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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부대는 재활용센터인가요? 225만명이나 되는데?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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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0-18 08:00:00 수정 : 2020-10-17 13:5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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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장병들이 M-16 소총을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현역병 의무를 지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전역 후 8년 동안 반드시 일정 기간 이름을 올려야 하는 것이 예비군이다. 한반도 유사시 현역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맞서 싸우는 만큼 예비군에 대한 투자와 훈련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실태는 다르다. 현역부대는 국방개혁 2.0에 따른 부대구조 개편, 신무기 개발 및 배치 등이 한창이다. 2020년대 중반까지 군단과 사단, 여단급 부대의 전투력과 인력 구조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된 상태다. 

 

반면 예비군을 담당하는 동원부대는 개혁과 구조조정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군인의 필수장비인 K-2 소총은 절반 이상이 낡았으며, 포병 병과는 현역 부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견인포가 수두룩하다. 2000년대 이후 국방개혁안이 수차례 발표되며 현역부대는 발전을 거듭하지만, 예비군의 시계는 멈춘지 오래다.

 

예비군 장병들이 시가지 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차 대전 시절 무기도 남아있다

 

육군의 예비군 관리와 편성 등은 동원전력사령부가 담당하고 있다. 사령부 예하에는 5개 동원사단과 10개 동원지원단이 있다. 동원지원단은 전시 전방지역에 병력과 물자 손실이 발생할 때를 대비, 동원예비군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장비와 물자를 관리한다. 전시에는 150여 개 대대를 창설해 전방에 투입하는 역할도 맡는다.

 

육군 동원부대는 현역부대보다 한 단계 낮은 장비를 사용한다. M-48A5K 전차, KH-179 견인포, K-200 장갑차, P-999K 무전기 등은 1970~1990년대에 만들어진 장비다. 드론과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도입하는 육군의 실정과는 거리가 멀다.

 

오래 전에 생산된 장비라 내구연한을 초과한 것이 많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과 육군 등에 따르면, 1970~1980년대 생산된 M-48A5K 250여 대는 전량 내구연한(25년)을 넘겼다. M-101 105㎜ 견인포 280여 문도 전량 내구연한(25년)을 초과했다. 

 

육군 동원사단에 배치되어 있는 M-48A5K 전차. 노후화로 야간사격이 불가능하고 정비소요가 많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M-114 155㎜ 견인포는 390여 문 중에서 20여 문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은 내구연한(25년)이 지났다. 이 가운데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제작된 포도 있다. 6.25 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며 75년간 쓰인 셈이다. 

 

다른 장비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PRC-77 무전기는 보유량 모두 내구연한(10년)을 20년 가까이 초과했다. 베트남전쟁 당시인 1965년 개발된 PRC-77 중대급 무전기는 율곡사업을 통해 1980년대 국산화가 이뤄졌지만, 현재는 민간 무전기보다도 송신출력이 떨어지고 데이터링크 능력도 없다. 1970년대부터 20여년간 쓰인 분대급 무전기 PRC-85도 내구연한(10년)을 훨씬 초과했다. 예비군이 사용할 장비 중 내구연한을 초과하지 않은 물량이 다수인 품목은 방독면과 화학자동경보기, 소형 트럭 정도다.

 

10개 동원지원단의 장비 보유율도 58%에 그쳤다. 예비군 2명 중 1명은 장비 없이 전장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전시에 예비군에 지급할 치장물자 노후화도 심각하다. 전투배낭과 요대, 탄입대, 야전삽, 우의, 수통, 반합은 생산된 지 30~40년이 지난 노후 물자를 다수 비축하고 있다. 그나마도 소요에 맞는 물량을 갖춘 품목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예비군이 유사시 사용해야 하는 장비와 물자는 질과 양 모두 충족되지 않는 셈이다. 유사시 동시다발적으로 전투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예비군 대량 동시 투입을 고려해  ‘현역부대 수준의 1인 1장비 보유’가 필요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 많은 국방비는 다 어디에 썼느냐” “육군 동원부대는 무기 박물관인가, 아니면 재활용센터인가”라는 말도 나온다.

 

예비군 장병들이 105㎜ 견인포 조작법을 숙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현역 시절에도 안썼던 장비로 예비군 정예화 불가능

 

장비의 노후화는 예비군 훈련을 유명무실하게 만든다. 육군 포병은 K-9, K-55A1, K-105A1 자주포를 쓴다. 좌표를 입력하면 포탄이 알아서 표적까지 날아간다. 현역 시절 자주포를 운용하다 예비군에 편입된 후 견인포 조작을 맡게 되면, 2박 3일 훈련만으로는 조작법을 익힐 수 없다. 작동법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유사시 제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이유다.

