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건축서 선이란 책임 따르는 행동… 일정하고 객관적이어야 〈159〉 선 입력 2017-04-14 16:32:54, 수정 2017-04-14 2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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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 염치저수지에서 본 전원주택. 집을 도로와 물과 평행을 맞추고 필요한 공간들을 배치했다. |
# 선의 의미
가본 적은 없지만 르네상스시대의 미술가 미켈란젤로의 작업실에는 ‘Nulla dies sine linea’라고 써 있었다고 한다. 라틴어인데 번역하면 ‘선을 긋지 않고 하루를 보내지 말라’는 뜻이다. 마치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는 금언처럼 비장하다.
예술가의 기본을 강조하는 덕목인 듯하다. 선을 긋는다는 것은 드로잉을 의미하는 것이고, 기본을 끊임없이 다져나간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거나 어떤 조형이나 공간을 창조하는 예술인에게도 드로잉은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며 알파이며 오메가이다.
건축가들 역시 무수한 선을 그으며 살고 있다. 나에겐 선에 대해 좌절한 경험이 몇 번 있다. 데생이라는 것을 처음 배울 때였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냥 느낌대로 본 대로 그리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교육은 그렇지 않다. 내용보다는 형식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 안에서 서열을 매긴다. 미술교육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림의 가장 기본은 데생이라며,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4B연필, 그 무른 연필심으로 켄트지에 구형, 삼각뿔, 정육면체 등의 석고덩어리를 그렸다. 한 번에 형태를 잡는 것이 아니라 연필을 길게 잡고 여러 번 그어가며 형태를 찾아내고 음영을 선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무른 심이 켄트지와 마찰을 하면서 뭉개지며 그려진 도형은 형태가 뭉그러진 검은 숯검댕이였다. 그리면 그릴수록 그림은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갔다.
아마 이때 본격적으로 ‘나는 그림과 맞지 않아’하며 포기했던 것 같다. 옆에서 그런대로 비슷하게 그림을 만들어내는 친구를 보며 그런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그 데생이라는 행위가 나의 첫번째 선에 대한 좌절이었다.
건축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 대학에 입학하니, 건축이라는 영역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치 입구를 지키는 사나운 수문장처럼 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도술을 배우기 위해 몇년 동안 물을 길어 나르고 장작을 패는 만화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선을 긋는 일로 건축에 대한 배움이 시작됐다. 본격적인 건축 설계로 들어가기 전에 한 학기 정도는 제도를 하는데, ‘제도(製圖)’란 말 그대로 작도하는 법을 배우는 과목이다. 연필로 자유롭게 스케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를 대고 정확하게 치수를 맞춰 선을 긋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익숙하지도 않은 여러 가지 제도용구와 제도용 연필로 선을 그리는 것은 마치 손발을 묶고 운동장을 몇 바퀴 도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첫날 수업에 조교가 들어와 별다른 설명도 없이 4절 켄트지를 나누어주고 몇 센티미터 간격으로 테두리를 그리고 그 안에 자를 대고 선을 가득 그려오라고 했다. 어떤 자세로 어떻게 그리라는 작도 요령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냥 제도판에 코를 박고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자를 대고 긋기에 선은 반듯하게 그어졌지만, 긋는 동안 연필심이 물러져서 처음 시작부분의 선은 얇고 마지막은 아주 굵은 선으로 끝났다. 예전에 석고를 데생할 때처럼 그리면 그릴수록 선은 점점 엉망이 됐고 켄트지는 연필가루 범벅이 되어가고 있었다. 무척 많은 시간을 들여 한 장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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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 염치저수지 인근에 지어진 전원주택. 수평으로 길게 뻗어나간 집은 원래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수직의 소나무와 어우러지며 대지에 처음 그렸던 선의 의지를 확인시켜 준다. 그래서 이 집을 ‘선의 집’으로 부르고 있다. |
# 동양의 선, 서양의 선
몇 시간을 공들여 선을 다 그려서 제출했는데 담당교수님은 선의 굵기, 진하기 등을 사인펜으로 체크해서 새빨갛게 표시를 해서 되돌려주었다. 그리고 불합격이니 다시 그려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마치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처럼, 혹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악몽처럼, 불합격당하고 그리고 또 불합격당하는 일이 일년 내내 반복됐다. 그러나 나중에 알았다. 그것은 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키우는 하나의 과정인 것을.
건축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사는 곳이다. 건축가가 실수를 하거나 대충 일을 하면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 어떤 경우에는 목숨이 위험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무척 신중하게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건축에 임하라는 하나의 경고이며, 건축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잡아주는 과정이었다.
그러나저러나 그것은 내가 겪은 선에 대한 두 번째 좌절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좌절 속에서 어렵게 배운 선을 매일 긋고 있다. 시작과 끝이 일정하게, 그리고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선을 긋기 위해 무척 노력한다.
여러 종류의 선이 있다. 선이란 단순히 연필이나 붓으로 종이에 자국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어떤 경지를 지향한다. 때론 선 하나가 굉장한 묘사가 들어간 그림보다 더 많은 정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동양의 선이 있고 서양의 선이 있다. 서양의 선은 나를 좌절시킨 데생의 선처럼 올바른 선을 찾기 위해, 아니 선의 이데아를 찾아내기 위한 하나의 과정과도 같다. 무수히 많은 선을 그으며 그 안에서 진정한 선을 찾아낸다. 그런 많은 기다림에 지치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무척 귀납적인 과정이다. 반면 동양의 선은 무척 일회적이며 우연에 기댄다. 단번에 하나의 선을 그어낸다. 물론 그 선을 긋기까지는 무척 오랜 수련이 필요하고 수양이 필요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어떤 논증도 없고 어떤 수식도 없다. 단지 선을 그어낸다. 그리고 그 선을 이해하면 된다. 어찌 보면 그 뒤에 달리는 이해와 해석은 사족처럼 느껴진다. 연역적인 선이다.
