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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포츠+] 유니폼 33번 패트릭 유잉, 킹콩으로 불렸던 뉴욕의 전설

[박태훈의 스포츠+] 전설의 유니폼 넘버, 33번의 주인공…③패트릭 유잉, 뉴욕의 심장으로 불렸던 '킹콩' 

◇ 뉴욕 닉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자마이카 출신 패트릭 유잉(1962년 8월 5일생)은 미NBA 센터 전성시대 주역 중 한명으로 공수에 걸쳐 빼어난 활약을 보인 슈퍼스타이다.

킹콩으로 불리며 골밑을 장악한 그가 있을 때 그 누구도 뉴욕 닉스를 함부로 깔보지 못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인 뉴욕의 시민, 즉 '뉴요커'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메이저리그의 양키스와 메츠는 종종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해 뉴요커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곤 했다.

반면 농구는 1970년대 두차례 이후 NBA정상을 밟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뉴요커들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처 비난받을 만큼 극성맞게 응원을 펼쳤다. 

그 바탕에는 213cm의 빅맨, 패트릭 유잉이 있기 때문이다.

유잉은 1985년 전체 드래프트 1순위로 뉴욕 닉스 유니폼을 입은 뒤 방출되던 1999~2000시즌까지 15시즌을 뛰면서 뉴욕 닉스의 각종 기록을 도맡아 차지했다.

뉴욕커들은 유잉을 '뉴욕의 심장'이라 부르며 즐거워 했다.

유잉이 만든 신발은 청소년들 사이에 큰 인기를 모았으며 유잉 신발을 싣고 뉴욕거리를 걷는 것이 당연시 됐다.

패트릭 유잉은 뉴욕 닉스 각종 기록 중 거의 대부분 맨 꼭대기에 자신을 이름을 올렸다.

몇 몇을 보면 다음과 같다

*통산 출전 경기수 1위(1039경기) *통산 출전시간 1위(3만7586분)

*통산 득점 1위(2만3665점) *통산 필드골 1위(9260골) *통산 자유투1위(5126개)

*통산 리바운드 1위(1만759개) *통산 수비리바운드 1위(8191개) *통산 공격리바운드 1위(2580개)

*통산 스틸 1위(1061개) *통산 블록 슛 1위(2758개)

◇ '킹콩'이라는 이름으로 수비보다 공격에서 더 뛰어난 활약, 우승반지는 없어

패트릭 유잉은 모교 조지타운 대학을 NCAA 정상에 올려 놓을 때 빼어난 수비력으로 주목받았다.

프로에 들어와선 수비보다 공격력이 더 좋은 센터로 이름을 남겼다.

1980년~1990년대는 빅맨 전성기로 유잉과 함께 아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샤킬 오닐 등이 코트를 장악했다. 

유잉은 '킹콩'으로 불릴만큼 골밑 싸움에 능했다. 그가 수비보다 공격에 더 치중한 듯한 기록을 남긴 것은 상대적으로 허약한 뉴욕 닉스의 공격력 때문이기도 하다.

유잉의 최대 약점은 NBA 우승반지가 없다는 것. 팀을 두차례 NBA 챔피언 결정전에 올려 놓는 것(1993~1994, 1998~1999시즌)에 만족해야 했다.

◇ 킹콩을 팔아넘긴 뉴욕 닉스, 영구결번식을 성대히 치르는 것으로 사죄

유잉은 아프거나 슬플 때도 뉴욕 닉스를 위해 뛰었지만 팀은 1999~2000시즌 컨퍼런스 결승에서 패하자(팀을 결승에 올려 놓은 유잉은 부상으로 결승에 뛰지 못했다) 유잉을 신인드래프권 1순위 선발권과 맞바꿔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보내 버렸다.

이후 유잉은 시애틀서 1시즌, 올랜도 매직서 또 1시즌을 보낸 뒤 2002년 은퇴했다.

2003년 2월 28일 뉴욕 닉스는 유잉의 백넘버 33번 영구결번식을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어 주는 것으로 미안함을 갚았다.

유잉을 보낸 후 뉴욕 닉스는 팀 리빌딩에 성공하기는 커녕 지금까지 맥을 못추고 있다.

유잉은 2008년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은퇴후 지금까지 워싱턴, 휴스턴, 올랜도, 샬럿에서 코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 유잉의 기록

* NBA 신인왕=1986년 *올스타 11회 *올림픽 금 2개=1984, 1992년

*NCAA 챔피언=1984년 *최우수 대학운동선수=1985년

*센터 중 역대 득점 6위(전체 21위)=2만4815점 *역대 블록슛 7위=2894개

*농구 명예의 전당=2008년 *대학농구 명예의 전당=2012년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