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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더러워도 버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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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25 23:59:31 수정 : 2020-11-27 11:2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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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처럼 맑은 선비는 세상에 나서기를 꺼린다. 왜 그럴까. 찌든 세파에 오염될까 염려하기 때문일까. 퇴계 이황도 그런 인물이다. 선조가 다섯 달 동안 일곱 번이나 불러올렸지만 벼슬을 한사코 거절했다.

수기치인(修己治人). 퇴계 정치철학의 요체다. 자신을 수양한 후 세상 다스리는 일을 하라는 뜻이다. 그의 눈에 정치인은 어찌 비쳤을까. 사욕과 당쟁에 젖은 한양. 제 몸 하나 닦지 못한 벼슬아치만 득시글거린다. 그런 곳에 몸을 던지고 싶었을까. 퇴계는 어떤 인물일까. “글 쓰는 것은 곧 심법(心法·마음 쓰는 법)이다. 점 하나 선 하나라도 공경하는 마음으로 써야 한다.” 글 쓰는 일조차 그런 마음으로 썼으니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랴.

다른 사례도 있다. 초나라 재상 굴원. 쫓겨나 초야에 묻혀 살던 어느 날 어부를 만났다. 굴원이 말했다.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어 쓰고….” 음모가 난무하는 세파에 깊은 상처를 받은 걸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다짐이다. 어부가 답했다.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어라.” 무슨 말일까. 진흙탕 같은 세상이라도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

세상의 물이 맑은 적이 있었던가. 유토피아는 머릿속에 그리는 별천지일 뿐이다.

우리 눈앞이 진흙탕 세상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몰아내기 ‘광란’이 벌어지고 있다. 권력비리를 조사하는 검찰 핵심인사들을 대거 좌천시킨 추미애 법무장관. 이번에는 검찰총장 직무마저 정지시켰다. “막가파 장관의 망나니 춤”, “검찰개혁을 참칭한 폭거”라고 한다.

“더럽고 치사해도 버텨주세요.” 7년 전 국정원 댓글사건 조사로 당시 윤석열 수사팀장이 궁지에 몰렸을 때 조국 전 법무장관이 쓴 글이다. 젊은이들이 이 글을 캡처해 돌린다고 한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이렇게 썼다. “굴하지 않고 검찰을 지켜주세요. 사표 내면 안 됩니다.”

왜 캡처한 글을 돌리는 걸까. 조롱이자 응원이다. ‘아무리 난장판이라도 정치권력의 비리를 조사하는 검찰은 살아 있어야 한다’는 응원. 그것은 어부의 충고이기도 하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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