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유적지들 제대로 보존 안돼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서는 이곳을 ‘여주제(堤) 개수공사-이호지구’라고 부른다. 그런데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용역으로 6개 문화재 조사기관이 합동으로 조사해 펴낸 ‘한강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에서는 이 지역 일부에 ‘유물산포지14’라는 이름을 붙였다.
보고서는 유물산포지14 지역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량의 경질무문토기와 회청색 경질토기를 비롯해 회색 연질타날문토기 등이 수습되었다. 비교적 좁은 면적에서 유물의 밀집도가 높게 나타나 유적 범위는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현재도 복토를 통해 신규 식당가가 조성되는 상황이므로 유적의 보존 및 시·발굴 조사가 시급하다.”
그런데도 해당 지역 주변에서는 공사로 땅이 파헤쳐진 것이다. 이 공사는 2010년 12월12일까지 진행되는 ‘기슭막이(호안공)’ 사업으로 유실 제방 복구, 홍수 시 인근 농경지 및 주거지 침수 피해 방지를 목적으로 내걸었다. 홍수 피해를 막으려면 꼭 필요하다고 한다.
확인 결과, 유물산포지14 지역 중 일부도 공사 영역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공사는 인근에 유물산포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유물 출토지역이 표시된 지적도를 보여주었더니, 다행스럽게도 현장 관계자는 “유물이 나온 곳은 공사 현장에서 40∼50m 떨어진 곳”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언제든지 유물이 나올 수 있는 곳인 만큼 대책 없는 공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사 과정에서 땅속 유물이 훼손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문화재보호법은 대규모 공사시 문화재 지표조사를 의무화하고 매장문화재가 발견되면 즉각 정부에 신고·보호하도록 정해놨다. 하지만 공사 현장에선 “사업 일정을 맞출 수 없다”는 이유로 고의로 훼손하는 일이 적지 않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건설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매장문화재 훼손 사건은 정부가 파악한 것만 총 24건. 심지어 공기업이 고속도로, 국·지도 등을 건설하면서 일으킨 사건도 7건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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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여주군 이호리 강변에서 지난 28일 기슭막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문화재 전문 연구기관들은 이 일대에 유물이 산포돼 시·발굴 조사가 시급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 |
지난해 6월 제주 천미천 유적 훼손 사건은 한강 유물산포지14 사례와 비슷하다. 제주 성읍민속마을 근처 천미천에서 기슭막이 공사를 하기 전에 지표를 조사한 결과 철기시대 유물이 출토돼 시굴조사를 해야 했지만 그냥 공사한 것이다.
지난해 4월 충남 당진에서 벌어진 문화재 훼손 사건은 매장문화재 경시 풍조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 중장비 부품 제조업체가 공장을 지으려던 곳에서 고려시대 석곽묘 등 매장문화재가 나와 공사가 중단되고 장기간 발굴작업이 지속되자 해당 업체가 유적을 훼손해버렸다. 업체 경영자는 발굴조사단에 “발굴 속도가 왜 이리 느리냐. 왜 호미로 긁고 있느냐”고 항의하다 결국 굴착기를 동원해 유구까지 파헤쳤다.
문화재 훼손 사건의 처벌은 미약하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허가 없이 매장문화재를 발굴한 자 등을 10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엄하게 규정했다.
하지만 관련자 주의 조치, 사업시행자 주의 환기, 엄중경고 정도로 끝나는 사례가 많다. 엄한 처벌 규정을 적용하기에는 장기간 사업 지연에 따른 개발사업자의 부담이 너무 큰 데다 유물 가치 등을 놓고 판단하더라도 가혹하게 처벌하긴 어렵다는 게 당국의 속마음인 것으로 보인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팀장)·박성준·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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