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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외고·국제고 역사 속으로…'완전 고교 평준화' 부작용 논란 여전 [김현주의 일상 톡톡]

입력 : 2019-11-08 23:00:00 수정 : 2019-11-08 17: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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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당국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 발표…2025년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내용 / 도입 당시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 반대하는 목소리 적지 않아…입시 명문고가 부활, 고교 평준화 정책 뒤흔들 것이란 우려 / 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 공교육 정상화 위해 필요하지만 부작용·과제 만만치 않아 / 자사고 등이 사라져도 이를 대신할만큼 일반고교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있냐는 의문 / 자사고·외고 반발 상당할 듯…교육당국 법적 다툼에 휘말릴 수 있어 /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 사실상 차기 정부 손에 달려 있어…시행령이 언제든 다시 바뀔 수 있기 때문 / 2022년 상반기 들어설 정부의 교육정책에 따라 일반고 전환 무산될 수도…고교학점제 역시 마찬가지

교육당국이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을 내놨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는 2025년부터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국어고(외고)·국제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사실상의 '완전 고교 평준화'가 실현되는 것이다.

 

자사고·외고·국제고는 다양한 교육수요를 담아내기 위한 학교 모델이지만, 도입 당시부터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입시 명문고가 부활하고, 이는 곧 고교 평준화 정책을 흔들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이런 우려가 일부 현실로 드러나면서 자사고 등의 폐지는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자 국정과제가 됐다. 이들 학교가 우수 학생을 독점하고 고교를 서열화하면서 공교육 황폐화를 가속했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 이른바 '조국 사태'가 일부 영향을 미쳤다. 조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비리 의혹이 불거져 사회적 논란거리로 확산하자 교육부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단계적 폐지 방침에서 일괄 폐지로 방향을 튼 것이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주요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 결과 확인된 고교 서열화 '증거'도 명분을 줬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가야 할 길이지만 넘어야 할 부작용과 과제가 만만치 않다. 우선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사라져도 그 자리를 대신할 만큼 일반고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있느냐다.

 

정부는 앞으로 5년간 2조2000억원을 들여 일반고의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학생 수준과 적성에 따른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는 등 맞춤형 교육여건도 조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조치로 크게 뒤떨어져 있는 일반고의 교육역량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자사고·외고의 반발 역시 불을 보듯 뻔하다. 교육부는 법적 다툼에 직면할 수 있다. 일반고 전환에 투입될 수천억 원의 재원도 어떻게 마련할지 아직 물음표다.

 

더 큰 문제점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착수하려는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이 사실상 차기 정부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시행령은 다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2022년 상반기에 들어설 정부의 교육정책에 따라 일반고 전환이 무산될 수도 있다. 고교학점제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백년지대계인 교육이 정파적 이익에 따른 논란과 혼란 속에 방치되는 것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며 "세계 곳곳에서 수월성과 다양성 교육에 역점을 두는데 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은 하향 평준화를 꾀하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더 정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국어고(외고)·국제고를 오는 2025년 전부 일반고로 바꾸겠다는 교육당국의 계획이 7일 발표되자 해당 학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자교연)와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정부의 일반고 전환계획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교연은 정부계획이 "내년 총선을 의식해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고 교육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한 폭거"라면서 "공정성 확보와 고교서열 해소라는 미명 하에 획일적 평등으로 퇴행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의 자사고 일괄폐지 정책에 끝까지 항거할 것"이라면서 "정부정책이 일관될 것이라고 믿고 투자한 데 따른 손실과 유·무형 피해에 대한 책임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용인외대부고 정영우 교장은 연합뉴스에 "정부는 그간 단 한 번도 우리들의 입장을 물어보지 않았다"면서 "강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을 대상으로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 취소소송 중인 안산동산고 조규철 교장도 "정부가 학교의 의견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획을 발표했다"면서 "표심에 따라 교육정책이 바퀴다 보니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고 비판했다.

