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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 통한 입체적 분장… 상상 속 모든 것 현실로 가져와 [심층기획]

입력 : 2020-11-28 18:00:00 수정 : 2020-11-27 19: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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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분장의 세계’
인체·동물 모형, 움직이는 기계 등도 포함
영화·드라마 등 다양화 따라 갈수록 진화
tvN ‘산후조리원’ 박시연의 살찐 모습
엄지원의 만삭 모습 특수분장으로 화제
영화 ‘백두산’ ICBM 실제 크기로 제작
완성도 높이는 CG, 대체재 아닌 보완재
“가능성 무궁무진해… 관찰력이 가장 중요
임기응변도 필수… ‘진짜 같다’ 최고의 칭찬”
tvN ‘산후조리원’에서 살찐 톱스타 산모로 분한 배우 박시연. 이 특수분장을 한 김승배 마루FX 대표는 “힘든 분장을 하고 열연을 해 줬다”고 돌아봤다. tvN 제공
특수분장 하면 흔히 분장을 떠올린다. 특수분장은 분장과 엄연히 다르다. 변형을 통한 입체적 분장은 물론 인체나 동물 모형 ‘더미’, 움직이는 기계 ‘애니메트로닉스’, 특수 소품도 특수분장 영역이다. 작품의 다양화에 따라 특수분장도 진화한다. 국내 특수분장계를 대표하는 구경주(49) MBC아트 특수분장사와 황효균(44) 셀 공동 대표, 김승배(42) 마루FX 대표, 손희승(39) SBS A&T 특수분장사를 최근 전화나 서면으로 만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특수분장 가능성 ‘무궁무진’… “관찰력 중요”

최근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은 산후조리원이란 소재뿐 아니라 특수분장으로 화제가 됐다. 배우 박시연의 살찐 모습, 엄지원의 만삭 모습은 특수분장으로 탄생했다. 이를 담당한 김승배 대표는 “얼굴과 손발은 실리콘으로, 옷 속의 몸 부분은 계절에 따라 땀을 잘 흡수하는 쿨맥스나 발열내의 재질의 원단으로 최대한 가볍게 특수 의상을 만든다”며 “박시연씨는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목에 붙은 실리콘 일부분을 제거하고 수정해 가며 촬영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특수분장은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SBS 드라마·예능 특수분장을 전담하는 손희승씨는 “‘앨리스’에서 주원씨가 노인 분장을 한 채 12시간 이상 촬영했는데 유지를 잘 해 줬다”며 “수정·보완이 안 되게 망가뜨리면 다 뜯어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좀비물이 인기를 끌면서 좀비 특수분장도 수요가 늘고 있다. 영화 ‘반도’와 ‘#살아있다’, 넷플릭스 ‘킹덤’의 좀비는 물론 ‘기생충’ 복숭아와 수석, ‘백두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엑시트’ 가스 살포 장치 등 특수 소품들도 셀의 전문가들 손을 거쳤다. 황효균 셀 공동 대표는 “망치나 쇠파이프, 야구방망이, 칼 같은 무기도 안전을 고려해 말랑말랑하게 만든다”며 “‘백두산’ ICBM은 실제 ICBM 크기로 만들어 길이가 10m는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살아있다’에서 좀비 특수분장을 한 보조 출연자. 셀 제공

특수분장사들은 “특수분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관찰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MBC 드라마·예능 특수분장을 전담하는 구경주씨는 “특수분장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라며 “사물을 정확히 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작업 전 자료 조사도 하고 많이 공부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도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모든 걸 현실 세계에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황 대표도 “한계도 안 쓰는 재료도 없다”면서 “새로운 재료도 테스트해 보고 유심히 봐 두면 쓸 데가 있다”고 말했다.

◆“CG는 보완재 역할… ‘진짜 같다’, 최고의 칭찬”

컴퓨터 그래픽(CG)과 3D 프린터는 특수분장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다만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다. 황 대표는 “3D 프린터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면서도 “결과물을 뽑아내는 과정은 다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경주씨와 손희승씨도 “CG는 특수분장과 상호 보완적 관계”라고 지적했다.

SBS ‘앨리스’ 촬영 당시 배우 주원에게 노인 분장을 하고 있는 손희승 SBS A&T 특수분장사(오른쪽). 손희승 제공

“‘검법남녀’에서 부검에 쓰이는 쥐를 찰흙으로 만들었어요. 거기에 CG로 약간의 움직임을 줄 수 있는 거죠. 특수분장을 자연스럽게 한다 해도 이음새라든지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생기는데 그런 것들을 CG로 수정할 수 있습니다.”(구경주)

“CG는 특수분장과 뗄 수 없는 관계예요. 표시 나는 부분을 후반 작업에서 CG로 지우죠. ‘앨리스’에서 이세훈의 잘린 다리가 대표적입니다. 배우 박인수씨가 무릎을 굽히고 무릎 밑에 잘린 다리 부착물을 만들어 붙였어요. 배우의 꺾인 다리를 CG로 지운 거죠. 부착물 모델링이나 상처 깊이를 표현하기 위한 음영 등 채색은 사람 손을 거쳐야 해요.”(손희승)

CG 등 다른 팀과의 협업, 임기응변이 중요하다.

