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건강·항산화에 ‘당근'… 사과와 먹으면 영양 2배 [김셰프의 낭만식탁]

베타카로틴 등 함유 항암작용·면역력 향상
사과·요구르트 넣고 주스 만들면
새콤 소금·올리브오일 넣은 당근 샐러드 등
익히지 않고 먹었을 때 참맛 느껴

당근 좋아하는 어린아이들이 과연 있을까. 어릴 적 편식 순위권에는 항상 당근이 들어 있었다. 왜 그토록 당근을 싫어했고, 어머니는 왜 당근을 우리에게 먹이려고 하셨을까. 요리를 만들고 음식을 먹고 있자면 그런 기억들이 생각이 난다. 음식은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책갈피가 되어 주기도 한다. 오늘의 요리는 아이들도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당근샐러드다.

#카레 속 당근

동네 시장, 대형마트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당근. 예전에 한식 행사 때문에 방문했던 인도 뭄바이 길거리에서도 당근을 팔았다. 정말 세계 어느 곳에서도 당근은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당근이 몸에 좋다는 건 이미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당근 싫어”라는 말을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하지 않았을까 싶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이 일터로 나가시면 동생 밥을 챙겨주는 일은 항상 내 몫이었다. 사실 챙겨준다는 의미는 별것 없고 어머니가 준비해 준 음식들을 식탁에 올리는 게 다였다. 최소 한 끼 많게는 두끼 정도를 동생과 둘이 챙겨 먹었는데, 그러다 보니 국이나 찌개 같은 건 냄비에 한 솥 가득 끓여놓고 가셨던 기억이 난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별미가 있었는데 그 음식이 바로 카레다. 지금처럼 다양한 종류의 카레는 없었고 분말 카레에 야채를 넣고 끓여 먹는 형태였다. 카레만 있어도 밥 한 공기는 뚝딱이었지만 어린 시절 으레 하는 것처럼 열심히 야채는 건져서 고기랑 감자만 속속 골라 먹었다. 특히 그중 물컹한 식감의 당근을 가장 싫어했는데 노란 카레 속에 듬성듬성 붉고 큼지막한 당근을 보고 있자면 입에 넣기도 전에 그 물렁물렁한 식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비어 있는 카레 냄비 속에 유독 많이 남아 있는 당근을 보는 어머니의 생각은 어떠셨을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당근이 없는 카레가 우리 식탁에 올라오게 되었다. 우리는 속으로 이제 이겼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야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동안 당근을 갈아서 넣으셨던 거였다. 우린 그런 푹 끓여 갈린 당근이 듬뿍 들어간 카레를 10년 넘게 편식 없이 먹었다. 약간의 배신감 느껴지는 진실이었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한다. 자식들 건강을 위해 몰래몰래 당근을 갈아 넣었으니 말이다.

#면역력 높이는 당근

뿌리를 식용할 수 있는 야채들을 총칭하는 뿌리채소류, 뿌리채소류 중 하나인 당근은 중앙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는 12세기경 아랍으로부터 스페인에 전파되어 13세기에 이탈리아, 14세기에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로 확산되고 15세기에 영국에서 재배가 시작됐다고 한다. 미국에는 1565년경 도입됐고 중국에는 원나라(1280∼1367) 초기 중앙아시아에서 전래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전파됐다고 하지만 정확한 도입 연도는 불문명하다. 다만 이사벨라 버드 비숍 1894~1897년 한국에 대해 기록한 저서인 ‘조선과 이웃나라들’을 보면 우리가 먹는 식재료 중에 당근도 포함이 되어 있다.

그 전엔 음식으로써 문헌이나 고서에 당근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그때쯤 당근이 우리에게 식자재로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한국에 가장 오래 전해져 오는 의방서 중 하나인 ‘향약구급방’에는 1236년에 약재로 당근이 등장한다. 당근에는 베타카로틴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항산화, 항암작용뿐만 아닐 면역계 질환에도 효능이 있다. 이 베타카로틴은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비타민A가 되는데 사과와 함께 먹으면 맛과 영양효소가 배가된다.

#당근 맛있게 먹기

당근이 맛없게 느껴졌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식감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한식은 반찬을 함께 먹는 문화인데 당근이 주가 되는 한식 반찬은 없다. 익으면 비슷한 식감인 가지마저도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데 당근은 그런 요리가 없다. 그래서 갈비찜에 넣고 닭볶음탕에 넣고 카레에 넣고 고기가 익을 때까지 함께 푹 고아 으스러지는 그런 물컹한 식감의 당근을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먹어온 것이다.

푹 찐 당근 말고 다음으로 접했던 당근은 바로 주스로 만들어 먹는 방법인데, 이건 그대로 꽤 괜찮은 맛이다. 사과와 요구르트 같은 걸 같이 넣어 갈아주면 새콤하고 산뜻한 맛이 난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당근을 먹는 이유는 바로 건강에 좋은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런 당근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당근의 참맛은 익히지 않고 먹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얇게 채썬 당근에 약간의 소금, 설탕을 뿌리고 향이 좋은 올리브오일을 넣고 버무린 뒤 레몬즙을 살짝 뿌려 먹으면 그 심플한 당근 샐러드만으로도 화이트 와인을 한병 마실 수가 있다.

3cm 주사위 모양으로 당근을 썰어 준 후 버터와 바질 소금을 넣은 물에 5분간 삶아주면 속에 심지가 남은 당근이 되는데, 이걸 식혀 준 뒤 차가운 오일에 버무려 비슷하게 썰어준 사과와 함께 먹으면 꽤 괜찮은 반찬이 된다. 버터에 잘 익힌 당근은 고소한 옥수수맛이 혀끝에 돈다. 포장마차에 가끔 생당근이나 오이를 초장과 함께 기본 찬으로 주기도 하는데 사실 취하면 초장에 찍은 당근만 한 것도 없다. 어느새 왼손엔 잔을, 오른손엔 당근을 쥐고 아작아작 씹고 있으니 말이다.

오스테리아 주연 김동기 오너셰프 paychey@naver.com

■당근 샐러드 만들기

<재료>

당근 1/4토막 , 사과 1/4ea , 소금 한 꼬집, 설탕 반꼬집, 엑스트라 올리브오일 50ml, 레몬즙 10ml, 레몬제스트 some, 바질 1장, 호두 2알

<만들기>

① 당근과 사과는 채썰어 준 후 소금과 설탕을 뿌려 준다. ② 호두는 팬에 살짝 볶아 준 후 식혀 거칠게 다져 준다. ③ 올리브오일과 레몬즙, 레몬제스트, 다진 바질을 섞어 준 후 당근과 사과에 버무려 준다. ④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다진 호두를 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