가끔 재미삼아 한·중·일 삼국의 선을 비교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지붕의 용마루 선과 처마선이다. 중국의 선은 무척 과장되고 화려하다. 그 움직임이 커서 조금 소란스럽다고 느껴진다. 일본의 선은 직선적이면서 화려하다. 마치 굵은 목소리로 남성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사무라이의 느낌이 든다. 반면 한국의 선은 어떤가. 무척 애매한 선이다. 버선코처럼 무언가 뾰족한 듯하면서도 뭉툭하고 우리 도자기의 선처럼 우아하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곡선이다. 극단적인 두 나라의 선과는 다른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묘한 곡선이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범종 곡선이 그렇고 한량무나 승무의 춤사위가 그렇다. 선을 부드럽게 긋는데, 어깨의 힘을 빼고 작위적인 선을 경계하며 무심히 그려내는 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아마 오랜 시간 이 땅에서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스며든 땅의 의지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 또한 궁극적으로는 땅 속에 숨어 있는 의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럴 때 건축가의 역할은 다른 차원의 존재 속에 숨어 있는 의지를 찾아내는 주술가와 같고 땅 속에 숨겨진 시간을 복원해내는 고고학자와 비슷하다.
#빈땅에서 선을 찾아내 집을 세우다
충남 아산 염치저수지는 무척 풍광이 좋다. 그래서인지 저수지를 빙 둘러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산이 적당한 거리로 물러서 있으며 저수지의 수량도 아주 넉넉하다. 그리고 남쪽은 훤하게 열려 있다. 호수라고 하면 무언가 정서적이고, 저수지라고 하면 무언가 너무 기능적인 이름이고 건조하다는 이상한 선입견이 있다. 동네를 품어 안은 저수지의 이름에 들어간 염치라는 말은 체면, 혹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최소한의 인간적인 자각을 뜻하는 우리말이기도 하고, 소금고개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그곳에 있는 아주 훤칠한 땅을 마련해서 주택 설계를 의뢰했다. 근처에서 사업을 하는 오십대 초반의 신사였는데 음악을 좋아하고 좋은 오디오를 갖춘 음악실을 갖기를 원했다.
집을 앉힐 땅에 간 날은 햇살이 좋은 봄날이었는데 나뭇잎의 색도 아주 좋았다. 조금은 건조하고 속도가 빠른 국도를 한참 달리다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이윽고 염치 저수지가 나왔다. 그리고 비어 있는 땅에 도착했다. 풀이 대충 자라고 있었고 훤칠한 소나무들이 땅의 끝머리에 윤곽선을 따라 서 있었다. 가로로 길게 펼쳐진 수평적인 물과 수직의 훤칠한 소나무가 주는 풍경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땅도 가로로 아주 긴 형상이었다.
대지와 물 사이에는 4m 정도 높이 차이가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내려다보니 저수지와의 사이에 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논에는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땅의 가운데서 보면 막힘 없이 물이 쭉 펼쳐지고, 내 시야에서 물이 끝나는 부분 양쪽으로 산이 보이고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아주 편안한 땅이었다. 그리고 거칠 것도 없는 땅이었다. 바꿔 말하면 무엇이든 해도 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힘든 땅이기도 했다. 이 땅에는 수직이건 수평이건 선을 죽 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축에서의 선이란 책임이 따르는 행동이다. 단순히 종이에 가지런히 흔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 전에 그은 선과 지금 긋는 선이 어떤 관계를 갖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점과 점, 선과 선은 일정한 간격을 가져야 한다. 너무 가까워져도 안 되고 너무 멀어져도 안 된다. 일정해야 하고 무척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설계를 시작했다.
일단 집을 지을 땅을 종이에 그렸다. 땅을 그려본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다. 나는 주로 그 방식으로 땅을 이해하고 땅과 대화를 한다. 물론 땅이 내가 알아들을 말로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내가 묵묵히 선을 이어가며 땅을 그리고, 주변의 풍경을 그리고, 풀이나 나무를 그리고, 해가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들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땅의 색과 냄새가 내 몸 안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느낀다.
건축주는 우리에게 자신의 생활을 설명했고 자신의 기호를 설명했다. 우리는 건축주의 요구를 우리가 이해한 땅의 결에 맞춰서 앉혔다. 앞에 있는 저수지와 최대한 거리를 두고, 땅의 끄트머리에 가로로 긴 선을 긋고 그 선에 여러 가지 기능의 공간들을 얹었다.
집을 도로와 물과 평행하고 길게 펼치고, 필요한 공간들, 부엌과 거실, 가족의 침실, 그리고 주인이 머물고 음악을 들을 별채를 차례로 연결했다. 그리고 각 공간의 사이마다 마당을 끼워 넣었다. 땅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해 살짝 꺾인 집을 도로에서 볼 때, 자칫 장벽같이 단조롭게 보이지 않도록 중간중간 바람이 들락거리고 시선이 들락거릴 수 있는 구멍을 뚫어주었다. 집은 여러 개의 마당을 품으며, 실제보다 더 길어 보인다. 수평으로 길게 뻗어나간 집은 원래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수직의 소나무와 어우러지며 대지에 처음 그렸던 선의 의지를 확인시켜 준다. 우리는 이 집의 이름을 ‘선의 집(casa linea)’으로 부르기로 했다.
임형남 가온건축 공동대표·‘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공동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