다. 가게에 닿아 ‘매장 도착’ 버튼을 누르자 15분 안에 배달하라는 문구가 떴다. 직선거리 330m, 배달비 2600원.

재우는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른다. 평소엔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데 이날은 자전거도 없었다. 빙수를 받아 들고 지도 앱을 켰다. 예상 소요 시간 8분. 배달할 때 뛰지 않는다. 안전 때문에 스스로 정한 규칙이다. 걸어서 늦은 적은 없었다. 제 속도면 충분했다.

헤드폰을 쓰고 바닥에 앉아 손가락으로 사각형을 만드는 래퍼
래퍼 릴재우.

재우는 5년 차 래퍼다. 열 살에 들은 그룹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가 그를 힙합의 세계로 이끌었고, 동국대에 진학해 가입한 힙합 동아리 에이잭스에서 랩의 재미를 알았다. 입 밖에 내기 어렵던 말이 랩으로는 술술 쏟아져 나왔다. 5년 전 첫 곡을 내고 무대에 서기 시작했지만 그때만 해도 랩을 취미라고 여겼다.

마음이 흔들린 건 3년 전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면서부터다. 현역 래퍼들이 신인에게 조언해 주는 그 프로그램에서 쿤디판다, 디젤 같은 래퍼들에게 “잘하고 있다”라는 격려를 들었다. 재우는 “취미로만 하겠다고 스스로 씌워둔 가면이 벗겨진 것 같았다”라고 했다. 그는 음악을 업으로 삼기로 했다.

무명 래퍼에게 무대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공연장은 있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래퍼 대다수가 몰린 수도권에서 재우는 숱한 이름들 사이에 묻힌 이름일 뿐이었다. 어렵게 잡은 공연이 “힙합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주최 측 말 한마디에 갑자기 취소되기도 했다.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 세상에는 기회가 넘쳐 보였다. ‘힙합과 음악에 관심 있는 2008∼2016년생 남자 누구나.’ 한 대형 기획사의 힙합 교육 프로그램 광고가 올해도 쉴 새 없이 떴다. ‘누구나’는 10대까지였다. 스물여덟 재우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붉은 조명 아래 무대 위 참가자들과 응원봉을 든 관객들
8월16일 서울 강남구 성암아트홀에서 열린 빅히트 뮤직 ‘히트 잇 베이스’ 파이널쇼.

8월16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성암아트홀. 그 프로그램의 파이널쇼가 열렸다. 방탄소년단(BTS)을 키워낸 기획사가 10대 남학생에게 무료로 랩을 가르치는 ‘빅히트 뮤직 히트 잇 베이스’다. 사회를 맡은 댄서 아이키가 “대한민국 힙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는 시간”이라며 박수를 청했다. 객석을 채운 관객은 300여명. 10대 팬들은 무대 앞 펜스에 다닥다닥 붙어 손에 쥔 응원봉을 흔들었다.

흰 옷과 검은 옷을 입은 참가자들이 보라색 조명 아래 무대에 서 있다 01A
참가자가 마이크를 입에 대고 랩을 하고 있다 02A
참가자가 펜스 앞 관객들을 향해 웃으며 춤추고 있다 03A
참가자들이 무대 위에서 손을 모으고 웃고 있다 04A
회색 옷을 맞춰 입은 참가자들이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05A
초록빛과 흰빛 응원봉을 든 관객들 06A
무대 위 래퍼를 향해 휴대전화를 든 관객들 07A
무대 위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참가자들 08A
히트 잇 베이스 파이널쇼 무대와 객석.

수많은 지원자 가운데 5주간의 교육 기회를 거머쥔 이는 단 스무 명. 마지막 순서인 ‘갤럭시’ 팀이 호명되자 무대 위로 파란 조명이 내리꽂혔다. 빨간 옷을 맞춰 입은 10대 남학생 다섯 명이 중앙으로 모여들어 둥글게 마주 섰다.

빨간 옷을 맞춰 입은 10대 다섯 명이 무대에서 랩을 하고 있다
‘갤럭시’ 팀이 파이널쇼 무대에 올라 랩을 하고 있다.

서로 다른 길에서
여기 같이 모여서
랩을 뱉고 꿈을 꿔

‘갤럭시’ 팀 파이널쇼 무대에서
빨간 옷을 입은 참가자들이 무대에서 뛰어오르며 랩을 하고 있다
‘갤럭시’ 팀의 무대.

노래가 끝나자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동시에 뒤로 넘어지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팀은 관객 투표에서 과반을 얻어 우승했다. 소감을 묻자 ‘갤럭시’의 막내 신시온(15)은 “부모님 제가 지금까지 속 썩였지만 앞으로 계속 증명할게요”라고 외쳤다. 증명은 힙합에서 실력으로 자신을 입증해 보인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이다.

빨간 옷을 입은 참가자들이 객석에서 손짓하며 웃고 있다
‘갤럭시’ 팀 멤버들이 객석에서 환호하고 있다.
응원봉을 높이 든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
객석에서 응원봉을 흔드는 관객들.

재우 역시 랩을 시작한 순간부터 증명이라는 숙제를 안고 살았다. 이름을 알려 관객 수를 늘려야 했고, 자신을 믿어준 부모님에게 큰 무대에 선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한 번에 해결할 지름길은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였다. 카메라에 한 번 잡히는 것만으로도 이름이 알려지고 노래가 널리 퍼져나가는, 무명 래퍼에겐 로또 같은 기회다.

지난해 11월2일 오전 4시. 인천 남동구 남동체육관 앞, 재우는 추위에 발을 구르며 “무조건 된다”라고 나직이 되뇌었다. 세 시간을 기다려 받아 든 쇼미더머니 시즌 12 예선 번호표는 2만 번대. 번호표를 단 이들이 유선 이어폰을 한쪽 귀에만 꽂고 허공에 대고 랩을 뱉고 또 뱉었다. 그 틈에서 재우는 목을 아끼며 입을 다물었다. 마침내 1층 대강당에서 심사 위원 크러쉬를 마주한 재우는 자작곡 ‘남자는 돈가스 여자는 떡볶이’를 시작했다.

난 돈가스만 먹는 남자지 삼시세끼
경양식이든 일본식이든 맛집 항시대기
제육 아님 국밥도 가끔 땡길 땐
탕후루보단 제로탄산이 맞아 내 입엔

릴재우 ‘남자는 돈가스 여자는 떡볶이’ 중에서

시작은 좋았다. 두세 마디에 끊기는 지원자가 태반인데 열다섯 마디를 넘겼다. 하지만 열여섯 마디째, 무표정하던 크러쉬의 목소리가 랩을 비집고 들어왔다. “수고하셨습니다.” 크러쉬의 손에 들린 ‘합격 목걸이’가 멀어졌다. 시즌 11에 이어 두 번째 탈락이었다. ‘와, 나 이번에 진짜 잘했는데… 내년에 또 해보지 뭐.’ 재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심사장을 나오니 해가 중천이었다.

빙수를 건네고 돌아설 때도 해가 높았다. 자리를 옮겨 북역사거리 인근 원룸이 빼곡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20분이 지나서야 햄버거 배달이 떴다. 콜 수락 30초 만에 왕만두, 3분 뒤 연어까지. 세 가게에서 음식을 받은 후부터 40분 안에 차례로 배달하라고 앱이 재촉했다.

헤드폰을 쓰고 모니터 앞에서 마우스를 잡은 래퍼
작업실에서 곡을 다듬는 릴재우.

배달 콜을 잡듯 재우는 공연을 찾아다녔다. 그의 노트북에는 ‘공연 리스트.hwp’라는 파일이 있다. 전국의 축제를 뒤져 공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마다 포트폴리오를 밀어 넣었고, 공고가 없는 곳엔 직접 주최 측에 “공연자가 필요하다면 연락을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참가비를 내고 서는 ‘오픈 마이크 무대’(누구나 오를 수 있는 무대)도 마다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돈까지 내며 텅 빈 객석 앞에 서는 게 창피하다”라고 투덜댔지만, 재우는 달랐다. 이름을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다면 어떤 무대든 상관없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현장에서만 볼 수 있다는 뜻의 공연 ‘오프라인 온리’를 2년 전부터 직접 기획해 44차례나 열었다.

차츰 재우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포트폴리오를 돌렸던 문화재단과 청소년센터 등에서 “공연에 참여해 달라”라며 먼저 연락이 왔다. 7월 신촌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주최 측은 재우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고 했다. 증명의 압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5년 동안 릴재우라는 이름으로 240번의 무대에 섰다.

