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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은 어르신들의 악기? 연주회 때마다 관객 호응 놀라워”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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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0-24 15:00:00 수정 : 2020-10-24 11: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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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아코디언 팝스오케스트라 단장
바이올리니스트 꿈 접고 교사 거쳐 인테리어 사업
성가대서 아코디언 첫 만남… 日 유학 가 체계적으로 배워
사람들의 선입견 깨고 싶어 음악원 열고 연주단도 꾸려
대부분 60~70대이던 단원 이제는 절반이 음악전공자
첫 출전 국제 콩쿠르서 1위 클래식이나 왈츠 연주 대신
‘님과 함께’ ‘아름다운 강산’ 등 한국 가요 연주로 눈길 끌어
12㎏ 넘는 악기 심장에 밀착 심금 울리는 소리 절로 나는 듯
모든 단원들이 돈 걱정 않고 연주에만 몰두할 날 왔으면
김지연 단장이 연습실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그가 연주하는 악기는 아버지가 선물한 것이다. 아코디언은 그의 어릴적 꿈인 연주자의 길을 가게 했다. 김 단장은 “애잔하면서 향수를 불러오는 아코디언의 소리는 우리 국민의 정서에 딱 맞는 악기다”고 말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아코디언의 소리는 심금을 울린다.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는 만추의 계절에 딱 어울린다. 애절한 선율에 눈물이 질금 날 정도로 가슴에 와 닿는다. 추억을 부르는 향수의 악기이기도 하다. 시골장터의 약장수 연주를 넋이 빠지게 봤던 세대에게는 과거를 아련하게 회상시키고 있다. 그래서 한 번쯤 배워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아코디언의 대중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연주자가 있다. 국내 유일의 ‘김지연 아코디언 팝스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김지연 단장을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김 단장은 아코디언 때문에 다시 태어난 인생을 살고 있다. 어릴 때 그의 꿈은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서울시민회관 무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 공직자였던 아버지가 동생들을 위해 음악을 그만뒀으면 어떻겠냐고 했을 때 아무 말 없이 따랐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지만 장녀로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오르간을 배우는 것으로 만족했다. 국내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잠시 교사로 근무하다 동생과 함께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음악에 대한 갈증을 지울 수 없었다.

20여년 전 어느 날 그가 다니던 교회의 한 지인이 “성가대 연주자가 부족하니 아코디언을 배워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한 것이 아코디언과의 첫 만남이다. 오르간을 배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코디언을 쉽게 연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권유한 것이다. 그 길로 아코디언 연주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코디언 연주가 너무 재미있고 애잔한 소리의 묘한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시간만 나면 아코디언을 메고 연습했다. 연주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달았지만 친구들에게 아코디언 연주를 한다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코디언은 서커스나 시골장터에서 연주하는 악기로 인식돼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로부터 “할아버지들이 하는 악기를 왜 배우냐”는 핀잔을 들었을 때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일본 도쿄의 시부야음악원에 유학을 가 아코디언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수준급 연주자로 귀국한 그는 우선 아코디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무대에서 멋지게 아코디언을 연주하면 잘못된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4년 12월 김지연 아코디언 팝스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초기에는 연주자를 구하기 힘들어 애를 먹었다. 그에게 아코디언을 배운 제자들을 중심으로 단원을 꾸려 1년 동안 맹연습을 했다. 2015년 11월 창단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후 본격적으로 연주활동에 나섰다. 창단 초기에는 단원 대부분이 60∼70대였을 정도로 연주자가 부족했다. 아코디언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상임지휘자를 겸하고 있는 그는 일 년에 세 번 정도 전국을 다니며 공연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2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무대에 오른다.

오르간을 배운 경험 때문에 쉽게 생각한 아코디언 연주는 하면 할수록 어려웠다.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때문에 연습을 게으르게 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요즘도 하루에 5∼6시간씩 연습에 매달린다. 쉽고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아코디언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다. 사랑하는 딸이 하고 싶었던 음악가의 길을 가지 못한 것을 마음속에 뒀던 아버지는 어느 날 그에게 목돈을 건넸다. “6남매 장녀로 태어난 운명 때문에 음악을 하지 못하게 해 미안했다”며 아코디언을 선물한 것이다. 아코디언을 연주할 때마다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체험한다.

아코디언은 다양한 음색을 갖고 있어 오케스트라를 구성할 수 있다. 하나의 악기이지만 바이올린, 클라리넷, 색소폰 등 13종류의 악기소리를 낼 수 있어 오케스트라 연주가 가능하다. 아코디언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아코디언은 41개 건반과 120개 베이스 버튼이 어우러져 애절한 음색을 만들어낸다. 오른손은 건반을 눌러 멜로디를 연주하고 왼손으로는 버튼의 여러 가지 코드를 눌러야 한다. 아코디언은 연주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악기이지만 1년 정도 기초과정을 익히면 기본적인 연주를 할 수 있다.

