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에 물려받은 바둑 DNA… 5남매 모두 유단자 이 9단 가족사 ‘눈길’ 입력 2016-03-14 17:49:04, 수정 2016-03-17 14:33:47
이세돌(33) 9단은 컴퓨터 1200대의 능력과 맞먹는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4국에서 승리했다. 인류를 대표하는 이 9단이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바둑과 얽혀 있는 그의 가족사도 주목받고 있다.
 |
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2국이 열린 지난 10일 딸 혜림양의 손을 잡고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의 대국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의 바둑 ‘천재성’은 가족들에게서 기인한다. 이 9단의 아버지와 남매는 모두 바둑 유단자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 고 이수오씨는 아마 5단이며, 큰형 이상훈(41)씨는 프로 9단이다. 작은형 이차돌(36·아마 5단)씨, 큰누나 이상희(42·아마 5단)씨, 작은누나 이세나(40·아마 6단)씨 모두 바둑 고수다. 이 9단 형과 누나들의 바둑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버지가 다섯 자식 모두에게 어릴 때부터 바둑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동생인 이 9단에게 바둑실력이 추월당하면서 공부로 방향을 튼 형 이차돌씨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이 9단이 처음 바둑을 배운 것은 다섯살 때. 교직에서 퇴직해 농사일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매일 아침 밭으로 일을 나가기 전 이 9단에게 사활문제를 내줬다. 아버지가 바둑판 네 귀퉁이에 네 개의 사활문제를 주면 이 9단은 1000평이 넘는 너른 집에서 바둑판 앞에 혼자 앉아 끙끙대며 문제를 풀곤 했다.
아버지는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 9단이 푼 문제를 검사했는데, 답이 틀릴 때면 거침없이 불호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이 9단은 하루에도 수십번 판을 허물고 새로 짜는 일을 반복했다. 그 결과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아버지와 맞바둑을 둘 정도로 기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엔 아버지를 뛰어넘었다. 이 9단의 아버지는 종종 아들의 목 뒤에 삼각형으로 찍혀 있는 점 세 개를 보고 바둑돌이 떠올랐는지 세돌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며 만족해했다고 한다.
 |
어린시절의 이상훈(왼쪽), 이세나(가운데), 이세돌 남매가 집 앞 평상 위에서 바둑을 두고 있다. |
이 9단의 형제들이 모두 바둑을 잘하다 보니 이 9단에게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한다. 바둑도장에서 프로기사를 양성 중인 이상훈 9단은 이 9단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 바둑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9단의 작은누나 이세나씨는 바둑 잡지 ‘월간 바둑’의 편집장이다. 이세나씨는 알파고와의 대국을 앞둔 이 9단에게 “동생은 알파고 분석을 마쳤을 것이다. 긴장을 풀고 대국에 임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응원을 보냈다.
누구보다 이 9단에게 힘이 되어준 이는 아버지였다. 1998년 암으로 작고한 아버지는 이 9단의 영원한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이 9단과 형제들에게 바둑은 직업이나 취미를 넘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이다. 이 9단은 늘 “아버지를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말한다. “이기는 것보다 나 자신에게 만족하는 바둑을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은 이 9단의 바둑철학이 되었다. 이 9단이 15일 알파고와 마지막 5국 대결을 벌인다. 그가 인간의 자존심을 얼마나 더 세워줄지 세계인들은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권구성 기자 kusung@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