유리문 너머 녹음 부스에서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든 래퍼
작업실 녹음 부스에서 랩을 하는 래퍼 릴재우(본명 조재우).

음악만으로 밥벌이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출연료는 0원에서 100만원까지 제각각이다. 음원 정산금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곡이 화제가 돼야 월 8만∼9만원 정도다. 반면 녹음 장비와 무대 의상, 뮤직비디오 촬영·편집까지 하고 싶은 일을 이어가는 데는 계속 더 큰 돈이 든다. 주 3일 샐러드 가게 야간 아르바이트, 간간이 나가는 직업 체험 강사, 시간이 빌 때마다 배달. 본업을 지키며 돈을 버는 방법은 쪼개서 일하는 것뿐이다. 배달지와 배달지 사이 평균 15분. 재우는 걸음을 옮기며 무대에서 관객에게 건넬 멘트를 고르고, 가사를 떠올리며 곡의 콘셉트를 궁리한다.

최근엔 한 중소 기획사에서 계약 제안도 들어왔다. 이 기획사 관계자는 재우의 자작곡 대신 가수 싸이나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처럼 누구나 아는 히트곡을 다시 부르는 커버 무대를 늘리자고 했다. 당장의 수입과 인지도를 위해 타협해야 할까. 취업과 결혼 압박이 거세지는 30대가 다가올수록 철없이 꿈만 좇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도 고개를 들었다. 재우는 끝내 제안을 거절했다. 직접 쓴 가사와 곡으로 무대를 채우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만큼은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기획사를 나서는 길, 그는 자신의 노래 ‘할 거면 제대로’가 떠올랐다고 했다.

할 거면 제대로 해
아니면 get away(떠나다)
울 엄마가 말했어
죽도 밥도 안 되면
누룽지라도 돼

릴재우 ‘할 거면 제대로’ 중에서

수화기 너머 재우의 어머니(55)는 “누룽지 그거 제가 말한 거거든요”라며 웃었다. 아들이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여느 부모처럼 걱정부터 앞섰다. 그래도 반대하지 않은 건 아들의 뚝심 때문이었다. 아들이 왜 무대를 놓지 못하는지 온전히 이해한 건, 2024년 10월 동두천의 한 지역 축제에서였다. 무대에 오른 재우의 에너지에 관객이 호응하고, 재우가 다시 무대를 휘어잡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저런 맛에 계속 노래하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했다. 한 번에 확 뜨는 것보다, 조금씩 단단하게 나아지는 아들에게서 더 큰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재우가 바라는 성공은 거창하지 않다. 음악으로 번 돈으로 가족과 친구에게 밥 한 끼 사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 아르바이트 없이 음악만으로 먹고사는 것. 하고 싶을 때까지 음악을 하는 것. 그거면 된다고 했다.

다시 부천. 햄버거와 왕만두, 연어를 차례로 받아 든 재우는 5분을 걸어 원룸 골목 첫 집에 햄버거부터 건넸다. 8분을 걸어 두 번째 배달지 전화국사거리에 닿았다. 경인선 철길 위로 놓인 심곡고가교를 건너 다세대주택이 늘어선 남쪽 오르막을 25분 더 올라야 마지막 집이 나왔다. 연어를 건넸을 때 앱의 제한 시간은 2분이 남아 있었다. 뛰지 않았는데도 온몸이 젖어 있었다. 1시간 반 동안 번 돈은 9600원. 재우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꾹꾹 눌러 땀을 훔치고는 곧장 작업실로 향했다.

재우가 지난달 낸 신곡 ‘오렌지 하늘’은 배달을 하다 올려다본 하늘에서 나왔다. 랩을 그만둔 동아리 친구에게 보내는 노래다. 노을이 진 뒤 새로운 하늘이 열리듯, 누군가의 꿈이 저문 자리에서 또 다른 꿈이 시작될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재우는 설명했다. 함께 랩을 하던 친구들은 어느새 직장인이 됐다. 그중 한 친구는 랩을 그만두며 재우에게 스피커와 마이크, 헤드폰을 줬다. 합치면 150만원은 족히 나가보였다. 돈은 받지 않았다. 대신 “꼭 음악으로 번 돈으로 갚으라”고 했다. 재우는 아직 그 빚을 갚지 못했다.

구둣발 퇴근길 사이
주홍 빛깔의 노을이 지면
이 노랠 불러줄래
거기에 난 남아있을 테니까

릴재우 ‘오렌지 하늘’ 중에서
헤드폰을 쓰고 휴대전화를 보며 마이크 앞에서 랩을 하는 래퍼
녹음 부스에서 가사를 확인하며 녹음하는 릴재우.

2017년 가을, 동국대 축제. 야외무대에서 재우와 동아리 친구 두 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가장 친한 셋이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섰다. 함께 만든 곡 ‘블레싱(Blessing·축복)’을 불렀다. “나는 나 너는 너 우리만의 색을 색칠”이라는 가사가 유난히 입에 착 붙었다. 비트 위에서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셋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그건 축복이었다. 그로부터 9년. 재우는 아직 무대에 남아 있다. 홀로, 지지 않은 채로.

▶PLAY SIDE B 청년 래퍼 80명 활동 실태 설문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빚’내서라도… 출연 계약서는커녕 사비 털어 꿈 좇다

한국힙합의 다음 세대인 청년 래퍼 10명 중 7명은 최근 1년간 음악으로 번 돈이 100만원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10명 중 8명은 녹음과 비트(반주) 구입, 홍보 등 음악 활동에 100만원 이상을 썼다. 셋 중에 둘은 번 돈 보다 쓴 돈이 많은 셈이다. 10명 중 8~9명은 출연료 없이 무대에 서봤고, 절반 이상은 출연료가 적힌 계약서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세계일보가 8월20일부터 9월21일까지 실시한 ‘청년 래퍼 설문조사’(80명 응답) 결과 이같이 집계됐다. 응답자는 대부분 혼자(62.5%), 또는 크루(함께 활동하는 음악인 모임·27.5%)로 공연과 음원 발매를 이어가는 독립 음악인이었다. 기획사 소속은 2명(2.5%) 뿐이었다.

응답자의 20%(16명)는 최근 1년간 음악으로 얻은 수입이 아예 없다고 답했고, 50%(40명)는 100만원 미만이었다. 500만원 이상은 13.8%(11명)에 그쳤다. 월 100만원꼴인 연 1200만원을 넘긴 응답자는 5명(6.3%)뿐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예술인의 예술활동 연수입은 평균 1055만원이었다.

청년 래퍼 80명의 최근 1년 음악 수입

점 1개 = 1명

※100만~500만원 구간(13명)은 전체 80명에서 나머지 구간을 뺀 값 ※500만원 초과 11명 중 1200만원 초과는 5명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2026년 8월20일~9월21일, 80명)

수입원은 공연과 음원에 몰려 있었다. 비중이 큰 수입원(최대 3개)으로 공연·행사 출연료를 꼽은 응답이 53.8%(43명), 음원 스트리밍·다운로드 정산이 43.8%(35명)였다. 레슨·강의는 22.5%(18명), 저작권료는 18.8%(15명), 정부·재단 지원금은 11.3%(9명)에 그쳤다. 경기·인천에 사는 20대 후반 래퍼는 “한국에서 음악으로 먹고살기 너무 힘들다”며 “투명하게 정산되는 시스템이 너무 부실하다”고 적었다. 10년 넘게 활동한 경기·인천의 20대 후반 래퍼는 “한 달에 수천 명이 듣고 몇만 번 스트리밍해도 저작권료는 몇만원이 안 된다”며 “양극화가 너무 심하다”고 적었다.

