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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 없는 강판 만들어라” 대·중견기업 공생 실험해냈다 [창의·혁신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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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2-19 03:15:00 수정 : 2020-02-18 20: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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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포스코·동국산업 '스마트 산세처리 공장' / 포스코에 “도와주오” / 글로벌 車부품사 돌연 고품질 강판 주문 / 동국산업, 임파서블 미션에 긴급 ‘SOS’ / 포스코, 워킹그룹 꾸려 솔루션 연구 시작 / 20개월 만에 스마트 산세처리 공장 구축 / 건강한 생태계 조성 ‘윈윈’ / 남은 숙제는 동일한 품질수준 유지 장치 / 빅데이터로 자동제어 ‘AI 시스템’도 개발 / 동국산업 “생산성 향상 스마트 공장 실감” / 포스코 “고객사와 합심 공생 가치 창출”
“난감했죠. 고민하다가 길 건너 형님께 SOS(긴급도움요청)를 보냈는데…. 이게 이렇게 빠르게 해결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4일 경북 포항 동국산업 공장에서 만난 김은철 생산팀장은 2017년 10월을 떠올렸다. 주요 고객사인 A글로벌 자동차 부품사로부터 ‘고난도 미션’이 떨어졌던 때다.
동국산업 포항공장 전경. 포스코·동국산업 제공

동국산업은 자동차 등 정밀부품소재에 쓰이는 고탄소강 및 특수강, 합금강 소재를 제조하는 업체다. 연매출 35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 포스코의 열연코일을 구매·가공해 전 세계 유명 자동차 부품사에 공급한다. 품질로는 세계 시장에서 정평이 나 있었지만 고객사의 새로운 요구는 항상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A사가 요구한 고품질 강판 제조 ‘미션’은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A사는 동국산업에 기존의 강판보다 표면이질층이 절반 이하 수준인 고품질 강판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당시 동국산업의 기술로는 불가능했고,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생산량 및 수익율 감소를 각오해야 했다.

고민 끝에 동국산업은 길 건너 마주보고 있는 포스코에 도움을 요청했다. 동국산업의 파트너이자 업계의 ‘형님’이라 불리던 포스코는 그런 동생의 손을 선뜻 잡아줬다. 포스코가 늘 강조해온 모든 이해관계자와의 공생, 즉 ‘기업시민’ 경영이념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험난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대기업과 중견기업 ‘형제’의 공생은 그렇게 첫발을 뗐다.

포스코 관계자가 동국산업 스마트 산세처리 공장에서 AI산세조업 시스템을 컨설팅하고 있다. 포스코·동국산업 제공

◆20개월간 8차례 실험 끝에 성공

포스코는 이후 A사가 요구한 품질 요건을 맞추면서 생산성까지 향상시킬 방안을 도출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가 ‘스마트 산세처리 공장 구축’ 제안이다. 산세처리란 강판 표면을 염산으로 세척, 이질층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개념은 간단하지만, 구축 기간 동안 빚어질 생산 차질, 설비 투자 비용 등 때문에 동국산업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포스코를 믿기로 했다.

우선 동국산업에 판매를 담당하는 포스코 열연선재마케팅실은 마케팅·연구소·생산·기술 조직 간 협업을 주도해 솔루션을 도출할 ‘워킹그룹’을 구성했다. 엔지니어·연구원·마케팅 담당자 등으로 구성된 이 워킹그룹은 2018년 3월부터 동국산업 현장을 수시로 방문하며 스마트 산세공장 구축에 대한 주요방안을 수립했다. 스마트 산세처리 공장의 필요조건은 △엄격한 표면 품질 보증을 요구하는 고탄소강의 산세조건 도출 △산세처리 속도 향상 △전 강종의 산세처리 공정 최적화였다.

