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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연금술사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다

스크린 뒤에서 걸어나온 폴리아티스트 문재홍씨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이병헌씨가 매화틀에 큰일을 해결할 때 실제로 일을 볼 수는 없잖아요. 참다참다 팍 터져 나오는 느낌을 소리로 표현해야죠.” 문재홍 몽&워크스 실장은 폴리(Foley) 아티스트다. 영화에서 필요한 소리를 몸이나 도구로 만들어내는 직업이다.

‘광해’에서 ‘큰일 보는 소리’를 만든 과정을 알면 그의 일이 쉽게 이해된다. “케찹보다 점성이 좀더 좋은 마요네즈에 약간의 휴지를 넣은 다음 쥐어짰어요. 구멍을 막고 있다가 한꺼번에 나오게 해야 해요. ‘푸드득 퍽 뿌직’ 하는 소리가 다양하게 나죠.

흐물하게 떨어지거나 바닥에 닿는 소리는 또 따로 녹음하고요. 매화틀에 앉아 있어서 소리가 막힌 듯한 느낌도 따로 작업해요.”

올겨울 개봉할 ‘타워’에서 고장난 헬기가 건물에 부딪칠 때는 폐차장에서 산 자동차 문짝과 보닛을 썼다. 문짝과 보닛을 송곳으로 긁는다. 여기에 보닛을 세로로 억지로 벌릴 때 나는 ‘끄그그극’ 소리를 합친다. 철판 위에서 의자를 흔드는 소음도 더한다. 이렇게 여러 소리가 모여 사고 현장의 생생함이 전달된다.

소리로 관객과 만나온 문재홍 실장이 2일 오후 6시 스크린 뒤에서 걸어나온다. 문 실장은 제10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마스터 클래스에서 폴리 아티스트의 작업을 소개한다. 소리에 신경을 썼을 때 영화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여고괴담’을 실례로 보여준다. 편집된 영상에 청중이 직접 소리를 만들어넣는 기회도 제공한다. 

10년 경력의 그는 지금까지 200편 이상의 영화에 참여했다. ‘실미도’ ‘사마리아’ ‘국가대표’ ‘황해’ ‘도둑들’ ‘베를린’ 등이 그의 손길을 거쳤거나 거칠 예정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프리랜서 폴리 아티스트는 그를 포함해 3명. 이외 녹음실에 소속된 이들이 2명 있다.

폴리 아티스트는 대사·음악·일반적인 효과음·배경음을 제외한 소리들을 직접 만든다. 일종의 소리 연금술사다. 자동차 출발음이 배경에 깔리면 폴리 아티스트는 흙이 튀거나 헛바퀴가 도는 특수한 상황을 소리로 표현한다. 이들은 소리를 통해 스크린에 감정을 입힌다.

“숲에서 주인공이 떨고 있다면 옷이 ‘사사사삭’ 하는 소리를 넣어요. 일상에서 이 떨림은 주인공만 느낄 수 있는데, ‘사사사삭’ 덕분에 관객도 같이 떠는 듯 몰입하게 되죠. 담뱃재가 쭉 타들어가는 소리를 넣으면 관객이 흡연자와 가까이 있는 듯 확 빠져들어요. 우리는 인물이 걸어갈 때 단순히 ‘발소리가 없어서 비어보이니 집어넣어’ 이러는 사람이 아니라, 저 배우가 왜 저기로 걷는지, 기쁜지 슬픈지를 소리로 표현하려 노력해요.”

문재홍 실장은 “어떤 감정으로 소리를 냈는데 극장에서 사람들이 이를 동일하게 느끼고 공감대가 형성되면 ‘내 소리가 제대로 전달됐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굉장히 좋아진다”며 “영화에 깊이 못 빠지고 ‘저 소리는 어떻게 냈지’ 하는 일이 많아 일부러 영화를 즐기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강연에 앞서 직접 찾아간 그의 작업실 한쪽은 오래 버려진 시골 창고 같았다. 쓰레기봉투에서 건진 듯한 신발, 소방관 부츠, 갓, 스키 등 갖가지 물건들이 쌓여 있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곳에서 세상의 수많은 소리들이 창조된다. 발소리를 내는 데만 해도 보도블록을 비롯해 흙발판·모래발판·자갈·덜 울리거나 많이 울리거나 찌그덕거리는 나무 발판·쇠계단·대리석 등이 구비돼 있다. 주변의 물건을 한 번씩 톡톡 두드리거나 발로 차는 건 그의 직업이 준 습관이다. 예전에는 하이힐 소리를 연구하려 여성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저런 쇳덩이에선 이 소리가 나는구나, 둥글게 쌓인 낙엽을 차면 이렇구나’ 하고 머릿속에 도서관처럼 소리들이 쌓여요. 당장은 의미 없지만, 나중에 작업하면서 특정 소리가 필요할 때 이 소리들이 기억나요.”

폴리 아티스트는 몸이나 도구로 소리를 내다보니 부상 위험이 따른다. 문 실장은 ‘도둑들’ 작업 중 손가락 끝 뼈가 부러졌다. 마카오 박이 부산에서 외벽 액션을 펼치는 장면에서였다. 프리랜서라 보수를 제때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도 고충이다.

“저처럼 프리랜서이거나 폴리실을 갖고 작업하면 미수금이 생겨요. (폴리 아티스트가 계약하는) 녹음실들이 되게 작아서 선후배 관계가 많아요. 인맥으로 얽혀 있어 보수를 달라는 말을 잘 못해요. 미수금이 안 쌓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사운드 쪽 일은 대부분 밤을 새우고 돈도 많이 못 받고 계속 배워야 하니 떠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도 이 일을 한다는 건 그냥 좋아서, 먹고살 정도만 되면 계속하겠다는 분들이죠.”

올여름 사운드 엔지니어들과 녹음실 대표들이 모여 한국음향인협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작업 단가가 현재 마이너스 수준이라는 데 공감하고 계약금 현실화를 고민할 방침이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