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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혼·실직 탓… 거리로 나앉은 노숙인

‘2016년 실태조사 결과’… 1만1000명 달해

“쪽방에서 몇 달 만에 백골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이들에게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자활 의지를 잃은 사람들은 아파도 좀체 병원에 가질 않아요. 치료를 받을 의지가 없거나 혹시 큰 병이 아닐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좁은 방에 누워만 있으려고 합니다.”

“거리에서 노숙하는 여성들은 정신질환이나 큰 병을 앓고 있다고 봐야 해요. 여성 노숙인은 웬만하면 길에서 생활하지 않아요. 거리 노숙을 한다는 건 의료적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봐야 합니다.”

노숙인을 돕는 활동가들은 노숙인들의 건강 문제를 시급한 사안으로 꼽았다. 질병 때문에 삶의 조건이 악화돼 노숙 생활에 들어선 뒤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건강이 더 나빠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정부 조사 결과 길거리나 지하철역, 공원, 쪽방 등을 전전하며 지내는 노숙인 4명 중 1명은 질병 때문에 안정된 주거 공간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보건복지부의 ‘2016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숙인의 25.2%가 질병 및 장애(정신질환)를 노숙의 결정적 계기로 꼽았다. 다음은 이혼 및 가족해체(15.1%), 실직(13.7%), 사업실패(9.7%), 알코올중독(8%), 신용불량 또는 파산(5.2%) 등의 이유로 노숙을 하게 됐다고 답했다.

이들의 건강상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노숙인 10명 중 4명(36.1%)이 고혈압·당뇨·고지혈증 등 대사성질환을 앓았다. 치과질환 유병률은 29.5%, 정신질환은 28.6%로 집계됐다.

음주·흡연 비율 또한 높았다. 10명 중 6명(58.4%)이 담배를 피웠고 절반(45.3%)은 일주일에 12번 이상 술을 마시는 ‘문제성 음주자’로 나타났다.

우울증도 심각했다. 노숙인 절반 이상(51.9%)이 우울증세를 보였는데 쪽방주민(82.6%)과 거리노숙인(69.0%)의 비율이 크게 높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거리노숙인과 쪽방주민의 환경적 요인에 대한 평가와 정책적 개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전국의 노숙인 수는 지난해 10월 1만1340명으로, 생활시설 기준으로 50대(33%)가 가장 많았고 60대(28%), 40대(18%), 70대(11%) 순이었다. 20∼30대 청년노숙인도 8%를 차지했다.

복지부는 2012년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 결과를 ‘2018년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시행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다.

먼저 노숙인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기로 했다. 정부는 현재 일시보호시설이나 생활시설에서 지내는 노숙인 중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6개월 이상 보험료를 체납한 노숙인을 의료급여 1종 수급자로 지정해 전국 260개 병원에서 진료지원을 하고 있다. 앞으로 민간단체와 협력해 의료급여 사각지대의 노숙인에 대한 무료 진료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노숙인의 특성을 고려한 자활근로사업을 확충하고 노숙인에게 우선 공급하는 매입·전세 임대주택도 단계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