비중이 큰 음악 수입원

최대 3개 선택 · 단위: %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지출은 반대였다. 최근 1년간 음악 활동에 100만원 이상 썼다는 응답이 80%(64명)였고, 500만원 이상 썼다는 응답도 28.8%(23명)였다. 수입은 응답 구간의 최대치로, 지출은 최소치로 잡아도 적자인 응답자가 67.5%(54명)에 달했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다

최근 1년 · 80명 기준
70.0% 음악 수입이 100만원 미만수입 없음 포함, 56명
80.0% 음악 활동 지출이 100만원 초과64명
67.5% 아무리 좋게 봐도 적자54명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모자란 돈은 다른 일로 메운다. 응답자의 87.5%(70명)가 음악 외에 생계를 위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단기 일자리가 40%(32명)로 가장 많았고 정규직·비정규직 직장 31.3%(25명), 프리랜서·자영업 16.3%(13명) 순이었다. 아르바이트로 버티는 32명은 전원 만 29세 이하였고, 이 가운데 22명은 음악 수입이 100만원 미만이거나 아예 없었다. 음악 수입만으로 생활한다는 응답은 6.3%(5명)에 그쳤다. 빚을 내 음악을 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음악 활동을 위해 빚을 진 적이 있다는 응답이 28.8%(23명)였다. 만 25~29세는 38명 중 15명(39.5%)이 빚을 져봤다고 답했다. 1000만원 이상 빚을 졌다는 응답자도 2명 있었다.

음악 말고 생계를 위해 하는 일

단위: %

※음악 외 생계를 위한 일을 한다 87.5%(70명)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무대도 돈이 되지 않았다. 출연료 없이 공연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85%(68명)에 달했다. 출연료가 명시된 서면 계약서를 ‘한 번도 쓴 적 없다’는 응답은 55%(44명), ‘드물다’는 35%(28명)로, 10명 중 9명이 계약서 없이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었다.

출연료를 받지 못했거나(13.8%), 정산이 크게 늦어졌거나(23.8%), 약속보다 적게 받은(10%) 경험이 하나라도 있는 응답자는 33.8%(27명)였다. 자신이 티켓을 사서 지인에게 되파는 이른바 ‘티켓 할당’을 겪은 이도 5%(4명) 있었다. 수도권의 20대 후반 래퍼는 “한국에서 음악으로 먹고살기 너무 힘들다”며 “투명하게 정산되는 시스템이 부실하다”고 적었다.

공짜 무대, 없는 계약서

단위: %
85.0% 출연료 없이 공연해 봤다68명
33.8% 출연료 미지급·지연·감액을 하나라도 겪었다27명

※‘그 외’(10.0%)는 전체에서 ‘한 번도 없다’와 ‘드물다’를 뺀 값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무대 자체가 귀한 이들도 있었다. 최근 1년간 공연 횟수는 1~5회가 48.8%(39명)로 가장 많았고 6회 이상은 43.8%(35명), 한 번도 서지 못한 이도 7.5%(6명) 있었다. 20대 초반 래퍼는 “진짜 재즈힙합을 하고 싶은데 수요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공연을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며 “곡을 내도 묻힐까 두려워서 못 낼 것 같다”고 적었다. 경기·인천의 20대 후반 래퍼는 하고 싶은 말을 묻는 문항에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라고만 썼다.

제도의 문턱도 높았다. 예술인 복지의 관문인 예술활동증명을 받은 응답은 32.5%(26명)에 그쳤다. 신청한 45명 중 19명은 반려되거나 보완 요구를 받았다. 예술활동준비금이나 지방자치단체 음악창작소 지원 같은 공적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응답은 70%(56명)였다. 증명이 없는 54명 중에는 47명이 그랬다.

지금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는 제작비(71.3%)와 설 수 있는 무대·공연장(60%), 유통·홍보 지원(57.5%)을 꼽았다. 투명한 공연료 기준(6.3%)이나 건강보험·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3.8%)을 고른 이는 드물었다. 당장 곡을 만들고 무대에 서는 일이 급하다는 뜻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지원

단위: %

※기사에 언급된 항목만 표시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그럼에도 열에 아홉은 음악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앞으로도 음악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는 응답은 75%(60명), ‘아마 계속할 것 같다’는 18.8%(15명)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4명, ‘이미 사실상 중단했다’는 1명이었다. 6~9년차인 20대 후반 래퍼는 “래퍼를 직업으로 갖는다는 건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같다”며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갖는 거라 행복하지만 그 길만 걸어가는 것이 불안함으로 바뀔 때도 많다”고 적었다.

이번 조사는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한 달 간 진행됐으며 응답자의 73.8%(59명)가 20대, 66.3%(53명)가 서울·경기·인천 거주자였다. 조사 문항은 문체부 ‘예술인 실태조사’를 참고해 설계했다.

박스 예술인활동증명

활동증명 신청자 10명 중 4명 ‘반려·보완’… “증빙할 계약서가 없다”

예술활동증명은 예술인 복지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활동 실적을 심사해 인정하면 예술활동준비금과 예술인 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지원의 문이 열린다. 그러나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실태 설문조사’에 응답한 80명 가운데 이 증명을 받은 이는 26명(32.5%)뿐이었다.

11일 조사에 따르면 예술인활동증명을 신청한 45명 중 19명(42.2%)은 반려되거나 보완 요구를 받았다고 답했다. 20명(25%)은 제도를 알면서도 신청하지 않았고, 12명(15%)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처음 들어본다는 12명 중 9명은 최근 1년간 음악 수입이 전혀 없었고, 11명은 계약서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제도가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제도가 가장 멀리 있는 셈이다.

청년 래퍼 80명의 예술인활동증명

단위: %

※‘그 외’(3.8%, 3명)는 전체에서 나머지 응답을 뺀 값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증명 여부는 정부 지원 경험으로 이어졌다. 증명을 받은 26명 중 15명(57.7%)이 예술활동준비금을 받았고 8명은 음악창작소·문화재단 지원을 받았다. 반면 증명이 없는 54명 중 어떤 지원도 받아본 적 없는 이는 47명(87%)이었다.

신청하지 않았거나 어려움을 겪은 이유(복수 응답)로는 ‘요구하는 서류 형식이 까다로워서’가 41명 중 22명(53.7%)으로 가장 많았다.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없어서’ 15명(36.6%), ‘증빙할 서류(계약서·정산 내역)가 없어서’ 13명(31.7%), ‘실적 기준을 못 채워서’ 6명(14.6%)이 뒤를 이었다. 한 응답자는 “원래 되던 것이 최근에 (갱신 신청에서) 반려되었다”고 적었다.

신청하지 않았거나 어려움을 겪은 이유

41명 · 복수 응답 · 단위: %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문제는 증빙이다. 재단 기준으로 대중음악 분야는 최근 5년간 공연 3편 이상에 출연했거나 음원 3곡 이상을 발표했어야 한다. 공연 실적을 인정받으려면 포스터와 리플릿에 더해 출연계약서와 출연료 입금 내역을 내야 한다. 그러나 계약서를 잘 쓰지 않는 관행으로 인해 래퍼들의 증빙은 쉽지 않다. 반면 알반음악 분야는 포스터와 리플릿만 내면 된다. 수입으로 증명하려면 최근 1년간 120만원 이상, 최근 5년간 600만원 이상을 음악으로 돈을 벌었어야 한다.

증명 여부가 가른 창작준비금

창작준비금을 받은 비율 · 단위: %

※증명을 받지 못한 54명의 비율(7.4%)은 4명÷54명으로 계산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보완 요구는 경력 30년의 래퍼에게도 왔다. 힙합 듀오 가리온의 MC메타(본명 이재현·55)는 올해 5월 예술활동증명을 처음 신청했다. 재단은 심의에 10~15주 이상 걸린다고 안내했다. 44일 뒤인 7월1일 저녁, 증빙자료를 보완하라는 문자가 왔다 기한은 7일이었고 넘기면 미완료 처리된다고 적혀 있었다. 보완 서류 끝에 그는 8월3일 증명을 받았다. 그동안 제도 자체를 몰라 신청하지 않았던 그는 “주변과 비교하면 저는 빨리된 케이스”라며 “온라인 상에선 원성이 자자하다”고 말했다.

심사하는 쪽도 어려움이 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접수된 신청만 6만7000여 건으로 지난해 전체(6만6456건)을 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 연장해 준 증명 유효기간이 올해 끝나 재신청이 몰린데다, 올해 전체 접수는 10만 건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증명을 경력 확인 수단으로 쓰는 곳이 늘었기 때문이다.

박스 조사 방법

어떻게 조사했나

세계일보가 실시한 ‘청년 래퍼 설문조사’는 8월20일부터 9월21일까지 온라인 설문 플랫폼 ‘구글 폼’을 이용해 진행했다. 문항은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인 실태조사’를 참고해 활동 기본, 소득·생계, 계약·무대, 제도·지원, 창작, 지속 의향 등 6개 영역 26개로 구성했다. 설문 링크는 힙합 커뮤니티와 크루, 음악창작소, 취재 과정에서 만난 래퍼들의 소개를 통해 배포했다.

