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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으론 임신 안돼” 망언 미국 前하원의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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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05 07:00:00 수정 : 2021-10-05 02: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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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유세 도중 “여성, 성폭행 후 임신 막을 수 있어”
민주·공화 양당 십자포화 속 낙선… 이후 정계서 ‘퇴출’
‘낙태 절대 금지’ 텍사스 州法 위헌 논란 속 이목 집중
2일(현지시간) 암으로 별세한 토드 아킨 전 미국 하원의원의 생전 모습. 그는 2012년 “성폭행에서 비롯한 임신은 거의 없다”고 말해 망언 파문에 휩싸였고, 결국 정계에서 퇴출당했다. AP연합뉴스

미국 미주리주(州)를 지역구 삼아 12년간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토드 아킨이 2일(현지시간) 7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보수 성향의 아킨 전 의원은 생전에 여성의 낙태권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는데, 마침 텍사스주의 낙태 금지법 제정을 계기로 미국 사회가 두 쪽으로 갈라진 터라 그의 부고(訃告)가 일으킨 반향이 매우 크다.

 

3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고인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교외 윌드우드의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유족은 그가 몇 해 전에 암에 걸려 투병해왔다고 밝혔다.

 

미주리주는 미국에서도 보수 색채가 짙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1947년 이곳에서 태어난 고인은 주의회 의원(1988∼2001)을 거쳐 중앙 정치무대에 진출했다. 미주리주를 대표하는 연방 하원의원(2001∼2013)으로 무려 12년간 활동한 그는 연방 상원의원 도전을 결심하고 2012년 공화당 공천으로 미주리주 상원의원 선거에 뛰어들었다.

 

2012년 11월 연방 상원의원의 3분의 1을 뽑는 선거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졌다. 재선에 도전하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이를 막으려는 공화당 밋 롬니 후보 간에 혈전이 벌어졌다. 그런데 상원의원 선거 유세 도중 고인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판세를 뒤흔들었다. 성폭행으로 임신한 여성의 낙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제가 의사들한테 들은 바로는 그러한(성폭행에서 비롯한) 임신은 아주 드뭅니다(really rare). 만약 ‘진짜 강간’(legitimate rape)이었다면 여성의 몸은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임신을 막았을 겁니다.”(토드 아킨)

 

미국 수도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낙태 금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손팻말을 든 채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그때까지 12년간 하원의원을 지냈고 이제 상원 진출도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고인의 정치생명은 이 발언으로 하루아침에 끊어졌다. 여성들은 “강간에 진짜와 가짜가 어디 있느냐” “일단 임신만 하면 무조건 사랑의 결과란 말이냐” 등 항의를 쏟아냈다. 진보 성향의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이를 “모욕적 발언”으로 규정한 뒤 “성폭행은 성폭행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공화당 롬니 후보조차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라며 “나는 성폭행 피해자의 경우 낙태를 허용하는데 찬성한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상원의원 출마 포기를 종용했으나 고인은 선거전 완주를 강행했다. 망언 파문으로 이미 인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고인은 경쟁 후보에게 16% 포인트 차이로 패했고 그 길로 정계에서 퇴출됐다. 여론에 밀려 ‘진짜 강간’ 발언에 관해 공개 사과를 한 고인은 훗날 회고록을 통해 이를 철회했으나 이미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진 뒤였다.

 

마침 미국은 요즘 고인의 주장과 비슷하게 성폭행에서 비롯한 임신의 경우도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텍사스주 법률 때문에 시끄럽다. 텍사스주는 미국에서 ‘보수의 아성’으로 통하며 현재도 주지사를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다. 민주당 등 진보 진영은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하지만 막상 위헌소송으로 이어져 연방대법원으로 가는 경우 공화당 정권 시절 임명된 보수 대법관들이 건재해 보수 대 진보가 6대3으로 확고한 보수 우위 구도 아래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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