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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환각 ‘신종 마약’ 기승… 적발 땐 변종 만들어 검사 무력화 [뉴스 인사이드]

입력 : 2020-10-25 15:00:00 수정 : 2020-10-25 15: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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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파고든 마약
구조 예측 불능·위해 정도 증명 안돼
효과·강도 제각각… 투약자, 사망까지
아직 검사법 없는 마약은 적발 못해
국과수 장비 문제에 인력난도 심각

지난달 부산 해운대구에서 7중 추돌사고를 낸 40대 남성 A씨가 운전하기 전 대마초를 피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문가들과 마약류 사용 경험자들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브레이크도 밟지 않은 채 수백m가량 ‘광란의 질주’를 했다는 점은 대마와 매우 동떨어진 효과였기 때문이다. 경찰이 간이 키트로 A씨를 1차 검사한 결과 대마 성분이 검출됐다. 그러나 이후 모발 및 소변을 통한 정밀분석을 거친 결과 신종마약 성분이 나왔다. 지난해 미국에서 유행한 뒤 올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퍼지는 것으로 파악된 신종마약이었다.

 

◆환각질주의 원인은 대마가 아닌 신종마약

 

2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A씨의 모발과 소변을 분석한 결과, 대마와 필로폰 성분과 함께 합성대마의 일종인 ‘5F-MDMB-PICA’ 성분이 검출됐다.

 

5F-MDMB-PICA는 신종마약류 중 합성대마에 속한다. 미국 학회 등에서 지난해 현지 유행하고 있다는 발표가 이어졌고, 국내에서는 지난 6월 이 약물에 대한 검사법이 마련된 뒤 A씨의 사례까지 총 10건이 검출됐다.

 

이 약물은 환각 및 정신착란을 비롯해 방향감각 상실, 공격성, 안구충혈 등 다양한 비정상적 행동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인이 자신을 쫓아오거나 공격하는 등의 환각에 시달리는 것이 주된 반응이다. A씨 또한 이러한 환각상태에서 사고 당시와 같은 행동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약물중독자의 회복과 인권을 위한 회복연대’ 관계자는 “사람마다 효과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마의 경우 환각과 함께 신체를 이완시키는 것이 주된 효과이고 필로폰과 신종마약 등의 경우는 강한 환각작용을 비롯해 투약자에게 공포심과 공격성 등을 유발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A씨가 대마초만 피웠다면 당시와 같은 질주나 사고는 발생하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마초와 함께 필로폰, 신종마약을 복합적으로 투약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신종마약류 검출, 10년 만에 23배 증가

 

신종마약류는 등장한 지 오래된 대마나 아편, 코카인, 필로폰 등 ‘전통마약’이라 할 수 있는 마약류들과 구조와 효과 등 여러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정부는 구조 및 특성에 따라 신종마약류를 크게 5가지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2016~2019년 4년간 국내에서 검출된 신종마약류의 검출 현황을 살펴보면 △합성대마류 315건 △아질산알킬류 55건 △펜에틸아민 유도체류 38건 △피페라진 유도체류 14건 △트립타민 유도체류 1건 △기타 3건 등 총 416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합성대마류가 전체의 75%를 차지하기 때문에 신종마약류를 통칭해 합성대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합성대마는 식물혼합을 흡연할 때 나타나는 효과가 대마와 비슷하다고 해서 합성대마라고 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약 방식은 허브나 대마초 등에 섞어 흡연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해외에서 ‘스파이스(spice)’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합성대마는 미국의 존 윌리엄 허프만(John W Huffman)이 세계 최초로 합성했다. 애초에 허프만은 의료·연구적 목적으로 합성대마를 만들었고, ‘JWH-018’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450여종을 합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JWH 시리즈는 허프만의 이름 약자를 따서 명명했다. 그러나 JWH의 제조법이 외부에 알려진 뒤 이를 모방하거나 발전시켜 새로운 마약류 개발이 증가했다.

합성대마가 함유된 허브방향제

국내에서는 2009년 JWH-018이 최초로 검출된 이후 신종마약류의 적발 및 남용 사례가 늘었다. 우리나라에서 검출된 신종마약류는 2009년 8건에서 2014년 108건, 지난해 184건 등으로 10년 만에 23배가 증가했다.

