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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4만명 시대 눈앞에… "법률지원 확대 시급"

입력 : 2020-01-05 15:00:00 수정 : 2020-01-05 14: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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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년 넘게 성폭행을 당해온 피해자입니다. 신고까지 많은 고민과 어려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 죽기를 각오로 북한을 떠났기에 어떻게든 열심히 살고 싶어 가해자와의 연락도 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 이런 구절로 시작하는 탈북 여성 A씨의 호소문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북한을 탈출해 2016년 한국에 온 어느 여성이 ‘북한 정보 수집’을 명분으로 내건 우리 군의 정보 요원들과 만났다가 되레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정의당 김종대 의원과 화해평화연구소 전수미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가해자로 지목된 군인들에 대한 당국의 엄정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했다. 이들에 따르면 가해자인 군인들은 A씨와 그 남동생의 모든 신상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A씨는 저항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A씨는 거듭된 성폭행 끝에 임신을 했고 결국 임신중절의 아픔까지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법률을 잘 몰라서…" 억울함 삼키는 북한이탈주민들

 

6·25 전쟁 발발 70주년,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 20주년인 올해는 ‘평화’를 강조하는 문재인정부의 정책 기조와 맞물려 1년 내내 남북관계가 중요한 화두로 부상할 전망이다. 흔히 ‘먼저 온 통일’로 불리는 북한이탈주민 문제에도 국내 시민사회의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지난해 3만명을 훌쩍 넘어 올해 안에 4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 북한이탈주민들이 겪는 고통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들은 한국 법률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각종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 성폭력 범죄 등 형사사건은 물론 가족관계 같은 민사사건에서도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다반사다.

 

북한이탈주민 B(여)씨는 2016년 중국에서 중국인과 결혼한 뒤 한국으로 입국했다. 그런데 남편인 중국인은 동반 입국하지 않고 중국에서 새로운 여자와 동거했다. B씨는 이를 확인한 뒤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한국에서 새로운 남자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들을 출산했다.

 

그러나 이혼 확정 판결이 나기 전이어서 아들의 아버지를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 남편으로 출생신고를 하게 됐다. 당황한 B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문을 두드렸고 결국 공단의 도움으로 친생부인 소송을 제기, 아들을 친부인 한국인 남편의 자녀로 등재할 수 있었다.

 

우리 군의 정보 요원들한테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탈북 여성을 대리하는 화해평화연구소 전수미 변호사(가운데) 등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정의당 김종대 의원. 뉴스1

◆옛 배우자와의 이혼 관련 사건 최다… "성폭력 피해 많아"

 

또다른 북한이탈주민 C(여)씨는 2006년 탈북한 뒤 최근 북한에 살고 있는 남편과 연락이 닿아 탈북 후 한국행을 권했다. 그러나 남편은 “새 가정을 이뤄 잘 살고 있다”며 “한국에 올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C씨는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이혼청구 소송을 제기, 이혼 확정 판결을 받아냄으로써 가족관계를 깨끗이 정리할 수 있었다.

 

법률구조공단에 의하면 201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공단에서 진행한 북한이탈주민 대상 소송 대리사건은 모두 1265건에 달했다. 배우자와의 이혼 관련 사건이 418건(33%)으로 가장 많았으며 성본 창설이나 변경, 개명 허가,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인지 청구, 친생자존부 확인 등의 사건이 뒤를 이었다.

 

그나마 공단을 찾아가 도움이라도 요청해볼 수 있는 민사사건과 달리 성폭력 같은 형사사건은 피해 여성들이 사건 내용이 널리 알려져 되레 제2, 제3의 피해를 입을까봐 우려해 문제 삼지 않고 그냥 속으로 울분을 삼키는 경우가 많다. 위에 소개한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A씨를 대리하고 있는 화해평화연구소 전수미 변호사는 “이 시간 이후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전국의 탈북 여성들은 자기가 잘못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탓하거나 앙갚음이 무서워 숨지 말고 부정을 고발하라”며 “탈북 여성들의 ‘미투(MeToo)운동’이 시작되어 사회 곳곳에서 용기 있는 고백이 나타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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