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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햇살 어머니 사랑처럼 따뜻 / 풍요로운 햇빛 받아 나눔의 삶을

물과 햇빛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생명의 양식이다. 그런데 식물을 키우다 보면 식물에 따라 특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고, 햇빛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특성을 배려하지 않고 고르게 물을 주면 햇빛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뿌리는 썩어 버리고, 햇빛을 잘 받으라고 모두 빛 좋은 창가에 내놓으면 물 좋아하는 아이들은 시들시들 말라버린다.

내가 식물이라면 아마 나는 햇빛을 좋아하는 아이였을 것이다. 햇빛 좋은 날 나는 문득문득, 박두진 선생의 ‘해’를 중얼거린다. “해야, 고운 해야, 네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햇살의 사랑을 받는 청산은 그 무엇보다도 평화롭다. 특히 겨울 햇살은 어머니의 사랑처럼 따뜻하고 연인의 사랑보다 감미롭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철학

태양과 사랑에 빠져서 방학만 되면 완도 바닷가 오두막집으로 내려가는 선생님이 있었다. 서울에서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데 완도 오두막집에서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된단다. 태양이 이렇게 가슴 설레게 만드는 존재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며 만날 때마다 태양 찬가를 부른다.

니체를 대표하는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바로 그 태양찬가에서 시작한다. 동굴수행을 마치고 동굴 밖으로 걸어 나온 차라투스트라는 태양을 향해 이런 축복의 말을 던진다. “우리는 아침마다 너를 기다렸고, 너의 그 넘치는 풍요를 받아들이고는 그에 감사하며 너를 축복해 왔다.”

나이 들수록 그 태양에 대한 감수성이 생기는 것 같다. 사춘기 시절 멋모르고 좋아했던 박두진 선생의 ‘해’의 멋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긴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어둠을 살라먹고 솟아오르는 해는 그 넘치는 풍요로 만물을 비춘다. 청산을 비추고, 너를 비추고, ‘나’를 비추며 마침내 내 눈이 된다. 차라투스트라가 대단한 것은 그의 태양찬가가 고개 숙인 감사의 노래가 아니라 태양을 향한 당당한 축복의 노래라는 점에 있다. 태양을 향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지난 10년 동안 여기 내 동굴을 찾아 올라와 비추어 주었다. 나, 그리고 나의 독수리와 뱀이 없었더라면 너는 분명히 너의 빛과, 그 빛의 여정에 지쳐 있으리라.”

빛을 비추어 줘서 감사하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빛을 받는 우리가 없었더라면 너의 빛의 여정이 얼마나 힘이 빠졌겠냐는, ‘나’의 긍정의 노래, 우리의 노래다. 소심하게 감사하고, 소심하게 안달하며, 얄팍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 빛처럼 찾아들어 그 얄팍함과 소심함을 단박에 거둬 가는 느낌이다.

박두진 선생의 ‘해’에 개인적으로 살짝 걸렸던 부분이 있다.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왜 그는 달밤을 싫다고 했을까. 시인이 살아온 엄중했던 일제강점기를 떠올리면 이해되지 않을 것도 없지만 어둠과 빛, 눈물 같은 골짜기의 달밤과 해가 비추는 청산의 대립은 어쩌면 어둠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 것은 아닐는지. 어둠은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궁극에선 이글이글 타오르는 해의 양분이지 않을까.

어둠을 살라먹고 말갛게 씻긴 얼굴로 떠올라 넘치는 풍요를 나눠 주는 태양과 자연스레 그 풍요의 빛을 받아들이는 태양의 아이들은 둘이 아니다. 햇빛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 마침내 태양을 축복하게 된 존재는 태양을 닮는다. 태양을 닮아 차라투스트라처럼 저 아래 산 아래로, 심연으로 내려가 그 빛을 나눠 주고자 한다. 올 한 해 솟아오르는 태양을 만나 풍요로운 햇빛을 받으시길. 그리고 그 받은 풍요를 나눠 주는 삶을 사시길.

 

이주향 수원대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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