 

전차도 마찬가지다. 전차부대 출신 예비군들은 대부분 K-1, K-2 전차를 다뤘다. 밤에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적 전차를 일격에 파괴하는 최신 전차를 몰다가 30~40년 전에 제작된 M-48A5K 전차를 쓰라고 하면, 운전조차 단기간 내 가능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전투력을 높이기보다는 떨어뜨리는 결과만 초래한다. 육군은 M-48A3CK를 M-48A5K로 교체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소총조차도 야간투시경과 조준경, 피카티니 레일 등을 장착한 첨단 버전으로 바뀐다. 120㎜ 자주박격포와 전술데이터링크체계 등 신무기도 일선에 배치된다. 국방개혁 2.0에 의한 장밋빛 미래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훈련에 입소한 예비군들에게 1970∼1980년대 수준의 장비를 지급하는 것은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높인다. 국방부가 2000년대 이후 강조해온 ‘예비전력 정예화’와도 거리가 멀다. 

 

육군 동원부대도 고충이 적지 않다. M-48A5K 전차는 수리부속 생산이 중단되어 정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비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정비비와 인력 소요가 증가하고 있으나 관련 예산과 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실제로 동원부대는 현역사단과 같은 수량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나 정비인력은 부족하다. 유사시를 대비해 보관하는 장비의 정비주기(1개월)를 맞추기 어렵다. 

 

노후 장비의 전술적 활용도도 낮다. M-48A5K는 기동 사격이나 야간사격이 제한을 받고 있다. 견′인포는 상용 동원차량으로는 견인이 불가능하지만, 대형 군용트럭 5대 중 4대가 내구연한(20년)을 초과한 상태에서 전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는 실정이다. 동원전력사령부는 구형 견인포에 대한 도태를 요구하고, M-48A5K 전차는 내년에 도태 요구를 할 방침이지만, 결과적으로는 2020년대 초반에도 일선에 남게 됐다.

 

육군의 K-105A1 자주포. 105㎜ 견인포를 자주화한 것으로 현역부대에 배치되고 있다. 한화디펜스 제공

◆“동원전력 강화” 공허한 외침

 

예비군 전력의 퇴행은 군 스스로가 예비군의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다. 

 

우선 군내 예산 획득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현역부대 전력증강에 우선순위를 뺏기는 일이 계속된 결과다.

 

동원 분야에서는 연간 국방예산의 1%(5000억여 원) 수준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수년째 주장해왔다. 장비 현대화와 예비군 훈련 여건 개선, 부족한 물자 확보 등을 고려하면 5000억여 원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6년 이후로 예비전력 예산은 연간 국방비의 0.3~0.4%에 머물고 있다. 동원전력사령부가 창설됐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내년도 국방비 중에서 예비전력 예산은 2074억 원으로 다소 증액됐지만 여전히 0.44%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기획재정부 심의과정에서 190억원이 삭감됐다. 동원부대 관사와 아파트, 막사, 훈련장 운영유지 등에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전력 강화에 투자할 여력은 부족한 셈이다. 동원전력사령부를 중심으로 삭감된 예산을 되살리는 작업이 한창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육군 장병들이 저격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예비군 부대는 다기능관측경을 비롯한 감시장비가 매우 부족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노후 장비와 물자가 대량으로 쌓여있는 것도 예산 문제와 관련이 있다. 비축해야 할 수량은 많지만, 신형으로 구매할 돈은 없다. 결국 퇴역하거나 폐기해야 할 장비와 물자를 창고에 비축해 서류상으로 수량을 채워넣게 된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에서 만들었다가 한국해군에 인도됐던 기어링급 구축함이 기념물로 바뀌었지만, 같은 시기 미국에서 제작된 155㎜ 견인포는 여전히 남아있는 이유다. 

 

확보된 예산이 예비전력 분야가 아닌 곳에 쓰이는 상황도 일어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예비군 훈련이 취소되자 국방부는 예비군 훈련 불용예산을 코로나19 대응과 집중호우 피해복구를 위한 재해대책비 부족분에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국방부는 “재해대책비는 국방부 장관이 승인하면 전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예비군 정예화를 위한 투자에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군이 예비군 장비 문제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2025년까지 2사단을 비롯해 군구조 개편에 의해 해체되거나 바뀌는 부대의 장비를 전환한다. 2022년부터 현역부대에 신형 장비가 배치되면 기존에 쓰던 장비를 예비군에 넘기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현역사단에서 K-2 전차를 새로 쓰게 되면, 해당 부대가 사용하던 K-1E1 전차는 동원사단으로 이관된다. 방탄헬멧과 전투배낭 확보도 적극 추진한다.

 

육군 동원사단 장병들이 M-16 소총을 정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육군의 계획대로 동원부대 전력증강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육군은 동원부대 무기체계 현대화를 위해 44개 과제를 설정했으나 시행된 것은 18개에 불과하다. 특히 다기능 관측경이나 열상감시장비(TOD) 등 전방감시와 관련된 부분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전력화 완료 시기도 2033년으로 늦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야간투시경과 조준경, 표적지시기 등을 갖춘 특수부대를 선보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예비군들은 현역 시절 약 2년 동안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군복무로 보내면서 국가에 헌신한 만큼, 전역 후 예비군 훈련도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현역 시절보다 열악한 장비를 지급받는다면 예비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나폴레옹이 질좋은 피복과 장비를 지급하는데 각별한 신경을 쓴 것도 사기와 정예화를 의식한 조치였다. 동원부대가 무기 재활용센터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투자를 늘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예비군 정예화로 방위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군 당국의 계획은 진정성을 갖기 어렵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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