응답자는 80명이다. 남성 68명(85%), 여성 12명(15%)이었고, 20대가 59명(73.8%), 30대 16명(20%), 만 19세 이하 5명(6.3%)이었다. 거주지는 서울 31명(38.8%), 경기·인천 22명(27.5%)으로 수도권이 53명(66.3%), 부산·경남 9명(11.3%), 대구·경북 7명(8.8%), 대전·충청 5명(6.3%), 광주·전라 3명(3.8%), 제주 2명(2.5%), 해외 1명(1.3%)이다.

응답자 80명은 누구인가

단위: %

※소속의 ‘그 외’(7.5%, 6명)는 전체에서 나머지 응답을 뺀 값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응답자 대부분은 방송이나 대형 기획사를 거치지 않고 공연과 음원 발매를 이어가는 래퍼들이었다. 기획사 소속은 2명(2.5%)뿐이었고 무소속이 50명(62.5%), 크루 소속이 22명(27.5%), 기타 6명이었다. 이번 결과는 국내 래퍼 전체가 아니라 중소 공연장과 온라인을 주요 무대로 활동하는 독립 래퍼들의 실태에 가깝다.

응답자를 무작위로 추출한 확률표본이 아니어서 표본오차는 산출하지 않았으며, 결과를 국내 힙합 뮤지션 전체로 일반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PLAY SIDE A 부산대역 다리 밑에서 전국의 빈자리까지
세계일보 탐사보도 · 한국힙합 30년 · 3화

무대도 관객도… 그곳엔 없다

GARAM이라는 대형 그래피티가 그려진 지하 통로의 파노라마
그래피티로 덮인 지하 통로 벽.

냄새가 사라져 있었다. 부산 금정구 지하철 1호선 부산대역 아래, 온천천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교각 옆 다리 밑으로 내려서며 프리스타일 래퍼 와일즈원(본명 박정민·35)은 걸음을 멈췄다. 하수가 흘러들어 코를 찌르던 악취 때문에 ‘똥다리’로 불리던 곳이다. 1990년대 말 사람들은 이곳을 피해 다녔고, 그래서 랩을 하는 아이들이 모였다.

그때는 두 사람이 걷기도 빠듯한 철제 계단으로 하천에 내려갔다. 지금은 유모차와 자전거가 나란히 오가는 넓은 경사로가 생겼다. 벽을 뒤덮은 그래피티는 거리 화가들의 캔버스였고, 그 아래서는 매주 원을 그리고 서서 즉흥으로 랩을 주고받는 ‘사이퍼’가 열렸다. 2011년 구청이 하천 정비를 이유로 그림을 타일로 덮었고, 정비가 이어지는 사이 철제 계단은 헐리고 물은 맑아졌다. 냄새가 사라지자 랩도 사라졌다. 8월24일 오후 3시, 회색 벽 앞에 선 와일즈원은 “냄새가 안 나네요”라고 했다.

지역 소멸은 인구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통계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이 있다. 지역문화다. 청년들이 모이던 자리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서던 사람들이 떠나거나 그만두고, 마지막엔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마저 사라진다. 제2의 도시 부산에서조차 이 과정은 이미 끝자락에 와 있다. 세계일보가 지난 석 달간 부산·대구·전남광주·제주·의정부 등에서 래퍼와 라이브클럽 운영자, 음악창작소 관계자 등 47명을 만났다. 같은 일이 지금 전국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한 남성이 앉아 있고 다른 남성이 그래피티 벽에 기대 서 있다
힙합 크루 ‘야생본능’을 이끄는 프리스타일 래퍼 와일즈원(앞)과 에이식.

와일즈원은 이 다리 아래에서 원을 그리던 사람이었다. 2008년 고교 친구들과 힙합 크루 ‘야생본능’을 만든 그는 2009년부터 7년 넘게 매주 이곳에 나왔다. 그는 “이 문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열 명에서 많게는 스무 명까지 모였다. 하천 냄새가 지독할 때였다”고 회상했다. 이제 다리 밑에는 원을 그릴 사람이 없다. 사람들은 수년째 그에게 언제 사이퍼를 다시 여느냐고 묻는다. 와일즈원은 “사람들이 연다고 하면 홍보하고 돕겠다고 했는데, 아무도 안 나선다”고 말했다.

전국에 이런 빈자리가 많다. 1990년대 말 힙합은 전국 청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PC통신 동호회와 소모임이 지역마다 생겨났고 공원과 다리 밑, 대학가 뒷골목에서 사이퍼가 열렸다. 서울 홍대의 놀이터와 윗잔다리공원, 대구 국채보상공원, 광주 금남로가 그랬다. 지금은 대부분 명맥이 끊겼다.

지방 래퍼에게는 설 무대도, 함께할 동료도, 들어줄 관객도 없다.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과정 송재홍이 석사논문 ‘지방도시에서 래퍼로 살아가기’(2022)에서 요약한 지방 래퍼의 삶이다. 그는 “지역 씬(음악인과 팬이 이루는 활동 무대)에는 제도가 없다 보니 사람 하나하나가 사실상 제도”라며 “젊은 래퍼들의 공백이 엄청나게 크다”고 했다. 광주 래퍼 MC퀘이사(전준성·35)는 2023년 미국 힙합 탄생 50주년을 맞아 광주 래퍼 50명이 참여한 단체곡을 만들었다. 그는 “지금은 현역이 10명도 안 남았을 것”이라며 “대학 가면 절반이 그만두고, 남은 절반의 90%가 군대 다녀와서, 살아남은 10%가 취업하면서 또 그만둔다”고 말했다.

광주 단체곡에 참여한 래퍼 50명, 지금은

MC퀘이사의 설명
  1. 50명2023년 광주 래퍼 단체곡 참여
  2. 10명도 안 남아현역으로 남은 래퍼

※“대학 가면 절반이 그만두고, 남은 절반의 90%가 군대 다녀와서 그만두고, 살아남은 10%가 취업하면서 또 그만둔다”

광주 동구 조선대 후문의 카페 ‘에스프레소렉’은 16년째 광주 힙합 동아리의 거점이다. 쇼미더머니가 한창이던 시절엔 동아리 공연에도 관객이 100명 넘게 몰려 낮 12시부터 줄을 섰다. 김동혁(47) 대표는 카페 뒤편 작은 방을 래퍼들의 작업실로 내줬지만, 그 방도 내년 1월이면 사라진다. 김 대표는 “음악하던 애들이 30살 넘어가니 취업하느라 서울 가고, 결혼 준비하느라 다 빠졌다”며 “남은 한두 명이 감당하기엔 월세가 너무 많다”고 털어놨다.

광주에서 10년간 라이브클럽 ‘네버마인드’를 운영하고 광주음악창작소 총감독을 지낸 남유진(54) 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은 “씬은 뮤지션뿐 아니라 기획자, 엔지니어, 평론까지 있어야 풍성해지는데 지역엔 다 없다”며 “그나마 라이브클럽이 그 역할을 하려 하지만 클럽 자체가 적자를 보는 공간이고, 공공이 잣대를 대면 한순간에 멈춘다”고 말했다.

부산 남구 경성대 앞 라이브클럽 ‘오방가르드’가 그랬다. 와일즈원이 지난 7월 섰던 이 무대는 일반음식점에서 손님이 춤을 췄다는 민원이 제기돼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8월 구청에서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음악인들은 법 개정을 요구하는 국회 청원을 냈다. 야생본능의 에이식(정승재·34)은 “한때 10개가 넘던 공연장이 이제 2~3개밖에 안 남았다”며 “남은 곳마저 없애면 문화를 없애겠다는 것밖에 더 되느냐”고 되물었다.

두 남성이 그래피티 벽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래퍼 와일즈원(오른쪽)과 에이식 .