 

신종마약이 자꾸 개발되는 이유로는 크게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한 것과 적은 양(비용)으로 더 강한 효과를 내는 것 두 가지가 꼽힌다. 마약류 투약자를 적발하기 위해서는 모발이나 소변 등 인체 시료에 마약류 성분이 포함되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신종마약의 경우 검출 방법과 장비가 마련돼 있지 않다면 적발할 방법이 없다. 일선 경찰서에서는 2~3가지의 전통적인 마약류만을 검출할 수 있는 간이 키트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A씨가 대마나 필로폰을 하지 않고, 신종마약만 투약했다면 1차 적발에서 잡히지 않기 때문에 마약사범으로 검거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국과수 김은미 독성학과장은 “신종마약류는 구조 예측이 불가능하고 위해성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며 “음성적으로 제조돼 효과와 강도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투약자가 사망에 이르는 등 폐해가 훨씬 심각하다”고 밝혔다. 해외에서는 실제로 신종마약 투약자가 근처를 지나던 행인의 귀를 물어뜯는 사건까지 발생하며 ‘식인마약’ 혹은 ‘좀비마약’이라 불릴 정도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종마약류 중 감정 가능한 것은 아직 ‘극소수’

 

이렇듯 신종마약류의 확산으로 인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지만 대응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부는 마약류를 관리하기 위해 크게 마약류와 임시마약류, 유사체류의 3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지난달 기준으로 각각 406종, 92종, 2101종(일본 통계를 참고해 산정) 등 총 2599종이 등록됐다. 마약류는 약물의 효과 및 특성이 검증돼 법상 정식 등재된 것을 뜻하고, 임시마약류는 새로 발견된 약물에 대해 아직 검증이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확산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지정해 규제하기 위해 2011년 도입됐다. 신종마약 중에서는 기본 화학구조는 같지만 일부 성분의 구조를 달리해 수많은 마약류를 파생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기본 물질과 함께 구조가 유사한 약물을 포괄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유사체류 규제를 적용한다.

신종 합성대마가 함유된 허브방향제

이 유사체류가 관리 범위에 들어오면서 법정 마약류는 2009년 292종에서 올해(9월 기준) 2599종으로 10년 만에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중 마약류에 대해서는 모발과 소변을 통해 대부분 감정할 수 있지만, 임시마약류와 유사체류는 그렇지 않다. 전체 임시마약류 92종 중 소변을 통해 20종(22%)을 검출할 수 있고, 모발로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유사체류의 경우 전체 2101종 중 소변으로 90종(4%), 모발로 22종(1%)을 검출할 수 있다. 검사법이 마련되지 않은 마약류는 투약을 했더라도 적발할 수 없는 셈이다.

 

연구나 장비적인 문제도 많지만 인력적인 부분은 더욱 심각하다. 국과수에 의뢰된 마약류 감정 건수는 2014년 2만8633건에서 지난해 6만298건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그러나 이를 담당하는 국과수 직원은 수년째 15명으로 묶여 있다 보니 1인당 연간 감정 건수는 1909건에서 4287건으로 늘었다. 이로 인해 건당 통상 보름 정도가 걸리던 감정기간이 ‘버닝썬 사태’를 거치며 지난해에는 한 달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신종마약류의 제조·유통 유형이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대응을 어렵게 한다. 소수의 전통마약을 작업장을 차리고 생산하는 방식에서 구조식을 일부 변경해 끊임없이 새로운 마약류를 생산해 내고, 당국의 대응이 이뤄진다 싶으면 또다른 마약류를 개발해 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정부 당국이 신종마약류 한 가지에 대한 감정법을 개발하는 데에는 최소 수개월에서 최대 수년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신종마약류의 개발 추세를 예측할 수 있는 연구개발(R&D)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뒷북 대응’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상황이 반복되는 현장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경찰청의 이주만 마약조직범죄수사계장은 “마약사범이 지속 증가해 1만명을 넘어섰고 신종마약이 계속 발견돼 2000종을 훌쩍 넘어서면서 국과수에 요청하는 마약 감정 건수도 증가하고 있다”며 “국과수의 마약 감정 인력 부족으로 인해 경찰이 힘들게 검거한 마약사범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주=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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