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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온 장흥의 봄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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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2-22 07:00:00 수정 : 2020-02-22 15: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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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푸르름, 남녘으로 달리자 / 독특한 조형물 정남진 전망대 오르니 /에머랄드빛 남도 바다 따뜻함 느껴져 / 편백숲 우드랜드 녹색 피톤치드향 솔솔 / 생명력 느껴지는 모자의 나신상 정겨워 / 수줍은 매화 붉은 동백 나의 마음 헤집는 구나 / 2월에도 흐드러진 봄꽃들 언 가슴 한순간 무장해제 / 억불산·사자산·비자림숲길 어느 길 걸어도 봄기운 만끽

봄은 어디서 오는가. 입춘이 지났지만 겨울은 아직 가까이 머물고 있다. 하지만 멀리서 소식이 들려온다. 광양 매화마을에 벌써 매화가 만개했다 한다. 제주에는 유채꽃이 피었고 동백꽃은 이미 피었다 졌단다. 봄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 아직 새벽 기온은 손발을 얼리고 매서운 꽃샘추위도 지나야 한다. 그래도 개울 얼음장은 갈수록 얇아진다.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 소리가 점점 커지니 서둘러 봄 맞으러 가야지.

 

전남 장흥 천관문학관 앞 매화
전남 장흥 천관문학관 앞 매화

 #서둘러 오는 장흥의 봄

 

 이게 웬일인가. 지금 2월이 맞나. 저 멀리 매화나무 두 그루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향긋한 꽃향기가 비강을 마구 헤집어 놓으니 봄처녀라도 된 듯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마침 날이 좋아 하늘이 파랗다. 전남 장흥 천관문학관 앞 매화나무 아래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따사로운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한참을 서있는데, 노란 매화꽃 사이로 파란 하늘이 쏟아지니 겨우내 언 가슴은 순식간에 무장해제되고 만다. 유난히 따뜻한 겨울 때문일까. 벌써 남도에는 꽃이 피기 시작했다. 두 그루의 매화나무에도 이렇게 봄내음이 가득하니 봄이면 꽃으로 뒤덮이는 매화마을은 오죽하랴

 

장흥 정남진 전망대

이른 봄기운을 만끽하러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로 향한다. 가는 길에 남도 풍광이 아름답다는 정남진 전망대를 찾았다. 지도에서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자를 대고 정남쪽으로 그으면 한반도 남쪽 끝 지점이 바로 정남진이다. 황금 마이크처럼 생긴 전망대도 독특한데, 정남향을 상징하는 나침반 형상 위에 세워진 원형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바다, 하늘, 땅을 담았단다. 맨 위 10층 전망대에 오른다. 지상 46m 높이로 야외 옥상으로 나가니 남도의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다.

 

장흥 정남진 전망대
장흥 정남진 전망대 6층 추억여행관

겨울 동해와는 색이 또 다르다. 동해는 코발트블루로 차가움이 느껴지는데 정남진 바다는 옅은 녹색의 에머랄드빛을 담아 따뜻함이 전해진다. 날씨가 맑아 섬들이 또렷한데 득량도, 소록도, 연홍도, 거금도가 옹기종기 바다를 꾸미고 있고 저 멀리 고흥까지 내려다보인다. 내려갈 때는 걸어서 간다. 다른 전망대와 달리 볼거리가 꽤 있어서다. 8층 북카페, 7층 문학영화관, 6층 추억여행관, 5층 축제관, 4층 장흥 이야기관, 3층 특별전시관으로 구성됐고 각 층을 잇는 계단은 트릭아트, 장흥의 어제와 오늘, 향기계단 등으로 꾸며져 있다

 

장흥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에 도착하니 개울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먼저 반긴다. 봄이 오는 소리다. 편백나무 숲에 들어서 깊게 숨을 들이쉰다. 피톤치드가 폐 속 깊숙이 파고들어 기분이 상쾌하다. 편백나무는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가장 많이 내뿜는 나무. 이곳에는 100ha에 40년 수령의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가득하다. 여유가 있다면 하룻밤 머무는 것도 좋다. 한옥, 통나무주택, 황토주택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힐링할 수 있어서다. 나무데크는 휠체어로도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계단을 없앤 무장애길로 조성됐다. 

 

장흥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폭포
장흥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폭포

완만한 경사를 따라 편백나무를 즐기며 걷다보니 장쾌한 폭포소리가 들린다. 인공으로 조성한 폭포지만 편백나무와 함께 마음의 때를 씻어준다.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 신비로움을 가득 담은 나무들 사이에 선 나신의 여인 조각상을 만난다.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리고 있는데 숲의 생명력이 온전히 전해진다. 옆 돌계단에 앉아 잠시 쉬어 가며 도란도란 속삭이는 이들이 정겹다. 숲을 돌아 나오는 길에는 빨간 동백꽃이 흐드러지니 이곳은 이미 봄이다.

