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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톡톡 플러스] 2만원 vs 20만원…결국 문제는 가격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미국산 아몬드·캐슈넛·피스타치오 등의 견과류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견과류 시장 급성장하고 있음에도 값싼 외국산에 밀려 국산 호두는 ‘찬밥신세’가 된 지 오래다.

판매가 원활치 않아 호두 농사를 지으면 손해인 상황이라 아예 농사를 포기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과거 호두·땅콩 등에 한정됐던 견과류는 어른들의 술 안주나 간식 정도에 그쳤지만, 다양한 맛과 영양이 가미된 외국산이 수입되고 '웰빙 바람'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몇 해 전부터는 4∼5종의 견과류를 작게 포장한 일명 '한 줌' 상품이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단순한 '주전부리'를 넘어서 수험생 및 임산부 영양식이나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식으로 인기를 끌면서 대형마트에 즉석 로스팅 코너까지 생겨나고 있다.

◆견과류시장 성장할수록 국내산 호두 소비 되레 감소하는 이유

그러나 토종 견과류의 대표 주자인 호두는 정반대인 상황이다. 견과류 시장이 팽창할수록 오히려 소비가 줄어들고, 가격이 곤두박질 치는 것이다.

이는 수입산 견과류에 밀려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000년대까지 호두 주산지인 충북 영동에서 나오는 껍데기 벗긴 호두 1㎏는 20만원을 웃돌았다. 흉작인 해는 3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올해 이 지역의 호두 판매가격은 10만8000원(택배비 포함)이다. 그나마 작년 수매한 50t 중 31t은 팔리지 않고 창고에 쌓여 있는 상태다.

산림청이 집계한 지난해 호두 수입량은 1만4042t으로, 5년 전인 2011년 90431t에 비해 절반(48.9%) 가량 증가했다.

이 기간 아몬드는 50.7% 늘어난 2만3330t이 수입됐고, 캐슈넛·피스타치오도 39.1%와 83.4% 늘어난 1856t·508t이 들어왔다.

여러 가지 견과류를 섞은 ‘믹스넛 제품’ 수입도 4만8323t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호두는 설과 대보름에 70∼80% 가량이 유통되는데, 외국산 견과류가 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재고가 쌓이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다면 몇 해 안에 국내 호두 농사가 대부분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소비자들 "국산 호두, 안 먹는 게 아닌 비싸서 못 먹는 것"

산림청이 집계한 지난해 전국 호두 재배면적은 1904㏊다. 아직 통계상 재배면적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관계부처는 호두를 포함한 79개 품목의 임산물 수급과 재배 동향을 매년 조사하고, 생산 및 유통시설 현대화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카다미아(왼쪽)와 피스타치오. 11번가 제공
이에 대해 시민들은 결국 문제는 ‘가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직장인 김모(34)씨는 "외국산 호두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국산 호두가 너무 비싸 못 사먹는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국산 견과류에 손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호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주부 이모(41)씨는 "국산 호두가 비싸도 사먹으려고 구입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며 "호두 (안쪽) 알이 말라 너무 맛이 없었다. 두 군데서 구입했는데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회사원 박모(50)씨는 "생산지 시세 몇 배 수준의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며 "비단 호두만 그런 게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늘 중간 유통마진이 문제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