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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 '회원가입' 못해도·'네네?' 그래도…제 이름이 좋아요

“김수한무 거북이와두루미 삼천갑자동방삭 치치카포사리사리센터 워리워리세브리깡 무드셀라구름이 허리케인에담벼락 담벼락에서생원 서생원에고양이 고양이에바둑이 바둑이는돌돌이…”

지난 1970년대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씨가 읊어 화제가 됐던 이름이다. 이름이 길수록 오래 산다는 미신 때문에 방송에 등장했는데, 이후 여러 배우들과 심지어 드라마에서까지 전파를 타면서 우리네 입에 항상 오르내리는 재밌는 말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 이름은 성(姓)과 이름을 합해 세 글자가 보통이다. 성이 두 글자인 경우는 네 자까지 이름이 늘어나지만, 그 이상 길어질 경우는 대개 TV 프로그램에 화제의 인물로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물론 순우리말로 지어진 이름도 많다.

세계일보와 만난 문새한슬(26)씨도 비슷한 사례다.

“새한슬은 새롭고, 크고, 슬기롭게라는 뜻이에요. 한글 이름이죠.”

문씨는 “사람들이 이름만 들었을 때 종종 여자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이한 사실은 그의 남동생 이름도 역시 ‘문새다슬’로 네 글자라는 점이다.

성이 두 글자인지 아니면 한 글자인지를 놓고 주변 사람들이 내기한 웃지 못할 사연도 있었다.

당시 장난기가 발동했던 문씨는 “당연히 성이 ‘문새’지”라고 말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이를 믿었단다. ‘남궁’이나 ‘독고’ 등처럼 당연히 ‘문새’라는 성이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이름이 기니 생기는 문제점은 단연 온라인상에서 홈페이지 회원 가입할 때다. 시험 볼 때 이름을 쓰는 것도 문씨에게는 걸림돌이었다.

“요즘에는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인터넷에서 회원가입 할 때 세 글자 까지만 입력 가능한 곳이 많았어요. 본인인증은 철저하게 해놓고, 이름을 다 적지 못해서 문전박대를 당한 경험도 있네요.”

국가시험도 문제다. 그럴 때 문씨는 ‘문새한’까지만 적었다. 결과지에 나온 그의 이름도 당연히 ‘문새한슬’이 아닌 ‘문새한’. 결국 조용히 결과지 뒤에 ‘슬’을 펜으로 덧붙여 혼자 이름을 완성했다.

 

문씨는 "요즘에는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인터넷에서 회원가입 할 때 세 글자 까지만 입력 가능한 곳이 많았다"며 "본인인증은 철저하게 해놓고, 이름을 다 적지 못해서 문전박대를 당한 경험도 있다"고 말했다. / 사진=문새한슬 씨 제공


어렸을 적 문씨에게 이름은 콤플렉스였다. 매번 출석 불릴 때마다 다른 학생들이 돌아보는 게 당연해서다. 그는 한때 개명을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름이 네 글자인 게 자랑스러웠어요. 세상에서 하나뿐인 이름이고, 남들과 다른 게 특별한 존재가 된 느낌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이름이 예쁘다고 칭찬도 많이 받고, 사람들 머릿속에서도 쉽게 잊히지 않아 오히려 좋습니다. 나중에 자녀를 낳으면 이름을 네 글자로 짓고 싶네요.”

과거 친구 덕분에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봤다던 문씨는 “어느 정도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름의 느낌이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형성할지 모른다는 게 이유다. 문씨는 “내 이름대로 새롭게, 크고, 슬기롭게 잘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고 덧붙였다.

“셀 수 없죠.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완전 유명인사였어요.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전부 다 알 정도였으니까요….”

세계일보와 만난 노푸른하늘(25)씨는 “이름이 긴데,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입을 뗐다. 그는 “한번은 병원에 전화예약을 하는데, 상대방이 다섯 번이나 ‘네?’하고 물었어요”라며 “이름이 너무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죠”라고 웃었다.

노씨도 시험 볼 때 늘 애를 먹었다.

“모의고사나 수능시험 때 이름을 다 쓸 수 없었어요. 몇 칸인 줄 아세요? 보통 네 칸이거든요. 제 이름은 다섯 자고요. 항상 성적표가 나오면 ‘우리 반에 새로운 전학생이 왔나?’하는 선생님의 농담을 들으며 지내왔어요. 지금이야 웃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도 나름 슬펐죠.”

자신의 이름에는 특별한 뜻이 없다고 노씨는 말한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노씨의 이름이 지어진 계기가 어떠한 찰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태명이 ‘노을’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께서 출생신고하러 동사무소 가는 길에 사건이 발생했죠.”

노씨에 따르면 그날 아버지는 동사무소 입구 앞에서 재채기를 했다. 노씨의 아버지는 재채기할 적마다 하늘을 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당시도 재채기 때문에 하늘을 봤다가 유난히 푸른 하늘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렇게 노씨의 이름은 ‘푸르고 맑게 자라라’는 뜻에서 ‘푸른하늘’이 되었다. 가족들이 당황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노씨의 아버지는 출생신고 하러 간 동사무소 입구 앞에서 재채기를 했다. 그의 아버지는 재채기할 적마다 하늘을 보는 습관이 있는데, 당시도 재채기 때문에 하늘을 봤다가 유난히 푸른하늘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렇게 노씨의 이름은 '푸른하늘'이 됐다. / 사진=노푸른하늘 씨 제공


‘개명 고민’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노씨는 “많았죠”라고 답했다. 그는 “할머니가 되어서 경로당에 갔을 때 ‘아이구, 노푸른하늘 할멈’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면 얼마나 웃기겠어요”라며 “평범한 이름이 갖고 싶어서 아버지께 짜증도 많이 내고, 어리광도 피웠죠”라고 웃었다.

하지만 노씨는 지금 자기 이름이 좋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예쁘고 좋아요”라고 그는 말했다.

“제 이름을 처음 듣는 분은 ‘높’씨가 있냐고 물어봐요”라던 노씨는 “사람에게 이름이란 ‘자신’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사실 한 번도 ‘사람에게 이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터라 어렵사리 꺼낸 의미기도 하다. 노씨는 “제 이름을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없잖아요”라며 “평생 나의 동반자라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살면서 이름 때문에 인터뷰하리라 생각도 못 했어요. 더욱 제 이름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 감사합니다. 나중에 이름이 긴 사람들끼리 만나서 친목도모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기회가 올까요?”

* 이름이 네 글자, 다섯 글자 혹은 그 이상인 분들에게는 어떤 또 다른 사연이 있나요? *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