사라진 자리, 버티는 자리

기사에 나온 장소
  • 끊김
    부산 부산대역 ‘똥다리’ 2011년 그래피티를 타일로 덮은 뒤 매주 열리던 싸이퍼가 사라짐
  • 끊김
    서울 홍대 윗잔다리 · 대구 국채보상공원 · 광주 금남로 1990년대 말 싸이퍼가 열리던 곳. 대부분 명맥이 끊김
  • 위기
    광주 조선대 후문 ‘에스프레소렉’ 작업실 16년째 힙합 동아리 거점. 래퍼 작업실은 내년 1월 사라짐
  • 위기
    부산 경성대 앞 ‘오방가르드’ 8월 2개월 영업정지. 부산 공연장은 10곳 넘던 데서 2~3곳으로
  • 이어짐
    대구 대명동 ‘헤비’ 힙합트레인 1999년 시작해 올해로 27년째
  • 이어짐
    의정부 거리의 붐박스 MC란자가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거리로 나감

와일즈원이 올해 4월 낸 생애 첫 싱글의 제목은 ‘5만원만 주시면 바로 달려갑니다’이다. 3년 전 부산의 한 펍에서 겪은 일이 소재다. 유명 래퍼의 공연을 앞두고 앞 무대를 채울 대학 동아리와 랩 크루를 불러놓은 펍 주인은 “기회를 주는 거니까 페이(출연료) 말은 꺼내지도 마라. 음료 정도는 줄게”라고 했다. 와일즈원은 그 자리에서 랩으로 욕을 쏟아냈다.

공연수입 다 챙겨 준 Ma bro(나의 형제) 대전
준건 잊어도 받은건 끝까지 챙겨

와일즈원 ‘5만원만 주시면 바로 달려갑니다’ 중에서

무대가 절실한 지역 래퍼들은 지역 축제로도 눈을 돌린다. 울산 래퍼 빈세진(김세진·22)과 진우성(26)은 힙합을 받아줄 공연장이 마땅치 않아 80석 규모 인형극장을 빌려 공연하고, 기회가 생기면 한 달에 서너 번씩 서울을 오간다. 빈세진은 “갈 때마다 20만원씩 적자지만 울산 공연에서 채웠다”고 했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음악에 전념하는 진우성은 “음악을 포기하는 건 대부분 돈 문제 때문이지만, 얼마나 힘들지 알고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헤드폰을 쓴 남성이 마이크 앞에 서 있다. 벽에 WOO-SIDE 네온사인이 있다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래퍼 우싸이드

전북 순창고추장축제 무대에 섰던 전직 래퍼 해치아이(권선홍)은 “맨 앞에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고 아기들은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며 “공연과 행사는 다르다. 공연은 즐기러 온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고 행사는 돈을 벌기 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시절을 앨범 ‘유급휴가’로 남겼다. 행사는 생계를 잇지만 씬을 만들지는 않는다.

지역 문화는 위태롭다. 정부가 지역 음악문화 소멸을 막겠다며 내놓은 것이 음악창작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3년 서울 마포에 처음 세운 뒤 광주·부산을 거쳐 전국으로 넓혔고, 지금은 강원부터 제주까지 17곳이 운영된다. 개소 때 국비와 지방비를 1대1로 맞춰 최대 20억원을 시설에 넣었다. 비주류 음악의 지역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게 출발점이었지만, 지역별 나눠 먹기식으로 흐르다 보니 큰 성과를 내진 못했다. 그 사이 격차는 더 벌어졌다. 문체부 집계로 2024년 대중음악 공연의 70% 이상이 수도권에서 열렸다.

음악창작소와 수도권 쏠림

17곳 전국에서 운영 중인 음악창작소2013년 서울 마포에 처음 개소
20억원 개소 때 시설에 넣은 최대 금액국비·지방비 1대1
70% 이상 수도권에서 열린 대중음악 공연2024년, 문체부 집계

정부가 지역 음악문화의 소멸을 막겠다며 내놓은 것이 음악창작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3년 서울 마포에 처음 세운 뒤 광주·부산을 거쳐 전국으로 넓혔고, 지금은 강원부터 제주까지 17곳이 운영된다. 개소 때 국비와 지방비를 1대1로 맞춰 최대 20억원을 시설에 넣었다. 비주류 음악의 지역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취지였지만, 지역별 나눠 먹기로 흐르면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사이 격차는 더 벌어졌다. 문체부 집계로 2024년 대중음악 공연의 70% 이상이 수도권에서 열렸다.

부산·광주 음악창작소를 비교 연구한 정우식 호서대 문화영상학부 교수는 “제도가 개인의 창작물은 지원할 수 있지만 씬은 지원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음반 하나 제작해 주면 끝이다. 음반을 낸다고 명성을 얻는 게 아니라 대다수는 잊힌다”며 “매년 새 사람을 뽑아 실적을 쌓는 수단이 됐다”고 비판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광주음악창작소를 맡았던 남 전 위원이 꿈꾼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는 “지역에서 음악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음악을 하는지,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자꾸 어울릴 기회를 줘야 한다”며 “그걸 알아듣는 기획자가 안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창작소엔 예산 집행자 한 명뿐”이라고 지적했다. 창작소 수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홍대를 빼면 인디 씬이 있는 곳은 광주, 대구, 부산 정도인데 정책적으로 골고루 하다 보니 17곳을 만들었다”며 “5~6곳만 두고 질을 높였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2027년 대중음악 예산을 올해보다 38.5% 늘린 802억원으로 편성하고 인디음악 허브 80억원, 지역 인디음악 축제 30억원, 지역 공연 지원 113억원을 배정했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돈은 늘어난다. 문제는 그 돈이 다시 건수 위주로 집행될지다.

음악창작소는 불모지에서 붙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아줄이다. 부산 래퍼 배수정(32)은 음악을 배운 적이 없다. 케이팝(K-POP) 굿즈 매장 직원으로 생계를 잇는 그는 유튜브에서 산 비트에 가사를 써 2021년 첫 싱글을 냈다. 이후 부산음악창작소의 서울 프로듀서 매칭 프로그램에서 가수 현아, 그룹 아이들 등의 곡 작업에 참여한 프로듀서·작곡가 빅싼초(김태호)를 만나 2023년 1월 ‘블루 다이브’를 냈다. 빅싼초는 “지역에 잘하는 사람이 많아 놀랐는데, 특히 힙합은 날것의 느낌이 강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지역은 인프라와 프로모션 기회가 부족하다. 조금만 더 받쳐준다면 지역 뮤지션도 자기 색깔을 지키며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수정은 이듬해 빅싼초에게 다음 곡도 제안했지만 지원 사업에서 떨어져 성사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부산에 남을 생각이다. 배수정은 “서울에 살았으면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방황했을 것”이라며 “부산은 하고 싶은 걸 지속하게끔 숨 쉬게 해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검은 가방을 멘 여성이 골목에 서 있다
부산의 인디뮤지션 배수정.

섬은 문턱이 더 높다. 제주 랩코어(랩과 강렬한 록을 섞은 장르) 밴드 ‘감귤서리단’의 멤버 7명 중에는 은행원, 드럼학원 원장, 기타 강사가 있다. 한 달에 두세 번 서울 클럽 공연을 가려면 비행기 삯에 밥값, 숙박비까지 100만원을 훌쩍 넘길 때도 있다. 드러머 정승환(31)은 “학원에서 번 돈을 비행기 값으로 넣는 것”이라고 했다. 제주음악창작소의 교류 공연은 이들이 서울과 울산 뮤지션을 만나는 드문 통로였다.

일곱 명의 밴드 멤버가 합주실에서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다
제주 랩코어 밴드 ‘감귤서리단’.
키보드와 베이스, 드럼, 기타를 연주하는 밴드
합주실에서 연주하는 ‘감귤서리단’.

정책이 닿지 않는 곳에서 씬을 지탱해 온 것은 사람이었다. 1999년 대구 대명동의 작은 클럽 ‘헤비’에서 시작된 힙합 공연 ‘힙합트레인’은 올해로 27년째다. 대구 출신 래퍼 마이노스(최민호·43)는 PC통신 게시판에서 알게 된 서울의 아마추어 래퍼들을 버스와 기차에 태워 대구로 불렀다. 래퍼 피타입, 더콰이엇, 팔로알토, 키비 등도 이 무대에 섰다. 1996년 문을 연 헤비의 신해원(55) 대표는 이 공연을 “명절에 타지에 살던 가족이 다 모여 잔치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청년들은 더 작은 단위로 움직인다. 경기 의정부 래퍼 MC란자(오수환·31)는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붐박스(휴대용 스피커)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그는 “어제는 사람이 안 와서 혼자 사이퍼를 했다”며 “꾸준히 남겨놓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2019년 지금은 없어진 의정부영상미디어센터 지원금 200만원으로 전국 힙합씬을 다큐멘터리 ‘마이크멘스탠리’에 담은 그는 “찍어 보니 예상보다 방대한 씬이 있었는데, 너무 쉽게 잊힌다”고 말했다.

