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우리 ‘이니’하고 싶은 대로 해”…정치권 ‘팬덤문화’ 열풍

입력 : 2020-01-04 12:00:00 수정 : 2020-01-05 01:26:0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5월 출시한 문재인정부 출범 2주년 기념 스노우볼. 더불어민주당 제공

“우리 ‘이니’(문재인 대통령 별명)하고 싶은 대로 해.”

 

지난해 5월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정부 출범 2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이니굿즈’ 스노볼 3000개가 판매 시작 29분 만에 완판됐다. 민주당은 당 홈페이지를 통해 문 대통령의 인형을 넣은 스노우볼 두 종류를 한정 판매했다. 문 대통령의 첫 출근 모습을 담은 ‘청와대 버전’ 1000개와 취임식 장면을 재현한 ‘취임식 버전’ 2000개였다. 이중 청와대 버전 스노우볼은 판매 개시 4분 만에, 청와대 버전 스노우볼은 25분에 동났다.

 

지난해 10월 문 대통령 팬카페 ‘젠틀재인’은 대통령을 응원한다는 뜻의 ‘달봉이’란 이름의 응원봉을 제작·출시했다. 응원봉은 달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고, 전원을 누르면 조명이 켜진다. 응원봉 제작은 카페 내 디자인 업계 종사자 등 여러 회원이 논의해 응원봉에 새길 문구, 응원봉 이름, 유통 방법 등을 결정했다.

 

문재인 대통령 팬카페에서 제작한 응원봉 ‘달봉이’.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기념품 제작부터 상대편 ‘댓글 공격’… 진화하는 팬덤정치

 

대한민국 정치권 내 ‘팬덤정치’ 열풍이 불고 있다. 이들은 특정인을 상징하는 기념품 제작은 물론, 합성 사진도 제작·유통하며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힘을 실어준다. 이에 팬덤정치를 통해 대중이 정치에 갖는 관심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과 함께 특정 정치인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를 갖게 한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 팬덤정치로 대표되는 인물은 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의 공식 팬카페인 ‘문팬’엔 2만9000여명의 회원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은 문 대통령의 일정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이니굿즈 달력’과 ‘이니굿즈 달력‘ 등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해당 카페 외에도 온라인엔 여러 개의 문 대통령 팬카페가 존재한다. 또 온라인 중고물품 거래소엔 청와대에서 기념품으로 제공하는 문 대통령 서명이 적힌 손목시계도 100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이들은 기념품 제작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반대하는 집단엔 ‘문자폭탄’과 ‘댓글 공격’ 등을 보내기도 한다.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에 기권표를 던진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국 사태’ 이후 여권 진영을 비판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비난 문자와 페이스북 등을 통한 비난 댓글에 시달렸다.

 

정치인 팬덤 문화는 보수진영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짤’이 온라인상에서 유행했다. 황 대표가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삭발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삭발 모습을 합성한 패러디물이 쏟아졌다.

 

황 대표 지지자들은 그가 삭발하는 도중 윗부분 머리카락만 남은 순간을 포착해 각종 짤을 만들고 공유했다. 영화 ‘터미네이터’ 포스터에 황 대표를 합성했고, 황 대표의 얼굴에 수염과 구레나룻을 넣어 야성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노무현은 ‘노사모’, 박근혜는 ‘박사모’…과거부터 내려온 현상

 

팬덤정치가 나타나는 것은 이번 정부만의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란색 풍선으로 대표되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란 팬클럽으로 유명했다. 노사모는 이후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을 태풍으로 만들었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후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자 ‘노감모’(노무현을 감시하는 사람들의 모임)로 역할을 바꿨다. 노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비판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취지다. 이들은 매년 연초가 되면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2017년 3월 박 전 대통령에 탄핵심판 선고 전부터 서울 광화문과 동대문 등에서 박 전 대통령 퇴진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등에서 박 전 대통령 재판이 열릴 때마다 모여 무죄를 주장하는 집회도 열었다.

 

◆전문가 “대통령제 현상… 특정 정치인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우려”

 

전문가들은 팬덤정치 문화가 대통령제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한국 정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또 이 같은 경향은 대중이 정치 관심도를 높일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론 특정 정치인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를 갖게 한다고 우려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날 통화에서 “(팬덤정치는) 적극적인 지지라고도 할 수 있는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도 있다”며 “시대 흐름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장기간 실천해 신뢰가 쌓여야 ‘팬덤’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통령제 국가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욱 배제대 교수(글로벌정치커뮤니케이션)는 “팬덤정치는 대통령제 국가의 특징”이라며 “내각제는 시스템에 의해 정치가 작동하지만 대통령제는 (대통령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는) 체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의 중심이 되는)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에 팬덤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팬덤정치는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으나 지나칠 경우 해당 정치인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팬덤정치는) 정치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확대하기도 한다“면서도 “(정책에 대한 평가보다) 지나치게 개인을 중심으로 (정치가) 이뤄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에 대한 관심은 시스템적이고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며 “팬덤정치는 자칫 왜곡된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의 정치는 선하고 (지지하는 정치인에) 반대하는 정치인의 정치는 악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