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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제주도 항파두리성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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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17 23:10:00 수정 : 2020-01-17 22: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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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항파두리성 유적지.

겨울방학 기간 자녀들과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가 제주도이다. 200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자연경관을 보유한 제주도에 최근에는 곳곳에 산재한 맛집을 찾아 많은 내외국인이 몰리기도 한다.

그런데 제주도에 다양한 역사유적이 있음을 알고 이곳을 탐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다. 제주도에는 제주의 뿌리를 보여주는 삼성혈을 비롯하여 고려, 조선, 근대, 현대 등 시대별 역사의 흔적들이 다양하게 남아 있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가 애월읍에 소재한 항파두리성(抗坡頭里城)이다. ‘항파두리’란 제주말로, 철옹성이라는 뜻으로, 고려후기 삼별초의 저항군들이 최후까지 고려 정부군과 몽골군에 맞서 저항을 했던 곳이다. 고려 정부는 몽골족에 세운 원나라의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면서까지 항쟁했지만, 1270년 결국 몽골에 항복을 선언했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 가장 반발했던 세력이 최씨 무신정권의 사병으로 출발했던 삼별초였다. 배중손을 대장으로 강화도를 거점으로 저항하던 삼별초군은 1270년 8월에 진도로 근거지를 옮겼고, 1271년 5월 진도가 함락되자 다시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겼다. 삼별초는 현재의 애월읍 고성리에 외성과 내성을 쌓고 궁궐과 관청 및 방어시설을 갖추었으니, 이곳이 바로 항파두리성이다.

김통정을 대장으로 하여 항파두리성을 중심으로 몽골군과 고려 정부군에 맞섰던 삼별초의 저항은 1273년 이 성이 함락되면서 마무리가 되었다. 제주도에서 삼별초를 지휘하던 김통정은 성을 탈출하여 한라산 중턱으로 피신했다가 자결을 했다. 현재에도 붉은 오름 주변에는 김통정의 피신에 관한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자연유산관광, 미락여행과 더불어 시대별 역사유적을 찾아보는 역사탐방까지 더해진다면 제주도에 대한 기억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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