물론 서울로 가는 이들이 훨씬 많다. 광주 래퍼 레슬리(이지원·25)는 재작년 광주음악창작소 제작지원 1등으로 데뷔 EP(미니앨범)를 냈다. 하지만 지역에선 버티기 어려웠다. 결국 한 달 전 서울에 방을 구했다. 그는 “서울은 경쟁이 치열하다지만 목표를 잡을 기회라도 있다”며 “광주엔 그게 없다”고 했다. 마이노스는 이 흐름을 “어쩔 수 없는 분위기”라고 부르며 “로컬 씬은 아티스트가 만든다기보다 그 도시 사람들의 응원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지역 힙합은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정 교수는 “오프라인 장소에서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로 옮겨간 것이니 소멸이 아니라 이동”이라면서도 “온라인은 지역성을 없애버린다. 유튜브 담론은 결국 ‘대도시로 가야 한다’로 귀결된다”고 했다. MC란자의 답은 기록에 있다. 그는 “가게도 클럽도 레코드숍도 사라질 수 있다. 남은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와 기록을 남기느냐가 중요하다”며 “그게 남아 있으면 지역 힙합이 죽었다고까지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낙서로 덮인 지하 통로의 파노라마
그래피티와 낙서로 덮인 지하 통로.

부산대역 똥다리 밑에서 와일즈원에게 다시 사이퍼를 열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이퍼는 판을 깔아 놓고도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그는 “이제 그런 실패를 마주할 용기 있는 친구가 없다”고 했다. 그 자신도 직장과 가족이 생긴 지금은 예전처럼 매주 다리 밑으로 출근하기 어렵다. 그는 “재미를 잃지 않아야 한다”며 “책임감으로 하게 된다고 느껴지는 순간 발걸음이 멈춘다”고 말했다. 9월5일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오랜만에 공연 후기가 올라왔다.

▶PLAY SIDE B 지역에서 시작한 래퍼 53명의 행방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지역에 남을 이유 없어… 하나둘 서울·수도권으로 떠나가… 동료의 ‘빈자리’

지역에서 랩을 시작한 청년 래퍼의 절반 가까이가 수도권으로 거점을 옮겼거나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지역으로 내려간 래퍼는 거의 없었다. 지역에 남은 이들이 꼽은 가장 큰 아쉬움은 무대도, 돈도 아닌 사람이었다.

세계일보가 전국 래퍼 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 래퍼 설문조사’를 13일 분석한 결과, 지역에서 음악을 시작한 53명 중 23명(43.4%)이 ‘서울·수도권으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고 답했다. 2명은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반면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옮긴 이는 2명뿐이었다. 응답자의 66.3%(53명)가 현재 수도권에 산다. 조사는 웹 설문 방식으로 8월20일부터 9월21일까지 진행됐다.

청년 래퍼 80명은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갔나

점 1개 = 1명

※‘그 외’ 3명은 전체 80명에서 나머지 응답을 뺀 값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2026년 8월20일~9월21일, 80명)

떠난 이유는 인프라와 사람이었다. 지역에서 시작해 서울로 온 20대 초반 래퍼는 “공연장, 주위 사람들의 도움,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대면 교류 등 서울에 와서 잠깐 해 보니 많은 차이를 느낀다”고 적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서울에 있어서 연을 쌓기 위해”, “지역 내 힙합 장르에 대한 혐오와 멸시 때문”이라는 답도 있었다.

남은 이유는 대체로 음악 바깥에 있었다. “직장이 지방이라”(대전·충청 20대 후반), “집과 직장이 있기에”(광주·전라 30대 초반)처럼 생계가 먼저였다. 경기·인천의 20대 초반 래퍼는 “서울로 가면 생활비를 내가 부담해야 하는데, 그럴 바엔 앨범에 쓰겠다”고 했다. 서울을 굳이 택하지 않은 이도 있었다. 대구·경북의 20대 초반 래퍼는 “내가 느끼는 서울은 너무나도 각박하다”며 “내가 지향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어서 남아 있기로 했다”고 썼다.

지역 활동의 아쉬움을 묻는 문항에서 가장 자주 나온 말은 ‘사람’이었다. “그냥 사람이 없다”(광주·전라 20대 후반), “교류할 사람이 별로 없다”(대구·경북 20대 초반), “좁다”(광주·전라 10대 여성)는 답이 이어졌다.

“그냥 사람이 없다”

지역 활동의 아쉬움, 응답 중에서
“그냥 사람이 없다”광주·전라 20대 후반 “교류할 사람이 별로 없다”대구·경북 20대 초반 “좁다”광주·전라 10대 “커뮤니티 형성이 홍대 주변과 달리 어렵다”경기·인천 30대 후반 “늘 하는 사람만 공연하는 느낌”대구·경북 20대 초반

남은 래퍼들의 살림은 뜻밖에 수도권보다 나았다. 비수도권 거주 응답자 26명 중 8명(30.8%)이 최근 1년간 음악으로 500만원 이상을 벌었다. 수도권 거주자는 53명 중 3명(5.7%)에 그쳤다. 차이는 레슨·강의에서 났다. 비수도권 응답자의 42.3%가 레슨·강의를 주요 수입원으로 꼽아 수도권(13.2%)의 3배를 넘었다. 음악 수입만으로 생활한다는 5명은 모두 지역에 남은 래퍼였고, 전원이 레슨·강의로 생계를 잇고 있었다. 음악창작소·문화재단 지원을 받아본 비율도 비수도권(30.8%)이 수도권(11.3%)보다 높았다.

비수도권 vs 수도권: 수입과 지원

현재 거주지 기준 · 단위: %
비수도권(26명) 수도권(53명)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다만 이는 버텨낸 이들의 수치다. 비수도권 응답자 중 30대와 활동 10년 이상은 각각 30.8%로 수도권(15.1%, 13.2%)의 두 배를 웃돌았다. 젊은 래퍼는 이미 떠났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지역에 남은 이들은 나이도 경력도 많다

단위: %
비수도권 수도권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그렇다고 사정이 넉넉한 건 아니다. 비수도권 응답자 중 정산이 크게 늦어진 경험은 34.6%로 수도권(17%)의 두 배였고, 출연료를 받지 못한 경험도 19.2%로 수도권(9.4%)보다 많았다.

계약서는 나은데 정산은 더 늦다

단위: %
비수도권 수도권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필요한 지원으로 비수도권 응답자들은 제작비와 유통·홍보 지원(각 57.7%)에 이어 선배 뮤지션과의 연결·멘토링을 무대·공연장과 같은 비중(46.2%)으로 꼽았다. 수도권 응답자들이 무대(66%)를 멘토링(35.8%)보다 훨씬 앞세운 것과 대비된다. 지역 래퍼에게는 무대만큼이나 사람과의 연결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그냥 사람이 없다”고 했던 광주·전라 지역의 한 래퍼는 하고 싶은 말을 묻는 마지막 문항에 이렇게 적었다. “친구 좀 만들고 싶어요.”

지역에 필요한 건 무대만큼 ‘연결’

필요한 지원 · 단위: %
비수도권 수도권

※비수도권은 제작비·유통·홍보 지원(각 57.7%)이 가장 많았음

자료: 세계일보 ‘청년 래퍼 활동 실태 설문조사’

박스 가사 속 지역

동네 품은 힙합… 가사에 새긴 래퍼들

힙합은 태어날 때부터 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장르다. 1973년 8월11일 미국 뉴욕 브롱크스의 동네 파티에서 시작된 힙합은 퀸스와 브루클린, 로스앤젤레스 인근 콤프턴 같은 동네 이름을 앞세우며 자랐다. 래퍼들은 랩을 시작할 때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부터 밝히곤 한다.

힙합의 영향을 받은 한국 대중음악에서도 지역은 단골 소재다. 가수 싸이(박재상·49)의 ‘강남스타일’(2012)은 서울의 한 자치구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방탄소년단(BTS)은 ‘Ma city’(나의 도시·2015)에서 멤버들이 각자의 고향인 일산·대구·부산·광주를 노래했다.

국내 래퍼들도 자신이 사는 곳과 고향을 가사에 담아 왔다. 1세대 힙합 그룹 가리온은 첫 앨범(2004)에 실린 ‘옛이야기’에서 “홍대에서 신촌까지 깔아놓은 힙합리듬”이라는 가사로 언더그라운드(방송·대형 기획사 밖에서 활동하는 음악 영역) 힙합의 무대를 그렸다. 지난해 첫 정규앨범을 낸 래퍼 히피쿤다(김지호·27)는 ‘돌아가야만 해 창동에’에서 고향인 서울 도봉구 창동을 노래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창동은 외롭고 고립된 곳이었지만 돌아보면 자신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동네라고 했다. 부산 래퍼 배수정(32)은 ‘블루 다이브’에서 푸른 바다의 이미지로 부산의 정서를 풀어냈다.