 

전국 외고·국제고 학부모연합회는 앞서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외고·국제고 일반고 전환 정책을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외고·국제고는 획일적 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라면서 "학생들은 적성과 특기에 따라 공교육 내에서 외고·국제고를 선택했을 뿐인데 특혜를 받은 것처럼 오인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당사자인 학교·학생·학부모가 참여하는 어떤 공론화 과정도 없이 마치 '마녀사냥' 하듯 여론을 몰고 있다"며 "정부가 교육 문제를 정치적 관점에서 다루면서 힘의 논리로 결론을 내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전통이 오래된 자사고·외고는 일반고로 전환돼도 지역의 명문고로 명맥을 이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들 학교 주변이 '명문학군'이 되고 쏠림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대원외고·한영외고·명덕외고 등의 전통있는 외고는 일반고 전환 이후 더욱 들어가기 어려워질 것이고, 이 학교들이 있는 학군으로 이사 가려는 수요로 인해 인근 지역 부동산 시세가 꿈틀 거릴 가능성도 있다.

 

◆전통있는 자사고·외고, 일반고로 전환돼도 지역 명문 지위 유지할 듯…'명문학군' 쏠림 가능성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가계소득에 따라 초등·중학교 때 사교육을 받아 고교·대학 입시를 거쳐 사회에 진출하면서 계층 간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교육당국 통계에 따르면 고등학교 유형에 따라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 학비가 일반고 대비 평균 3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입학금과 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 등 등록금과 교과서비·기숙사비·급식비 등 수익자부담금을 합친 '학부모 부담금'을 살펴보면 일반고 학부모 부담금은 연간 28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강원 민족사관고(민사고)와 전주 상산고 같은 전국단위 자사고의 경우 연간 1인당 학부모가 내는 학부모부담금이 1250만원으로 일반고의 4.4배에 달한다. 다음으로 국제고 970만원, 외국어고 830만원, 광역단위자사고 790만원이다. 자녀를 광역단위 자사고를 보내려면 일반고의 2.8배 학비를 감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학비 상위 10개교를 꼽아보면 ▲민사고 2840만원 ▲청심국제고 2400만원 ▲경기외고 1730만원 ▲하나고 1520만원 ▲명덕외고 1390만원 ▲김포외고 1330만원 ▲용인외대부고 1290만원 ▲대일외고 1240만원 ▲인천하늘고 1220만원 ▲한영외고 1200만원 순이다.

 

이 같은 학비를 감당해야 하다보니 소득수준이 높은 가구일수록 특목고와 자사고 등에 자녀를 진학시키고, 그렇지 않은 경우 일반고에 진학하는 현상이 고착화됐다.

 

지난 2015년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가 발표한 '사회 이동성 복원을 위한 교육정책 방향' 중 서울지역 고1 학생의 학교 유형별 가구소득 분포도를 살펴보면 월 소득 500만원 이상의 고소득 가구는 자율고와 특목고에 진학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특목고의 경우 가계 경제수준이 월 500만원 이상인 경우가 절반 이상(50.4%)이며, 350만원 이하 소득 가구는 19.7%였다. 자율고는 월 소득 500만원 이상이 41.9%로 특목고보다 비중이 적었다. 다음으로 ▲351만~500만원 27.7% ▲201만~350만원 14.2% ▲200만원 이하가 16.3%로 나타났다.

 

반면 일반고와 특성화고는 소득 350만원 이하 가구 자녀들이 더 많았다. 일반고는 350만원 이하 소득 가구 비율이 절반 이상(50.8%)을 차지했고 500만원 이상 소득 가구는 19.2%에 불과했다.

 

특성화고는 특목고와 정반대로 82.1%가 소득 350만원 이하 가구다. 200만원 이하가 57%, 201만~350만원 소득의 가구가 25.1%였다. 소득 351만원 이상 가구 비중은 총 17.8%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500만원 이상 가구는 4.8%였다.

 

고입 단계부터 사교육비도 차이를 보인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사교육비 통계에 따르면 고교유형에 따라 중학교 시절 사교육 참여율은 과학고·외고·국제고-자율고-일반고 순서로 나타났다.

 

일반고의 경우 69.5%로 전체 평균(69.6%) 수준이었지만 자율고(자사고·자율형공립고)는 78.8%였으며 과학고와 외고·국제고는 89.8%에 달했다. 10명 중 1명은 사교육을 받아야만 상위 고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평균 사교육비 액수도 같은 순서로 나타났다. 과학고·외고·국제고에 진학하기 위해 중학교 때 사교육을 받은 학생은 월 49만3000원, 자율고 42만5000원, 일반고 29만6000원을 썼다.

