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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휴전 18일 앞두고 숨진 23살 병사… "마지막 순간 평온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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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24 15:00:00 수정 : 2019-08-24 14: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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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9일 철원 화살머리 고지서 전사… 66년 만에 가족 품

리얼리즘 전쟁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에리히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1929)는 독일군 병사인 주인공 ‘나’가 죽는 장면으로 끝난다.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년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

 

전선이 조용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이 1918년 11월11일 영국·미국·프랑스 세 연합국에 항복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소설 속 보이머가 영국군 또는 미군, 아니면 프랑스군 병사가 쏜 총에 맞아 숨진 시점은 전쟁이 끝나기 불과 한 달 전이었던 셈이다. 전쟁에서 독일이 이기길 원했든, 져서 다행이라고 여기든, 모든 독자들로 하여금 탄식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종전이 다가올수록 이기고 있는 나라 장병들 사기는 쑥쑥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는 그 반대다. 전쟁이 곧 끝날 건데 열심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다? 대부분 군복무 경험이 있는 한국 남성들이 흔히 하는 ‘말년 병장 때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란 말을 떠올리면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초 영국군도 그랬다. “종전이 눈에 보이는 시점에서 죽지 않으려는 의지가 작용해 사기가 낮은 편이었다. 탈영 문제는 점점 더 커져서 약 2만명의 병사가 부대를 이탈했다. 병사들에게 공격하라고 설득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졌으며….” 전쟁사 전문가인 영국인 앤터니 비버가 저서 ‘제2차 세계대전’에 쓴 구절이다.

 

얼마 전 6·25 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강원 철원 화살머리 고지에서 23세 나이로 전사한 병사가 꼭 66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는 기사가 우리의 눈시울을 적셨다. 올해 5월 고지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이 오늘날의 병장 계급에 해당하는 이등중사 남궁선(사진)이란 젊은이로 최종 확인된 것이다.

 

군은 “고인이 1953년 7월9일 화살머리 고지에서 전사했다”고 설명했다. 정전협정 체결로 한반도에서 총성이 멎은 게 1953년 7월27일의 일이다. 고인은 전쟁이 끝나기 불과 18일 전에 숨진 것이다. “군대에 가기 전에 결혼해 1남1녀를 뒀지만 입대 이후 한 번도 휴가를 나가지 못했다”는 군의 발표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커져만 간다.

 

1차 대전 때 아들을 군대에 보낸 독일 어머니들은, 물론 자식이 살아 돌아오는 게 최선이지만, 행여 전사한다면 부디 ‘즉사’하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통이 없길 기원한 것이다.

 

“그의 몸을 뒤집어 보니 죽어가면서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된 것을 마치 흡족하게 여기는 것처럼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 묘사된 주인공 파울 보이머의 최후다. 남궁선 이등중사의 마지막도 부디 그와 같이 평온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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