홍대에서 신촌까지
깔아놓은 힙합리듬

가리온 ‘옛이야기’(2004) 중에서

지역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장치는 사투리다. 대구 출신인 가리온의 MC메타(이재현·55)는 2011년 DJ렉스(최재화·52)와 함께 낸 ‘무까끼하이’(무식하게)의 랩을 모두 경상도 사투리로 썼다. 이 곡은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노래상을 받았다. 사투리가 아니어도 지역을 앞세운 노래는 이어진다. 부산 출신 래퍼 정상수(42)는 ‘부산을 대표해’(2015)라는 곡을 냈다. 제주 출신 뮤지션들이 모인 감귤서리단은 2023년 데뷔해 감귤을 소재로 한 자작곡을 선보인다.

LOCAL SIDE 가사에 새겨진 동네
  1. 서울 홍대·신촌가리온 ‘옛이야기’2004
  2. 서울 창동히피쿤다 ‘돌아가야만 해 창동에’‘툰드라’ 수록
  3. 대구MC메타·DJ렉스 ‘무까끼하이’2011
  4. 부산정상수 ‘부산을 대표해’2015
  5. 부산배수정 ‘블루 다이브’2023
  6. 울산진우성 ‘합’경남 사투리
  7. 제주감귤서리단 ‘Orange Savage’2023

서울로 거점을 옮긴 래퍼든 지역에 남은 래퍼든, 자신이 자란 동네를 가사에 새기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일보 탐사보도 · 한국힙합 30년 · 4화 · 인터뷰

한국힙합 30년을 만든 사람들

왼쪽부터 MC메타, 홍종화 SM엔터테인먼트 고문, 강명훈 힙합플레이야 시니어 매니저
왼쪽부터 MC메타, 홍종화 SM엔터테인먼트 고문, 강명훈 힙합플레이야 시니어 매니저.
  1. 01MC메타가리온 · 1세대 래퍼
  2. 02홍종화SM엔터테인먼트 고문
  3. 03힙합플레이야강명훈 시니어 매니저 · 김용준 대표
INTERVIEW 01

MC메타1세대 래퍼 · 가리온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게 힙합의 힘… 사회 문제 대변·해법 제시 메신저 되길”

모자와 안경을 쓴 MC메타가 베이스 앰프 앞에서 손짓하며 말하고 있다
MC메타.

2026년 한국힙합을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하자 1세대 래퍼 MC메타(본명 이재현·55·사진)는 “분투”라고 답했다. 1998년 나찰(〃 정현일·49)과 힙합 듀오 가리온을 결성한 그가 보기에 요즘 래퍼들은 자신의 음악을 증명하려 매 순간 싸운다.

지난 7월14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지하 합주실에서 만난 메타는 “우리는 아무도 없는 데서 우리끼리 했으니 못해도 ‘넌 무가치해’라는 소리는 안 들은 행운의 세대였다”며 “지금은 모두가 잘하니 자신이 무가치하지 않다는 걸 어떻게든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힙합에 발을 들일 무렵엔 ‘무가치하다’는 시선이 래퍼 개개인이 아니라 장르 전체를 향했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통기타와 록, 헤비메탈을 거쳐 주한미군방송 AFKN에서 랩을 처음 만났다. 춤추는 음악은 음악도 아니라는 편견이 강하던 때라 리듬을 타기 좋았던 흑인음악은 몰래 들었다. 정보에 목말라 찾아간 곳이 PC통신 하이텔의 흑인음악 소모임 ‘소울 트레인’이다. 이곳은 뒤에 동호회 ‘검은소리’(Blex)로 이어졌다. 회원 아버지가 해외 출장길에 사 온 랩 음반 한 장이면 게시판의 스타가 됐고, 그 음반을 듣고자 200명이 음악감상회에 모이기도 했다.

홍익대 공대 대학원 졸업을 앞둔 1997년엔 외환위기가 터졌다. 학위를 따도 미래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힙합은 숨통이었다. 연구실 인터넷으로 미국 래퍼들의 인터뷰와 가사를 닥치는 대로 찾았다. 그렇게 모은 자료가 A4 용지 20박스. 그 안에서 발견한 답은 ‘진짜다움’이었다. 그는 “내가 누군지 알고,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부심을 갖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시대상까지 담아낼 수 있다는 게 힙합이 가진 힘이다”고 했다. 우리말 랩의 기틀을 놓은 그가 대구 사투리로 쓴 ‘무까끼하이’(무식하게)도 이 고민에서 나왔다. 그는 “나는 한국인이고 모국어는 한국어이니 당연히 우리말로 랩해야겠다고 출발한 것”이라고 회상했다.

“나는 한국인이고 내 말은 한국어이니 당연히 우리말로 랩해야겠다고 출발한 것”

그로부터 약 30년, 메타가 바라본 한국힙합은 어느덧 고유한 색깔을 갖춘 장르로 성장했다. 그는 “검은소리와 마스터플랜(신촌의 힙합 공연장) 시절엔 역사가 깊은 일본힙합이 부럽고 이기고 싶었다”며 “어느 순간 뒤집혔다. 시기마다 새로 등장한 젊은 뮤지션들이 그 역할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2001년 첫 해외 공연지인 홍콩에선 현지 젊은이가 한국어 랩의 공격적인 느낌과 타격감이 멋있다고 했다. 그는 “외국인 눈엔 한국 노래는 곧 케이팝(K-POP)이고 그 안에 힙합 지분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증명해야 하는 경쟁 속에서 요즘 청년들의 가사가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다고 그는 봤다. 플렉스(flex·자랑하다)도 시장 논리가 반영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본인 음악이 가진 가치와 그 음악으로 얻는 만족감, 궁극적으로는 행복을 추구하는 게 비굴하거나 구차한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분투는 그의 이력이기도 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이크를 쥔 청년들 얘기가 나오자 그는 자신의 30대를 꺼냈다. 2004년 1집을 낸 뒤 회사 사정으로 활동이 끊기자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차관리 일을 했고, 정직원이 돼 1년6개월간 월급을 받았다. 그는 “‘이런 삶도 괜찮네’ 싶던 차에 1집 제작자가 ‘2집 합시다’라고 연락해 온 순간 눌러 놨던 게 터졌다”고 털어놨다. 이때 돌아와 쓴 곡이 무장투쟁의 줄임말 ‘무투’다. 첫 소절에 담은 것은 변화였다. 그는 “변화는 늘 중요한 코드였다. 시대에 따라 변화의 옷을 갈아입으며 본질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리온은 스스로를 음반보다 무대가 먼저인 ‘라이브형 팀’이라 부른다. 2010년 2집과 2024년 3집 사이 14년의 공백에도 무대는 이어졌다. 3집을 낸 뒤엔 “굳어 있던 톱니바퀴가 돌아가니 계속 돌리자”며 곧장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힙합의 생일로 꼽히는 8월11일에 4집을 냈다. 인천음악창작소 음반 제작 지원사업에 힙합 음반이 선정된 첫 사례로, 11곡을 메타가 전부 프로듀싱했다.

INTERVIEW 02

홍종화SM엔터테인먼트 고문

“100년 후에도 불릴 힙합이 클래식 될 것… 장르 구분 앞서 음악 역할 생각을”

안경을 쓴 홍종화 고문이 스피커와 장비가 가득한 작업실에서 손짓하며 말하고 있다
홍종화 SM엔터테인먼트 고문.

한국힙합의 문익점을 꼽으라면 홍종화(64·사진) SM엔터테인먼트 고문을 빼놓기 어렵다.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왔듯 그는 미국 힙합 문화를 국내 대중음악에 접목했다. 그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문나이트’에서 만난 흑인음악의 리듬을 1990년 현진영의 데뷔 앨범에 옮겨 심었다. 홍 고문은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처음 영입한 1호 프로듀서 겸 작곡가다. 이수만·유영진 등의 곡을 작업했고, 이후 후학 양성에 뛰어들어 방탄소년단(BTS) 곡을 쓴 슈프림보이 등을 길러냈다.

