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근의인문상식] 이기주의의 확장 홉스 “인간은 자신의 이익 위해 행동” / 이기주의자도 이타적 행동 가능 입력 2018-06-15 17:21:29, 수정 2018-06-15 21:13:40 사람이 자신의 이익만을 돌보면 이기주의자가 되고, 타인의 이익을 돌보면 이타주의자가 된다. 자신과 타인 둘을 가르는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차이를 부각해서 몇몇 사전에서는 이기주의를 ‘다른 사람이나 사회 일반에 대해서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이나 행복만을 고집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기주의자와 이타주의자는 완전히 다른 가치를 주장하므로 소통의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사전적 정의대로라면 이기주의는 윤리설이지만 실제로 타인의 고통을 보고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을 연상시키게 된다. 우리가 이러한 정의를 전제하고서 “당신은 이기주의를 지지합니까”라고 물으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워진다. 사정이 이렇다고 해도 현실에 이기주의자가 적고, 이타주의자가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 이기주의를 다르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실례를 이기주의의 논의와 연결 지어 생각해보자. 내가 열두 달 받는 월급을 열한 달치만 받으면 당연히 손해가 된다. 대신 그 한 달치 월급은 다른 사람에게 일자리의 기회와 경제적 이익을 주게 된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왜 내가 손해를 보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어야 하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한 달간의 휴가를 얻어서 평소 하고 싶었지만 시간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장기간 해외여행을 갈 수도 있고, 아니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한 달이 지나면 돌아갈 직장도 있고, 휴가를 즐기면서 그동안 할 수 없었던 뭔가를 한다면 삶의 만족도가 크게 향상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나는 월급은 손해를 받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면서 또 다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에 찬성한다면 이기주의자라도 이기주의에만 빠지지 않고 이타주의를 의도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이타적 행위를 할 수 있다. ‘중용’(中庸)에서도 일찍이 나를 이루는 성기(成己)와 주위를 돌보는 성물(成物)을 구분하지만 종합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이기주의자가 늘어나면 좋겠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