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2차대전 핵심 역할” 국제 여론전… 對日 역사공정 나섰다 [세계는 지금] ‘항일전쟁 70주년’ 대규모 행사 입력 2015-07-12 16:15:05, 수정 2015-07-12 20:20:22 중국이 항일전쟁·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을 맞아 전쟁에서 공산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역사공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침략 과거사를 부인하는 일본을 겨냥해 국제여론전을 본격화하고 중국이 2차세계대전 동방 전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지난 8일 ‘항일전쟁·2차세계대전 공정’이라고 불릴 만한 역사 다시보기의 현장인 베이징시 외곽 펑타이(豊台)구에 위치한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기념관)을 찾았다. 이날 새롭게 문을 연 기념관은 오후 내내 밀려드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중·일전쟁을 촉발한 1937년 7월7일 ‘7·7사변’(노구교사건) 현장 기념 조형물 뒤편 기념관 정문 좌우로 커다란 글씨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銘記曆史,緬懷先烈,珍愛和平,開創未來(명기역사 면회선열 진애화평 개창미래).’ ‘역사를 잊지 말고, 선열을 기리며, 평화를 소중히 여기고, 미래를 창조하자’란 뜻을 모토로 하는 기념관 전시회는 항일전쟁 노병과 중·고생, 아빠와 엄마를 따라나온 고사리 손들 등 세대를 아우르는 역사 교감의 장이었다.
올해 70주년에 맞춰 전시회의 개념도 60주년 당시 ‘위대한 승리’에서 ‘위대한 승리, 역사 공헌’으로 확장됐다. 경제·외교적으로 강해진 공산당 통치 중국이 미국 등 서구 중심의 2차세계대전사 기술에 수정을 가하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일전쟁과 2차세계대전을 연결시키는 중국 공산당
중국의 항일전쟁 역사는 노구교(盧溝橋)사건으로 친숙한 ‘7·7사변’에서 출발하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기념관 앞에 1937년 7월7일 중·일전쟁 본격 발발지 조형물이 세워진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1931년 9월18일 일본의 만주침략전쟁인 만주사변으로 항일전쟁은 확장하고 있다.
기념관을 들어서자 눈길을 끈 ‘위대한 승리, 역사 공헌’이란 커다란 글귀는 5개월 단장 끝에 재개관한 기념관의 현재적 가치를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 중국 대륙을 통치하는 권력이 항일전쟁사를 새롭게 쓴다는 사실이다. 기념관 벽면으로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 팔로군(八路軍) 군가, 신사군(新四軍) 군가 등 대형 악보가 눈길을 끌었다. 중국 군가로 공식 지정된 팔로군 군가(팔로군행진곡)는 중국 혁명음악의 대부인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정율성(1914∼1976)이 작곡했다.
기념관 곳곳에는 당시 항일전쟁과 2차세계대전을 주도했던 국민당의 흔적도 엿보인다. 그러나 제때에 항전에 나서지 않은 위약한 국민당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뤘다.
전시관 내부의 도표 설명에도 ‘중국’과 ‘중국군민’의 희생을 소개했지만 시점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항일전쟁과 2차세계대전 시기를 1931∼1945년으로 확장한 기념관 자료에는 1941년 가을을 기준으로 중국의 2차세계대전 공헌을 강조했다.
중국이 새롭게 발굴해 전시한 문물과 자료는 대부분 공산당의 2차세계대전 승리 공헌에 관한 것들이다. 전시회는 8개 부분, 42개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분 ‘중국국부항전이 2차대전의 시작을 알리다’에서 제8부분 ‘역사를 기억하고 세계와 함께 평화를 지킨다’로 끝난다.
기념관 측은 “중국 공산당, 중국에서의 전쟁은 중화민족 항일·2차세계대전 역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가진다”면서 “지난 60주년에 비해 70주년 기념 전람의 문물 수량은 900여개에서 2834개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제5부분인 동방주전장은 60주년 당시 산재했던 것을 이번에는 단독 전시해 2차세계대전의 아시아 전장이었던 중국의 공헌을 조명했다.
이밖에 공산당이 창도해 국민당과 항일민족통일전선에 나섰고, 공산당 단독으로 중국 동북지역 항일전쟁을 수행한 사실도 부각시켰다. 특히 2차세계대전 중 작전시간을 알리는 부분에서는 미국이 3년9개월, 소련이 4년2개월, 영국이 6년, 중국이 14년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2차세계대전(1939∼1945)은 사실상 만주사변이 발발한 1931년부터 시작됐다는게 중국의 주장이다.