이를 위해 포스코는 동국산업 산세 설비 능력과 조업 조건 조사부터, 산세작업 전후의 시편을 채취해 스케일 제거량을 분석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산세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산온도·침전시간·산농도가 최적의 상태로 조업이 이뤄져야 했다. 또 산세 효율을 높이고 산세 설비의 개조를 최소로 하는 방법으로 촉진제 사용 방법을 찾아야 했다. 산세 성능을 높이기 위한 개선방안을 찾기 위해 워킹그룹의 연구원이 대거 투입됐다.

연구팀을 이끈 박형국 포스코 제어계측연구그룹 수석연구원은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산세처리 공정 내 산세탱크별 온도와 염산 농도를 기존과 다르게 설정하며 여러 차례 실험해야 했다”면서 “이는 산세처리 공정 라인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과 다름없는 작업이었다”고 털어놨다. 연구원들은 실험실에서 최적 산세조건을 도출한 뒤, 다시 동국산업 산세처리 공정에서 테스트를 거쳤다. 각각 다른 조건으로 8차례나 수행한 끝에야 답이 나왔다. 연구를 시작한 지 20개월 만의 일이다. A사 품질 요구에 맞추기 위해 2번의 산세처리를 해야 했던 공정을 1회로 개선하기에 이르렀다.

◆AI 활용, 스마트한 통합공정 시스템 구축

남은 숙제도 있었다. 가공 전 강판의 상태가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산세처리 이후 동일한 품질 수준을 유지할 장치가 필요했다. 이 미션은 포스코 ‘포스프레임’이 맡았다. 포스프레임은 세계 최초의 연속 제조 공정용 스마트팩토리 플랫폼으로, 정보를 데이터화해 저장하는 것뿐 아니라 인공지능(AI)이 이를 스스로 분석해 자동화 모델까지 개발할 수 있도록 한다.

포스코와 동국산업은 이를 기반으로 한 ‘AI 산세조업 제어 시스템’을 구축해냈다.

포스코가 생산한 열연강판의 표면품질 정보를 포스프레임이 수집해 동국산업에 제공하면, 동국산업과 연결된 시스템이 이 정보에 최적화된 산세처리 속도와 자동제어값을 공정에 적용해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해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후 산세 처리된 제품의 표면품질 정보 등이 빅데이터화돼 다시 포스프레임에 저장되고, AI는 예측 모델을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표면 품질을 더욱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 산세속도 자동제어의 효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게 두 업체의 설명이다. 각기 다른 기업이 서로의 공정을 연결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스마트 조업기술이라는 의미로 ‘공정 관통형 스마트 기술’이라고 불린다.

동국산업에 따르면 스마트 산세처리 시스템이 본격 가동되면서 생산성이 기존 대비 평균 1.6배 늘었다. 또 A사와 같은 고객사가 요구하는 고급 소재 판매량은 1.5배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안상철 동국산업 사장은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스마트 팩토리의 실체를 실감하면서 동국산업 전 직원들에게 큰 자극이 됐다”며 “건강한 산업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고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준 포스코의 임직원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포스코 역시 이를 통해 고객사가 요구하는 품질보증 시스템을 구축하고, 클레임 및 부적합 저감 개선 기회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포스코 열연선재마케팅실 김천규 솔루션그룹장은 “포스코와 고객사가 합심해 함께 경쟁력을 높여 갈 수 있도록 고객사에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만이 가혹한 시장 환경에서 공생할 길이라 믿는다”며 “앞으로도 고객사와 공생가치를 창출해 강건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윈-윈할 수 있는 기업시민 포스코가 되겠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앞으로도 고객사에 적극적인 스마트팩토리 구축 지원과 공생가치를 창출해 철강재 공급과잉, 경제성장 지수 둔화 등 악재 속에서 고객과 상생으로 위기를 헤쳐나갈 계획이다. 시장의 요구에 맞는 고품질,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고객사와의 꾸준한 동반성장을 일구며 시장 신뢰도를 높여나간다는 방침이다.

 

포항=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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