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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팬데믹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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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16 17:00:58 수정 : 2020-09-17 1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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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두려움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이 경고음이 있기에 인류는 위험을 감지해 대비 태세에 돌입할 수 있었다. 원시시대부터 두려움에 민감한 개체는 생존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두려움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정서로 발달했다고 진화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올 한 해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이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이 엄청난 감염력을 자랑하는 이 바이러스의 위험성에 둔감했던 이들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확률이 높았다. 팬데믹 초기 확산이 가장 심각했던 지역 중 하나인 미국 뉴욕에서 코로나19 확진자 가족과 함께 살아남은 이야기를 쓴 책 ‘쿼런틴’의 저자 김어제씨는 누구보다 민감했던 불안지수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다.

 

◆“장 볼 때 머리카락까지 로션으로 고정” 철저한 위생관념

 

대비 없이 확산한 바이러스로 아수라장이 된 코로나19 사태의 한복판에서 같이 사는 배우자가 감염됐음에도 김씨는 코로나19에 걸린 적이 없다. 약 한 달간 한 집에서 같이 지내며 아픈 배우자를 간호했지만 전염은 되지 않았다. 16일 만난 김씨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특별한 비결은 없다”였다. 그저 남다른 위생 관념과 기본 수칙을 철저히 지킨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김씨는 “배우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생활 공간과 사용하는 물건을 철저히 분리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각자의 방에서 나오지 않으며, 비말과 접촉 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을 모두 알콜 소독했다”고 답했다. 마트에서 장 볼 때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신경 쓰여 점도가 높은 로션을 발라 고정했을 정도다. 

 

그는 요즘도 밖에 다녀오면 휴대전화를 자주 소독한다고 한다.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볼 때 에어로졸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꼭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고, 물 내린 후에도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피부가 닿는 부분, 레버, 수도꼭지, 문 손잡이, 조명 스위치 등을 항상 소독한다. 김씨는 국내에서는 표면 접촉을 통한 감염에 신경을 덜 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유별난(?) 위생 관념 덕분에 김씨 가족의 코로나19 비극은 그 정도에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배우자와 크게 다투고 며칠간 간호를 멈춘 채 혼자 방에만 있기도 했다. 배우자의 증상이 조금씩 좋아지던 시점이었다. 김씨가 며칠 동안 요청했음에도 배우자는 마스크 쓰기를 거부했고, 김씨의 서운함과 분노도 극에 달했다.

 

김씨는 “한국에 못 가고 나만 불귀의 객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맨 먼저 들었다”며 “배우자는 어느 정도 회복기에 들어섰는데 그가 마스크를 안 써서 내가 죽을 수도 있다. 저 사람이 나를 살릴 수 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의견도, 감정도, 안전도 고려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대체 여기서 무슨 고생을 하고 있는 거냐고 김씨는 쏟아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서운하다. 다행히 지금은 배우자도 매일 반성하고, 위생 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후문이다.

 

◆꿈의 도시 뉴욕? “택배 수시로 없어지고 마트 배송도 힘들어”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의 현실에 대해서도 코로나19는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냈다. 가장 놀란 것은 집 앞에 놓인 택배가 수시로 없어진다는 점이었다. 마스크 국제 배송이 허용된 뒤에도 ‘어차피 오는 길에 분실될 것이 뻔해서’ 한국에서 마스크를 보낼 필요 없다고 거절했을 정도다.

 

김씨는 “전 세계의 자본이 모이는 뉴욕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부와 빈곤이 공존한다”며 “타지에서 온 이들에게 기회가 생기는 꿈의 도시이자 비싼 물가로 버티기 힘든 도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다양한 면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있다는 의미다. 총기, 마약 등 강력범죄가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절도 등은 가볍게 다뤄지는 면도 있는 것 같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김씨가 보내 온 ‘마트 사재기’ 현장 사진들도 놀라웠다. 우리나라의 경우 배송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 있는 편이라 ‘온라인 사재기’로 인한 품절 사태가 벌어지곤 하는데, 미국은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김씨는 “뉴욕의 경우 온라인 주문 배달 서비스가 있긴 하지만 맨해튼을 제외하면 한국처럼 빠르지 않아 이용률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한산해 보이던 매장에서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집으려고 달려들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돌변했다는 책 속 묘사 등은 재난 영화를 연상케 했다. 이름 때문에 안 팔리는 코로나 맥주는 누군가 박스를 뜯어 현장에서 마시곤 하는 탓에 빈 병이 나뒹굴었다고 한다.