영화 ‘백두산’ 속 특수 소품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황효균 셀 공동 대표는 “실제 ICBM 크기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셀 제공

“현장에서 특수분장 콘셉트가 바뀔 때가 있어요. 어렵지만 순발력 있게 대처해야 합니다.”(김승배)

“MBC 입사 전 1990년대엔 영화 특수분장을 했습니다. 영화와 달리 방송은 시간적 제약이 있어요. 현장에서 수정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임기응변이 있어야 하죠.”(구경주)

업계의 숨은 실력자인 이들이 좋아하는 말은 “진짜 같다”는 말이다. 김 대표는 “보는 분들이 어디에 특수분장이 들어갔는지 모를 때 기쁘고, 종합 예술의 협업을 추억하며 보람을 갖는다”고 말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대호’ 속 특수 소품인 호랑이 더미. 셀 제공

◆“손과 머리로 무에서 유 창조”… 특수분장 30년 외길

 

‘미다스의 손’은 그 누구보다 홍기천(62) 특수분장감독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국내 특수분장의 대가인 그는 ‘손과 머리로 무에서 유’를 좌우명 삼아 30년 넘게 특수분장사 외길을 걸어왔다. 그가 독학으로 개발한 실리콘 더미(인체 모형) 등 첨단 특수분장은 업계에서 널리 쓰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시청자의 몰입감과 현실감, 작품의 완성도와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며 올해 대중문화예술 제작진 대상 시상식에서 그에게 장관 표창을 수여했다.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홍 감독은 “공을 인정받아 기쁘다”며 “특수분장은 제 꿈을 실현시켰지만 힘들었다”는 소감을 말했다.

올해 대중문화예술 제작진 대상 시상식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은 홍기천 특수분장감독은 “‘손과 머리로 무에서 유’가 좌우명”이라며 “특수분장에 입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그는 1987년 단 두 장의 사진으로 MBC에 입사했다. 영화 ‘혹성탈출’ 원숭이와 지금의 좀비를 연상케 하는 분장을 한 모습이었다.

 

“그땐 특수분장이란 게 없었고 분장이 뭔지도 몰랐어요. 영화를 좋아해 스태프를 해 보자 싶어 지원했는데 저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어린이 프로그램 ‘모여라 꿈동산’ 외계인 분장이 처음 한 특수분장이에요.”

 

2016년 정년 퇴임하기까지 드라마만 150편 정도가 그의 손을 거쳤다. 대표작으로 ‘동의보감’과 ‘납량특집 M’, ‘다모’, ‘뉴하트’를 꼽는다.

 

“‘동의보감’에 참수 장면이 있어 두상이 필요했어요. 반투명한 창틀 실리콘에 화장품을 녹이니 색이 나오더라고요. 그걸로 실리콘 더미를 최초로 만들었죠. 의학 드라마만 6편 했는데 ‘뉴하트’가 가장 힘들었어요. 손으로 심장을 움직이니 아파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박홍균 PD에게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 했죠. 우연치 않게 골무로 공기를 줬다 안 줬다 하니 되는 거야. 도살장에서 돼지 심장을 갖고 와 실리콘으로 연결했지. 지금은 인공 심장을 만들지만 그땐 쪽대본 때문에 만들 시간이 없었어요. ‘프로그램 망치면 인생 끝이다’는 압박감이 컸죠.”

홍기천 특수분장감독(왼쪽)이 1987년 MBC 입사 뒤 처음 한 특수분장인 ‘모여라 꿈동산’ 외계인 분장. 홍기천 제공

2002년엔 영화 ‘취화선’ 분장을 맡아 칸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다. 최근엔 올라 쿠릴렌코 주연의 프랑스 영화 ‘고요한 아침’ 특수분장을 했다.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꿈만 갖지 말고 노력해서 모든 걸 자기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그 역시 “일주일간 손을 놓으면 손이 굳는다”며 늘 조각을 연습한다.

 

그는 “특수분장이 발전하려면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가 나와야 한다”며 “특수분장에도 입찰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수많은 사람이 특수분장에 도전하는데 의외로 수요가 별로 없어요. 입찰 제도가 없어 다 인맥으로 하거든요. 한두 회사가 영화에 드라마까지 잠식하고 있어요. 후배들이 그 많은 재료비를 들여 공부하는데도 기회가 한 번도 없습니다. 입찰로 해서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 특수분장 업체만 50개가 넘어요. 일이 없으니 대부분 학원을 차리거나 핼러윈 데이 때 분장을 하고 있습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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