지난 8월14일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그는 40년도 더 된 공책 한 권을 펼쳐 보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0년부터 써 온 음악 일기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곡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고, 곡명을 장르별로 적었다. 공책 뒤쪽에는 재닛 잭슨의 ‘리듬 네이션’도 적혀 있었다. 뮤직비디오에서 수십 명의 댄서가 힙합 리듬에 맞춘 군무를 펼쳐 그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곡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공책에 모으던 소년은 경희대 작곡과에 진학한 후 이태원에서 본격적으로 힙합을 만났다. 미군 부대를 통해 유통된 음반과 주한미군방송 AFKN의 음악 프로그램 ‘소울 트레인’이 통로였다. 그는 “오징어처럼 유선형으로 추는 춤이 너무 멋있었다”며 “힙합 리듬에 리듬 앤 블루스(R&B)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결부시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게 계기”라고 말했다. 테크노처럼 곧게 뻗는 리듬보다 몸이 절로 들썩이는 힙합 리듬에 마음이 끌렸다는 설명이다.

문나이트에서는 그 리듬의 힘을 눈으로 확인했다. 홍 고문은 그곳을 현진영, 구준엽, 강원래, 양현석, 이주노 등 춤에 빠진 이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던 무대로 기억했다. 힙합을 음반으로 만들겠다는 확신도 거기서 생겼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인데, 나 혼자 갖고 있기는 아까웠다”며 “내 친구들한테도 좋은 걸 소개하겠다는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냥 좋아서 했기 때문에 현진영 1집 전 곡 작곡에 일주일밖에 안 걸렸다”고 했다. 현진영 1집 크레디트에 ‘랩 메이킹’이란 용어를 국내 처음으로 적어 넣은 것도 그다.

힙합 음악을 만드는 것과 이를 방송 무대에 올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케이블TV가 등장하기 전, 방송국은 가수의 머리와 복장까지 규제했다. 홍 고문은 “현진영과 와와 1집 의상은 외국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귀공자 스타일이었다. 전혀 힙합 같지 않은 힙합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대중음악은 ‘딴따라’, 힙합은 ‘동네에서 노는 애들’이라는 인식이었다”며 “지금은 아이들을 케이팝(K-POP) 스타로 키우려 하지 않나.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고 말했다.

“문화는 흘러가는 바람과 같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힘은 강하고, 막을 수는 없다.”

홍 고문은 래퍼 없는 아이돌 그룹을 찾기 힘든 지금의 케이팝을 ‘비빔밥’에 비유했다. 그는 “여러 가지가 어우러져 다양한 취향을 다 맞춰 준다. 디스하는 것도 자유이지만 팝에 힙합 요소를 넣는 것도 자유”라며 “61년 전 비틀스의 ‘예스터데이’가 그렇듯 100년 후에도 불릴 힙합이 클래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M 안에 EDM(전자 댄스 음악)과 R&B 특화 레이블이 있듯 언젠가 힙합 레이블도 직접 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아쉬움도 감추지 않았다. EDM이 팝과 결합해 시장이 커지는 사이 힙합과 R&B는 위축됐다는 진단이다. 그는 “퀸시 존스가 있었기에 마이클 잭슨이 탄생했듯, 문화를 이끄는 특출한 프로듀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래퍼에 대한 주문은 분명했다. 그는 “힙합은 다른 음악보다 더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다. 래퍼는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대변하는 메신저가 됐으면 한다”며 “이슈를 만들되 이슈에 머물지 말고 해결 방법까지 메시지로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트렌드는 변하지만 음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도 댄스 음악이었다. 장르 구분에 앞서 음악의 역할을 생각해 달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문화는 흘러가는 바람과 같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힘은 강하고, 막을 수는 없다. 여러분이 그 바람이 되어 달라. 따뜻한 바람이 되어 달라”고 덧붙였다.

INTERVIEW 03

힙합플레이야강명훈 시니어 매니저 · 김용준 대표

“요즘엔 힙합을 정의하려 하지 않아… 이렇게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발전”

안경을 쓰고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강명훈 매니저가 카페 앞 의자에 앉아 있다
강명훈 힙합플레이야 시니어 매니저.

2000년 8월18일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 김용준씨가 취미로 웹 커뮤니티 하나를 만들었다. 힙합플레이야(힙플)다. 이후 26년간 힙플은 래퍼와 팬을 잇는 통로였다. 대형 배급사가 받아주지 않던 인디 힙합 음반을 유통했고, 2002년부터는 래퍼들이 직접 진행한 대담 방송 ‘힙플라디오’로 비주류 음악인의 목소리를 전했다. 지금은 하루 2만5000명이 찾는 힙합 축제까지 연다. 스무 살 대학생 운영자는 마흔여섯의 대표가 됐고, 그가 응원 댓글을 남겼던 힙합 유튜브 채널 운영자 강명훈(29·사진)씨는 시니어 매니저로 힙플 콘텐츠팀을 이끈다.

지난달 8일 서울 마포구 힙플 사옥 근처 카페에서 두 사람을 함께 만났다. 2022년 힙플에 입사한 강 매니저는 ‘힙플라디오’를 인터넷 생방송으로 바꿔 래퍼 박재범·지코·양홍원 등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기획 공연 ‘힙플쇼’도 맡고 있다. 26년 생존의 비결로는 ‘청자 관찰’을 꼽았다. 그는 “특정 힙합만 선호하는 매체는 소비자에게 부담스럽다”며 “우리는 밥 먹을 때도 지금 누가 왜 하입(주목과 화제)을 받고 왜 떨어지는지 얘기할 만큼 힙합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국힙합이 인터넷에서 자랐다는 통설을 “반은 맞고 반은 다르다”고 평가했다. 그는 “TV를 통한 유입, 마스터플랜(신촌의 힙합 공연장)과 홍대 클럽의 자생적 언더그라운드, 그리고 인터넷 세 갈래가 있었다”며 “쇼미더머니(힙합 경연 프로그램)에서 아마추어와 레이블 소속 래퍼, TV에 나오던 사람이 용광로처럼 섞이며 구분이 무의미해졌다”고 말했다.

강 매니저는 그 뒤의 변화를 짚었다. 래퍼라는 직업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력을 쌓아 가던 과정이 쇼미더머니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중은 편집된 디스전(서로를 공격하는 랩 대결)을 보고 래퍼의 행동을 잘못 이해하기도 했다”며 “씬(음악인과 팬이 이루는 활동 무대) 안에서 인정받기 전에 대중에게 먼저 보이는 구조가 됐다”고 했다.

한때 힙플 게시판은 래퍼와 팬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한국힙합의 쟁점을 정리해 가던 공론장이었다. 무명 래퍼들이 자작곡을 올리던 게시판에선 산이·테이크원 같은 래퍼가 활동했다. 그 역할은 이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로 넘어갔다. 강 매니저는 “파급력과 접근성, 양은 얻었고 질적인 의견 교환은 잃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커뮤니티에선 정제된 의견이 기록으로 보존되고 별로인 의견은 깎여 나가며 결론이 도출됐다”며 “SNS는 각자 의견을 빠르고 강하게 남기고 가는 휘발성 매체다. 더 자극적인 말로 추천 수가 높으면 이겨 버린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음악인에게 커뮤니티가 갖는 무게는 오히려 커졌다고 본다. 그는 “소극장 공연이 사라지고 신문·방송 등 기존 매체의 힘이 약해지면서 음악인의 서사에 커뮤니티가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며 “현역 래퍼들을 만나 보면 다들 커뮤니티를 살펴본다”고 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잘될 것 같아서 하는 건 힙합이 아니다”

힙합은 문화로 정착했을까. 강 매니저는 “정의하려는 게 없어지는 것 자체가 발전”이라고 답했다. 그는 “미국 사람들은 힙합이 언제 탄생했는지 몰라도 일상의 일부로 두고 왜 좋아하는지 알며 즐긴다. 그렇게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발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선은 분명했다. 그는 “그래도 힙합 아닌 건 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잘될 것 같아서 하는 건 힙합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문화의 조건으로 기록을 꼽았다. 그의 꿈은 한국힙합 박물관이다. 그는 “남겨야 과거가 보존되고 앞으로의 참고가 된다”며 “클럽에서 노는 사람과 정리하는 학자가 공존해야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힙플이 그동안 쌓아 온 뮤지션 인터뷰와 게시판 글이 그 기록의 출발점인 셈이다. 나아가 ‘한국힙합의 날’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