 

◆나경원 "문 정부 본인 자녀들은 이미 특목고·자사고·유학 다 보냈다" 맹비난

 

보수 야권은 8일 자사고, 특목고 등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교육 독재", "강남 띄우기 정책" 등으로 맹비난하면서 헌법 소원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한마디로 아마추어 정권"이라며 "(자사고 등 일반고 전환은) 서울 집값 띄우기 정책으로 이어진다. 강남·목동 집값 띄우기 정책, 8학군 성역화 정책으로 학교 서열화에 이어 지역 서열화가 생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본인 자녀들은 이미 특목고·자사고·유학 다 보냈다"며 "국민들의 기회만 박탈한다"고 덧붙였다.

 

나 원내대표는 정부가 이번 자사고·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을 시행령 개정을 통해 추진하는 것에 대해 '시행령 독재'라며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헌법은 모든 국민이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며 "자사고 특목고 폐지에 대해 헌법 소원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당은 이날 오후에도 논평을 통해 자사고·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을 비판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시행령으로 자사고, 외고 일괄폐지는 교육 자유 말살하겠다는 문재인 정권의 독재 본색"이라며 "교육부는 국민의 권익, 첨예한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을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면서 밀어붙이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 "의도도 불순하기 짝이 없다. 조국 사태를 수습하려 내놓은 정시확대로 전교조의 심기를 건드린 죄를 만회하기 위해 전교조 청부 정책으로 보답하겠다는 것"이라며 "일반고로의 단계적 전환이라는 과거 약속도 당장의 전교조 달래기 앞에서는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과연 전교조 포로 정권다운 모습"이라고 비꼬았다.

 

김현아 한국당 원내대변인도 "유은혜 장관은 사회적 합의도 없이 자사고를 폐지하면서 '폐지가 아니라 일반고화'라고 한다"며 "북한 ICBM을 이동식발사대에서 발사할 수 없다고 한 정의용 안보실장 만큼이나 황당한 말장난"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부모들은 이제 교육부 장관이 아니라 5년짜리 대통령 입만 바라보면서 자녀 교육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며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은 문재인 정권에서는 '백일지소계(百日之小計)'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바른미래당도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 강한 우려를 드러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결국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며 "대통령 말 한마디에 따라 백년지대계인 교육이 순식간에 바뀐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되나"라고 개탄했다.

 

이어 "연고기업 등이 지역 인재 양성을 위해 수백억원의 사비를 들여가며 자사고를 발전시켜왔다"며 "이제 와서 정부의 이념에 따라 자사고를 폐지한다는 것은 어렵게 쌓아올린 지역교육 무너뜨리는 일일 뿐더러 교육선택권과 설립자의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개혁은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공약한 것처럼 정치적 입장 따라 결정할 게 아니라 국가미래를 보고 계획돼야 한다"며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회의가 이런 뜻에서 만들어졌으니 그쪽에 맡기라"고 제안했다.

 

◆일반고 일괄 전환시 약 1조원 예산 소요될 듯…유은혜 "한번에 해야 사회적 논란 최소화할 수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8일 자사고, 외고, 국제고 59곳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데 1조원 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는 이날 오전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사고 42곳 (전환에) 7700억원이 든다는 게 예산정책처의 추계"라며 "59개교에는 1조5억원이 든다. 이 부분은 저희가 내년 일괄 (전환을) 가정했을 때의 예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1년에 1조원이 드는 것처럼 보도가 된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전환시기를 2025년으로 발표했는데, 2025년이 되면 첫 예산이 5년에 1조원이다. (따라서) 1년엔 2000억원"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내년부터 몇 개 학교가 (일반고로) 전환이 될지와 5년 후 학생수가 감소하기 때문에 이 부분들에 대한 추계(가 필요하다)"라며 "1조원 이상 소요는 모든 학교가 (2025년에) 일관 전환했을 때 5년 동안의 추계"라고 강조했다.

 

유 부총리는 자사고와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해선 "이미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던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폐해들을 진단했고, 일괄적으로 전환하는 게 사회적 논란을 최소화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회의 입법 과정을 피해 시행령 개정으로 일반고 전환을 추진한다는 지적에 대해 "이들 학교는 시행령을 바탕으로 설립된 것"이라며 일반고 전환도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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