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家 사람들] “연극쟁이들이 연극보다 더 좋은 일을 찾은건데, 두말없이 콜했죠” ‘마음의 주머니’ 열기 위해 의기투합한 이양구, 문삼화, 고은주씨 입력 2012-02-26 23:15:04, 수정 2012-02-28 10:06:17
“‘카치리’란 단어를 검색했을 때 ‘게임’ 말고 다른 검색어가 나오게 만들어보고 싶었어요”(고은주) “모든 건 ‘양구 바이러스’에서 시작됐어요. 연극쟁이가 직접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취지가 마음에 들었죠. ”(문삼화) 혜화동의 인간적인 예술인 고은주· 이양구· 문삼화가 뭉쳤다. ‘카치리-혜화동 다리 프로젝트1’을 성사시키기 위함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2011년 카치리 마을을 방문한 이양구 연출가의 제안으로 총 4개 공연예술단체(A.P.Tory, 공상집단 뚱딴지, 극단 해인, 헬로 아프리카)가 의기투합하여 우간다 카치리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하기 위한 기금마련 축제를 벌인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터져나오는 발언들이 의미심장했다. 이번 축제를 기획한 이양구 연출가는 ‘(첫 기획을 본인이 시작했음에도)제가 중심이 되는 인터뷰는 싫어요’ 라고 하지 않나. 이양구 연출가의 선한 마음을 항상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문삼화 연출가는 ‘저는 한 게 없어서, 사진 안 찍고 싶은데요. 인터뷰 하러 온 게 아니라 기자님 보러 온 건데…’라는 선방을 날렸다. 이번 프로젝트 기획과 홍보를 맡은 솔직한 고은주씨는 ‘이 연출님이 홍보(걱정)나 제작비 충당 건 관련해서 다 괜찮다고 해서 한 거에요’라는 말을 하며 특별히 본인들이 착한 사람은 아니라는 뉘앙스의 멘트를 던졌다. 혜화동 1번지 극장 근처 칼국수 집에서 만나 들어본 그들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 도와 줄 명확한 대상이 있는 재미있는 일 ‘카치리’는 국민의 80%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우간다의 작고 외진 시골마을이다. 2009년, 이 마을 청년 존 보스코가 한국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3개월간 연수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 마을 공터에 작은 초등학교를 세웠다. 이번 프로젝트를 공동기획한 고은주씨는 ‘존 보스코 스토리가 감동적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와서 (새마을 운동의)‘으샤 으샤’ 정신에 감명 받아 고국으로 돌아가 학교를 세운 스토리가 흥미있게 다가왔어요. 이 연출님의 기획의도를 듣고 ‘그럼 해보자’ 하고 마음 먹은 건 뭐든지 괜찮다고 하시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첫 번째 이유였어요. 두 번째는 ‘카치리’란 단어를 검색어에 넣고 쳤을 때 게임 관련 기사만 쭉 뜨는데, 그거 말고 다른 것도 한번 (연관 검색어에) 올려보자 하는 마음도 컸어요. 마지막으론 무조건 책만 사야한다는 조건부 기부인데다 도와줄 명확한 대상이 있는 게 제 마음을 끌었어요.” 2월 14일부터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는 에이피토리(A.P.Tory)의 연극 ‘커피와 로맹가리’(성종완 작, 박소영 연출)로 막을 열었다. ‘비잔틴 레스토랑’ ‘헬로 아프리카’를 포함해 총 3작품이 연달아 올라갈 예정이다. 첫 번째 공연을 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혜화동 1번지 극장 45석이 거의 꽉꽉 들어찼어요. 티켓과 함께 ‘자율후불봉투’를 나눠드렸는데, 대부분 1만원 이상씩 넣어주셨죠. ‘커피와 로맹가리’는 관객 4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에 마련 된 의자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커튼콜도 같이 했거든요. 관객들의 반응도 괜찮았어요. 프로젝트 의미에 동감하시는 분이 하나 둘 늘어나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긴 기분이에요.”