 

◆생존 돕지만 지나치면 독…‘불안’ 다스리기의 중요성

 

한국과 같은 체계적인 검사, 역학조사, 의료 지원, 온라인 배송 시스템 등이 갖춰지지 않은 채 팬데믹을 맞닥뜨린 미국에서 가족이 확진자가 된다는 것은 ‘생존 경고등’이 켜지는 것과 같다.

 

지난 3월초쯤 다니던 병원에서 ‘독감도 코로나도 검사할 수 없으니 증상이 있으면 내원하지 말라’는 이메일을 받았는데, 그달 말 배우자에게 코로나19 증상이 처음 나타났다. 김씨 역시 사흘 뒤 두통과 인후통을 느끼면서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는 애써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썼다고 밝혔다.

 

불안과 두려움은 생존을 돕는 기제이지만 동시에 그 속에 너무 잠식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종말 이후의 세상에 대한 악몽도 자주 꾸고, 감기도 남들보다 오래 앓는 허약 체질이라 뭐든 무서워한다”는 김씨는 스스로의 정신 건강에도 더욱 신경썼다. 김씨는 “별 일 아닐거란 자기최면으로 버텼다”며 “잠을 잘 자고, 일상을 유지하며 손을 바쁘게 만드는 것이 불안을 줄이는 기본”이라고 말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5∼6㎏ 되는 무거운 이불을 사 덮기도 했다. 묵직한 이불이 일말의 위로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게 들렸다. 밤마다 안정제와 멜라토닌을 먹었고, 요가 니드라 명상도 꾸준히 했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팬데믹 시대의 우울증에도 세간의 관심이 높다. 김씨의 경우 비교적 개인적인 성향임에도 그의 책에는 “사람을 그렇게 만나지도, 만지지도 않는 내가 사람의 온기와 피부의 촉감을 이렇게까지 그리워 할 줄은 몰랐다”고 적혀 있다.

 

김씨는 “단체로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히 더 힘들 수 있을 텐데, 영상통화나 화상회의 시스템 등으로 ‘원격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혹은 실내가 아닌 붐비지 않는 야외에서 휴대폰도 없이 멍하니 있으며 스스로를 지루하게 하는 활동도 추천했다. 일명 ‘멍 때리기’가 오히려 창조력과 추진력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의 반복…하지만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격리 기간의 일상은 매우 단조로웠다. 배우자의 식사와 약, 간식을 챙기고 체온을 재며 얼음팩을 갈아주는 일을 매일 반복하며 김씨는 “일정과 일정 사이의 틈에 끼어 있는 기분이었고, 하루 종일 누워 있으면서 아무것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따금 불안해지면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귀여운 동물을 찾아봤다.

 

김씨에 따르면 미국은 절대적인 검사량이 매우 부족하고 속도도 느려서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수준의 중증 환자가 아니면 대부분 치료 대상이 아니다. 숨이 차더라도 자가 호흡이 가능하고 걸을 수 있는 경증 환자들은 집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가족이 모두 전염돼 고생하는 경우도 흔하다. 명확한 치료제도 없기 때문에 해열진통제 등을 처방하는 식의 대증요법, 충분한 영양 공급, 휴식에 중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씨의 배우자는 다행히 이러한 방법으로 집에서 회복이 됐다. 나타났던 코로나19 증상은 열, 오한, 근육통, 기침, 인후통, 가슴 갑갑함 등이었다. 그러나 회복 이후 한두 달이 지나고도 사라지지 않는 만성 피로감, 위염, 장염, 임파선염, 바이러스성 결막염 등 잦은 잔병 치레를 후유증으로 겪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고 난 이후 몸무게가 4kg 넘게 빠졌고, 숨을 참으면 가슴 한복판이 따끔거리고 힘이 든다고 한다.

 

평소와 같은 일상 생활을 해 내기란 아무래도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경증 환자로 자가 치유가 됐음에도 코로나19를 앓기 전과 후 그의 삶은 분명 같지 않다.

 

김씨는 “배우자가 뉴욕에 돌아가 학업에 복귀하려 했던 계획을 취소하고 올해는 좀 더 회복해야한다고 결론내렸다”며 “반품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남은 올해를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값지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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