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살처분 입력 2014-02-09 17:45:27, 수정 2014-02-09 22:38:12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은 인간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봉기를 일으켜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들이 지켜야 하는 일곱 가지 규칙을 만든다. 동물농장 7계명이다. 1.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누구든지 적이다. 2. 네 다리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 우리의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권력에 눈이 먼 동물 때문에 동물농장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7계명은 유명무실해진다.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동물이다.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에는 여덟 종류의 동물이 등장한다. 반포(反哺)의 효의 까마귀는 인간의 불효를 비판하고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여우는 외세에 의존하려는 정치 의식을 비판한다. 정와어해(井蝸語海)의 개구리는 바깥 세상의 정세에 어두운 사람들을, 구밀복검(口蜜腹劍)의 벌은 서로 미워하며 속이는 인간을 꼬집는다. 무장공자(無腸公子)의 게는 창자가 없음을 흉보던 인간이 그 잘난 창자마저 썩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영영지극(營營之極)의 파리는 인간의 골육상쟁을,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의 호랑이는 포악한 정치와 폭력을, 쌍거쌍래(雙去雙來)의 원앙은 인간의 음란함을 꾸짖는다.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이다.
역사학자인 리처드 블리엣은 인간과 동물의 불편한 관계를 인간의 ‘사육과 육식’에서 찾는다. 동물을 숭배하고 상상 속에서 동물과 함께 했던 전기 사육시대, 인간 이해관계에 따라 동물을 이용하는 사육시대, 동물이 제공하는 제품을 풍부하게 소비하는 후기 사육시대로 구분한다. 사육시대에는 동물과 접촉하면서 죽음을 직접 볼 수 있었지만 후기 사육시대에는 동물과 분리되면서 동물의 죽음을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시각과 행동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지난 1월 17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뒤 오리와 닭 280만마리가 살처분됐다. 감염 여부에 관계없이 발생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500m∼3㎞ 이내 모든 닭과 오리를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하는 규정 탓이다. AI 발생 10년이 지나도록 무차별적인 대량 학살이 되풀이되고 있다. 생명 경시 풍조가 빚은 또 다른 비극이다. 축산농가와 동물보호단체가 동물 희생을 최소화할 대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AI 방역 시스템 개선과 사육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