아코디언의 진정한 매력은 가슴으로 연주하는 데 있다고 귀띔했다. “세상의 악기 가운데 가슴에 안고 심장에 밀착해 연주를 하는 것은 아코디언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심금을 울리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단원들은 절반 정도가 음악 전공자이고 나머지는 아코디언을 5∼6년 정도 연주했다. 신입단원이 입단하면 일주일에 두 번씩 꼭 연습실에 나와 연습하는 것이 오케스트라단의 원칙이다. 공연이 가까워지면 매주 모여 전체 연습을 한다. 공연이 잡히지 않더라도 한 달에 두 번은 전체 연습시간을 통해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는 단원들에게 깐깐한 지휘자로 통한다. 신입단원들을 대상으로 연주 자세와 연주법 등을 일일이 가르치고 있다. 프로다운 모습을 익혀야 무대에 오를 수 있다. 무료공연을 하지 않는 오케스트라 운영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연주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아코디언 저변 확대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약장수들의 악기라는 그릇된 선입견을 깨기 위해 오케스트라 운영에 이어 일반인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아코디언 교재를 만들었다. ‘스텝 바이 스텝’이라는 교재는 음악공부를 한 적이 없고 악기를 접해 보지 못한 초보자를 위해 펴냈다. 아코디언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정규 학교가 없는 현실에서 전문 연주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전문교재의 필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코디언 강사를 배출하는 위탁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심사위원장을 직접 맡고 있다. 아코디언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제대로 가르치는 강사가 부족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수년 전만 해도 아코디언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연령대가 70대 이상이었지만 최근에는 음악전공자 등 젊은 층이 늘고 있어 고무적이다. TV에서 아코디언 연주자가 재즈 등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김지연 아코디언 팝스오케스트라의 연주 실력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8년 3월 러시아에서 열린 ‘국제 아코디언 콩쿠르’에서 오케스트라 부문 1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출전한 콩쿠르에서 우승이라는 쾌거는 지금도 잊지 못할 감격의 순간이다. 아코디언 전공자가 없이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이뤄낸 성과여서 수상자 발표가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을 정도였다.

이 콩쿠르는 2005년 처음 열렸으며 러시아, 미국, 영국 등 국제아코디언연합회원국 60곳이 매년 순회하며 개최하고 있다. 아코디언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권위 있는 대회로 인식되고 있다. 김 단장은 출전에 앞서 선곡에 많은 고민을 했다. 클래식과 왈츠 등을 연주하는 외국 출전 팀과는 반대로 우리 가요를 아코디언 연주에 맞게 편곡했다. ‘님과 함께’, ‘미인’, ‘아름다운 강산’, ‘굳세어라 금순아’ 등 누구나 쉽고 쾌활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을 연주해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이 주효했다.

러시아 국내 항공사가 아코디언을 일반 화물 취급하면서 일부 악기가 부서져 대회 참가 자체가 불투명했지만 악기 수리가의 도움으로 경연 마지막 날 무대에 올라 기량을 뽐낼 수 있었다.

그에게 가요 황성옛터는 눈물의 곡이다. 가슴을 울리는 곡조가 아코디언 연주에 딱 맞는다. 공연 때 이 곡을 연주하면 관객과 연주자, 지휘자 모두가 울어 울음바다가 된다. 그래서 한동안 이 곡을 제외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는 12월 27일 경주문화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송년음악회 때는 이 곡을 연주한다. 관객과 한바탕 호흡을 같이하며 멋들어지게 연주할 계획에 가슴이 설렌다.

그는 아코디언 팝스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못하는 현실을 미안해했다. 프로에 걸맞은 개런티를 지급해야 더 신명나게 연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원들이 돈 걱정 없이 연주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후임자에게 넘겨주는 것이 그의 작은 소망이다. 아코디언 인구가 증가하고 연주를 들으려는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어 그의 목표가 조기에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마 아코디언 연주회만큼 관객들의 몰입도와 호응이 큰 경우도 드물 겁니다. 연주회 도중에 나가는 관객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아코디언 연주단에게 필요한 것은 전폭적인 성원입니다. 신명나게 연주할 수 있도록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12㎏이 넘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모습에서 장인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국내에 하나뿐인 아코디언 팝스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삶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는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김지연 단장은… ●1961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교육심리학 학사 ●일본 도쿄시부야음악원 수료 ●삼육대 아코디언 전임(전) ●제71회 국제아코디언 콩쿠르 오케스트라부문 1위 수상 ●상명대 음악학부 뮤직아카데미 교수(전) ●김지연 아코디언 팝스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겸 단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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