기념관 러춘캉(羅存康) 부관장은 “2005년 60주년 당시 전시회 명칭이 ‘위대한 승리’에서 이번에 ‘역사공헌’을 더했다”면서 “주목적은 항일전쟁이 중국인민이 근대 이래 일군 첫 위대한 승리이며 이 전쟁이 2차세계대전에 거대한 역사적 공헌을 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2차세계대전 수행의 핵심은 공산당이 아닌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었다.
 | 지난 8일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을 찾은 중고생들이 항일전쟁 장면을 재현한 입체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베이징=신동주 특파원 | ◆동방주전장 공산당 주도에 대만 반발, 중국 역할은 ‘세계로 세계로’ 확산
기념관 곳곳에는 홍콩, 마카오, 대만의 항일투쟁, 해외동포의 항일지원도 있다. 특히 삼민주의를 주창한 쑨원(孫文)의 부인이자 장제스와 결별한 쑹칭링(宋慶齡)이 홍콩에서 항일단체를 창립했다는 내용도 부각시켰다. 기념관 한 켠 설명에는 “중국은 조선, 베트남 등 인접국의 항일투쟁기지로 중대한 작용을 했다”고 돼 있었다. 이 부분에서는 남북한이 동시에 등장한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중국 내 이동상황뿐만 아니라 윤봉길 의사 사진, 중국 공산당 영도 아래 항일투쟁에 나선 동북항일연군 부대원에 대한 설명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2차세계대전 공헌부분에서는 장제스의 중국 전장의 대일 견제역할 발언 옆으로 마오쩌둥(毛澤東) 어록이 두드러졌다. “위대한 중국 항전은 중국의 일일 뿐만 아니라 동방의 일이고 또한 세계의 일이다. 우리의 적은 세계적인 적이며 중국의 항전은 세계적인 항전이다.”
대만은 이 같은 역사해석에 발끈했다. 오는 9월3일 항일전쟁·2차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앞서 지난 4일 군 열병식을 한 대만은 공산당과 분명한 선을 그었다.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열병식 후 연설에서 “항일전쟁은 중화민국(대만)과 장제스 주석이 주도했다”면서 “누구도 이런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중국은 미국, 영국, 소련과 함께 연합군 일원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엄연한 2차세계대전 승전국이다. 1945년 9월9일 난징(南京)에서 일본으로부터 공식 항복문서를 접수한 쪽은 공산당이 아닌 국민당이었다.
하지만 국제여론전은 군사력과 경제력이 강해진 중국 주도의 대일 여론전으로 흐르고 2차세계대전 중국 역할도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 침략사 왜곡 문제를 놓고 대일 역사전쟁에 매진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0일 러시아 우파에서 열린 제15차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성과를 얻었다.
시 주석은 “누구를 막론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평화를 짓밟는 행위를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면서 “SCO 회원국들은 모두 2차세계대전의 시련을 겪고 전쟁 승리를 위해 위대한 희생을 치렀다”며 역사 공조를 촉구했다. 이에 SCO 회원국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2차세계대전 성과를 왜곡하는 데 단호하게 반대하고 전 인류의 비극적인 교훈을 망각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상들은 이어 “중국 인민이 일본 군국주의 전쟁에 항거해 영웅적으로 투쟁했고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를 위해 크게 희생했다”는 내용도 성명에 담았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SCO 성명은 중국의 2차세계대전 역사 재조명 활동의 일환으로 의미가 작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8∼9월 전 세계 150여개국과 유엔본부 등에서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항일전쟁과 2차세계대전 승리, 유엔 창설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대일 과거사 공세의 무대가 전 세계로 확대된다는 뜻이다.
기념관 내 ‘중국이 유엔 창건에 참여했다’는 전시 자료란에는 1944년 미국, 영국, 소련, 중화민국이 유엔 출범을 위한 논의를 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워싱턴에서 열린 덤바턴오크스 회의 사진 일부는 다른 사진 한장으로 가려졌다. 다름 아닌 중국 공산당 대표인 둥비우(董必武)가 샌프란시스코 유엔 창설 회의 참석차 출국하기에 앞서 배웅나온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 등과 함께한 사진이다. 대만으로 정통성을 옮긴 중화민국이 유엔 창설 논의를 한 사실을 덮은 것이다.
베이징=신동주 특파원 ranger@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