 

장흥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동백꽃
장흥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분수조형물
장흥 억불산

우드랜드는 장흥의 명산으로 손꼽히는 억불산으로 등산로가 연결된다. 높이 517m인 억불산은 주능선에 기암괴석이 많은데, 특히 부처 모양을 닮은 수많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억불산이다.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에는 나무데크가 설치돼 편백나무 삼림욕을 즐기며 오르기 쉽다.인근에는 억불산과 함께 장흥의 삼산인 사자산(666m)과 제암산(778.5m)도 있다. 누워서 고개만 들고 있는 거대한 사자 모양을 닮은 사자산의 장흥읍쪽 봉우리는 사자 머리 같아 사자두봉으로, 정상은 꼬리 부분으로 사자미봉으로 불린다. 사자산에 오르니 득량만을 배경으로 천관산 등의 능선이 켜켜이 겹치는데 한 폭의 수묵화가 따로 없다. 정상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이지만 차로 오를 수 있다. 곰솔공원묘지 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라 20분이면 사자산 중턱에 올라 빼어난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동서로 400m의 능선이 길게 뻗어 있으며 제암산이나 곰재와 연결한 종주 코스가 인기다. 제암산은 5월이면 철쭉 군락이 장관을 이룬다.

 

장흥 보림사

#천년고찰 보림사 비자림숲의 힐링

 

 해발 510m 가지산의 깊은 산자락에 있는 보림사도 봄기운을 느끼기에 좋다. 860년 신라 헌안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로, 뒤에 비자림 숲길이 조성돼 있다. 수령 400년이 넘는 비자나무 600여그루가 군락을 이루는 거대한 삼림욕장이다. 장흥 보림사는 인도 가지산 보림사, 중국 가지산 보림사와 함께 ‘동양의 3보림’으로 불린다. ‘월인석보’ 25권과 국보로 지정된 석탑과 석등,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로 지정된 동부도, 서부도, 보조선사 창성탑 및 창성탑비 등을 만난다.

 

장흥 정남진 전망대 안중근 의사 동상
안중근 의사 사당 장흥 해동사

장흥 정남진 전망대 앞에는 안중근 의사 동상이 손을 들어 바다를 가리킨 채 서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 방향이다. 장흥에 동상이 세워진 이유가 있다. 보림사 인근 장동면 만수리 해동사에 위패를 모셔놓은 안중근 의사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장흥에는 안씨들이 많이 산다. 1955년 장흥에 살던 유림 안홍천(죽산 안씨)이 순흥 안씨인 안중근 의사의 후손이 없어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이승만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다섯 차례 만나 호소한 끝에 사당을 세웠다. 이 대통령은 당시 ‘해동명월(海東明月)’이라는 휘호를 안홍천에게 건넸고 사당은 해동사로 불리게 됐다. 해동사에 도착하니 이 대통령 친필 휘호가 아담한 사당의 현판에 담겨있다. 사당 내부 정면에서 안중근 의사 영정이 여행자를 맞는다. 친필유묵 복사본도 전시돼 있다.

 

청태전
발효중인 청태전

#청태전에 실어오는 향긋한 봄내음

 

 장흥 다예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뜻한 찻잔을 코끝에 가져간다. 향기롭다. 참지 못하고 한 모금 넘기는데 쌉쌀한 맛 뒤로 달콤함이 따라오며 여행의 피로를 씻어준다. 마치 프랑스 스위트와인 소테른을 마시는 듯하니 매우 신기할 따름이다. 차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있구나. 복합적인 향에 매료돼 나도 모르게 여러 잔 마시게 된다. 보성이 차로 유명하지만 장흥도 만만치 않다. 바로 독특한 청태전 덕분이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전국의 유명한 다소(茶所) 19곳 중 전라도 장흥도호부에 13곳이 있다고 전하니 오래전부터 장흥 차가 유명했던 모양이다. 특히 ‘동국여지승람’과 ‘경세유표’ 등 여러 문헌에는 신라 말기에 보림사에서 처음으로 ‘돈차’가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보림사를 중심으로 한 장흥이 고려와 조선 시대에 차 문화의 거점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청태전 차

다예원 발효실에서는 한참 청태전이 맛있게 익는 중이다. 차를 덩어리로 만든 고형차인데, 마치 바다에서 나는 파래를 뭉쳐놓은 색이다. 마른 뒤에는 꼬챙이로 구멍을 뚫어 놓는데, 엽전 모양과 비슷해 전(錢)을 붙여 청태전으로 불리게 됐다. 돈차, 전차로도 불리는데 삼국시대부터 전해진 전통 발효차다. 청태전은 발효를 거치며 깊고 다양한 아로마를 품게 되는데, 한 모금만 마셔도 흠뻑 빠질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곳 사람들은 배앓이를 하거나 고뿔에 걸리면 청태전을 달여 마셨을 정도로 약재로서의 효능도 뛰어나다고 한다. 다원을 이끌어가는 청태전 지킴이 장내순씨가 차와 함께 먹으라며 발효실에서 가지째 말리던 곶감을 즉석에서 떼어준다. 넉넉한 시골 인심까지 더해주니 여행의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장흥=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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