# 빵빵한 제 마음을 보여 줄 모처럼의 기회 현재 혜화동 1번지에서는 ‘카치리-혜화동 다리 프로젝트1’의 두 번째 작품인 연극 ‘비잔틴 레스토랑’(이양구 작, 문삼화 연출 2.22-3.4)이 공연되고 있다. 문삼화 연출가에게 프로젝트 참가 계기를 물어보니 너무도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양구(님)이 하자고 해서요” 사실, 예전부터 문삼화 연출가는 ‘스님’ 같이 뭔가를 초탈한 듯한 이양구 작가 겸 연출가의 작품 세계 및 인간성을 좋아했다. 그 부분은 기자와도 통하는 지점이었다. “연극 ‘다음 역’ 이후로 작품을 같이 해볼 기회가 없었어요. 늘 작품 같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취지까지 좋다고 하니 두말할 필요 없이 한다고 했어요. 사실, 연극쟁이들은 직접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모든 건 ‘양구 바이러스’에서 시작된 거에요.” 가만히 듣고 있던 이 연출가가 문 연출이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게 돼서 너무도 감사하고 있음을 밝혔다. 참고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공연예술인들은 본인의 인건비와 공연 수익금을 모두 카치리 마을 아이들을 위하여 제공할 예정이다. “이런 프로젝트는 막 시작하는 젊은 연극인들에게는 좀 더 쉬울 수 있어요. 작품하나 올린다는 개념으로 접근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 연출같이 40대 중견 연출가가 하기는 쉽지 않아요. 이번에 무 페이로 참여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오히려 본인의 돈을 많이 쓰고 있는 현실이거든요. 연극 연습하다보면 연출이 밥을 많이 사게 되는데, 이렇게 알게 모르게 쓰는 돈이 많았을 거에요. 생활의 문제가 있어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흔쾌히 동참해주셔서 감사하죠. ” 우리의 씩씩한 문 연출가는 이렇게 화답하셨다. “(프로젝트 참여) 저에겐 너무 쉬웠어요”(웃음) # 기획자의 마음에 한 발짝 다가가게 된 계기 이양구 연출가는 “이번 프로젝트로 인해 기획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예전엔 공동 프로젝트 작업을 해도 (작가 겸 연출가로 참여하는)제 작품만 눈에 들어오고 그랬다면, 이번엔 전체 작품에 애정이 생겨요. 이번 프로젝트1을 계기로 함께 할 사람의 폭이 많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프로젝트 세 번째로 올라갈 작품은 성종완 연출가가 소개시켜 준 팀의 아카펠라 공연이에요. 팀명과 공연 명이 같은 ‘헬로, 아프리카!’(3.5-3.11)라는 팀인데, 이들은 이미 2010년부터 아프리카 나이베리아에 걸상 지원금을 보내고 있었더군요. 그 곳은 책상과 걸상이 없어서 아예 걸상을 들고 등하교 하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거든요. ‘헬로, 아프리카’팀을 만나보니 뜨거운 피를 가진 청년이었어요. 이번 수익금 중 반은 걸상지원금으로 보낼 생각이에요. ” 공동기획자 이양구· 고은주씨는 이번 프로젝트 공연을 직접 보러 오지 못하시는 분은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서 개설한 네이버 ‘해피빈’ 모금함에 작은 정성을 전하면 된다고 했다. “많은 돈을 후원해주시겠다는 분도 계시지만, 저희가 원하는 건 돈의 수치가 아니에요. 몇 백만원을 거침없이 내는 소수의 마음보다는 여러 사람 마음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더 의미 있는 게 바로 그런 이유에요. 네이버 ‘해피빈’ 사이트에 들어가 ‘카치리’를 치면 ‘우 간다 카치리 학교 도서 기금 모금 행사’ 모금함이 떠요. 그 곳에 마음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힘이 나요. 이렇게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있는 줄 몰랐는데, 지인이 알려줘서 알게 된 거에요. 기획자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
# ‘연극’을 통해서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매력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의기투합한 30대 연출가 이양구씨와 40대 연출가 문삼화씨 의견이 항상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관객층에 대한 공략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문 연출은 “프로젝트 1에서 이미 아는 손님들을 다 데려올 거다. 뻔히 다 아는 관객들인데, (프로젝트 2에)또 오라고 하기가 그럴 것(머뭇 거려질 것) 같다. 이젠 공연 보러 오라고 문자 보내는 것도 힘들어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관객층을 모르는 사람 쪽으로 확장시켜 나가야 할텐데. 그것도 문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에요.”라고 말했다. 반면, 이 연출은 “연극을 통해서 누군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 접근하고 있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 개인 공연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런 공연이라면 의미가 달라질 것 같거든요. 제 주변 사람들만 해도 반응이 달랐어요. 평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제 공연 보러 오지 않는 지인들도 공연의 취지에 공감해서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많았다는 게 그 이유죠. 본인이 누군가를 위해 돈을 낸다는 개념이 아니라 공연도 보고 기부도 하는 일석이조의 개념으로 받아들여 좋은 일 하고 왔다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어요. 저 역시 봉사 차 우간다에 갔다가 많은 걸 배우고 온 것처럼 말이죠. 우리가 흔히 말하잖아요. ‘봉사’ 하러 갔다가 오히려 도움을 받고 온다고. 결국 그렇게 접근하면 될 것 같아요.” 고은주· 이양구· 문삼화 세 사람은 ‘카치리-혜화동 다리 프로젝트’가 일회성 프로젝으로 끝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우선, 돈을 중심으로 하지 않았으면 해요. 카치리 마을에 얼마를 전달했는지가 주요 관심사가 아니라, 이 프로젝트가 앞으로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과 가치가 더 중요하거든요. 도움을 주는 손길이 모였다는 게 가치 있는거죠. 그 다음엔 그걸 어떻게 확장시키는지가 제일 중요한 관건인 것 같아요. 그 힘으로 프로젝트 2.3.4가 계속 이어지게 하고 싶어요. 또한 공연 내용과 프로젝트의 연관성도 보여주고 싶구요. 거창하게 뭘 하겠다는 건 아직 없어요. 기획자로서 보다 의미있고 장기적인 컨셉을 제시해야 하겠죠. ” 인터뷰가 끝난 후 연극 ‘비잔틴 레스토랑’ 리허설을 관람했다. 한 때는 가까웠던 사이지만 부모끼리의 부채관계로 지금은 우연히 마주친다 해도 결코 반갑지 않은 사이가 돼 버린 두 여자의 화해를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었다. 장희가 이웃집 동생인 미숙이를 친동생처럼 여겨 두발 벗고 도움을 준 것처럼,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머나먼 나라(우간다 카치리)의 아이로 치부할 수도 있는 그들을 위해 마음의 주머니를 열어놓는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마음의 주머니를 활짝 열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연극이자, 프로젝트였다.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