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

일상의 죽음… 삶을 다시보게 하다

‘죽음의 항해’ 퍼포먼스 작가 이수영

소와 돼지들이 구제역으로 살처분돼 매몰되는 광경은 작가에게 충격이었다. 이제 그는 채식주의자가 됐다. 죽음의 문제도 다시금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이런 ‘몸의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이수영(44) 작가가 지난 21, 22일 양일간 벽제 화장장 일대에서 ‘죽음의 항해’라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작가가 입주해 작업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고양창작스튜디오와는 지근거리다. 이메일로 모집한 40여명의 ‘죽음의 항해자’들이 퍼포먼스에 동참했다.

“죽음을 통해 뭇 생명은 연결돼 있습니다. 식탁은 먹이사슬 구조 속에서 생과 사가 만나는 공간입니다. 뭇 생명과 연대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죠.” 그는 생명의 연대의식을 예술로 말하고 싶어 한다.

“지구(자연)는 여러 종이 나눠 쓰는 공간입니다. 구제역은 더 많은 고기덩어리를 향한 인간 탐욕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몸경험’을 작품으로 일궈내고 있는 이수영 작가(작은 사진). 그가 개울가에서 유서를 태워 물에 뿌리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그는 명리학을 배워 시장통에서 사주쟁이 노릇까지 했다.
작가는 ‘죽음 하나하나가 생의 징검다리’라고 읊었던 한 시인의 시를 떠올려 본다. 김중식의 시 ‘황금빛 모서리’다. “죽음 하나하나가 베이스캠프다/ … / 모래 위의 낙타뼈와/ 그보다 몇 걸음 앞에 놓인 사람뼈를 보고/ 길잡이를 삼는다/ 그러므로 뼈는 별/ 죽음 하나하나가 生의 징검다리다.”

그는 자살이 만연한 사회에서 죽음을 다시금 생각해 봤다. 한국에서 자살은 지난해 기준 청소년 사망원인 1위, 여성 사망원인 3위, 남성 사망원인 4위다.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350만여 마리의 가축이 구제역으로 살처분 됐다. 소와 돼지를 잃은 농가는 모두 6241가구에 달한다. 살처분에 직접 관계한 공무원과 수의사 등을 셈하면 엄청난 사람들이 거대한 죽음의 쓰나미에 직접 휩쓸렸다.

“쓰나미로부터 먼 곳에 있는 듯했던 우리도 매일 업데이트되는 흉흉한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연사든 자살이든 살처분이든 죽음을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이유죠.”

북유럽 신화에는 이그드라실이라는 거대한 세계수(世界樹) 이야기가 나온다. 삼라만상 뭇 생명은 땅 밑으로 이 거대한 생명수의 뿌리와 연결돼 있다. 그의 작업도 세계수에 대한 얘기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죽는다. ‘선배 죽음들을 비추어 우리 생을 바라볼 수 있을까. 나의 죽음이 뒤에 남은 이들의 베이스캠프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죽음 하나하나를 징검다리로 우리 생을 싱싱하게 같이 건너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제 작업이라 할 수 있어요.”

이번 퍼포먼스는 그간 통과의례로만 다루어지던 죽음에 관한 의식들을 예술 차원에서 새롭게 접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죽음의 항해자들은 작가와 함께 화장장, 구제역 매몰지, 공동묘지 등을 돌면서 집단 입관, 유서쓰기 등의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죽음에 대한 금기나 두려움 없이 제대로 관조하고 사고할 때, 생의 가치는 더욱 크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이런 모든 내용은 e북으로 남겨질 예정이다.

작가는 몸경험을 중시한다. 얼마 전엔 사라져가는 가리봉동 쪽방촌에 주목했다.쪽방을 한 달간 빌려 체험을 사진 등으로 담았다. 쪽방촌엔 최근 들어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소개된 중국의 양꼬치구이가 인근 시장에서 인기다. 그는 아예 양꼬치의 원조인 신장 위구르 지역을 직접 찾았다. 이들의 유목생활을 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솥단지 등을 들고 마을을 돌았다. 이때의 스틸사진들은 영상작품이 됐다.

“페인팅이나 조각처럼 갤러리 미술이 답답해서 시작한 작업들이지요. 제 아이덴티티를 계속 바꿔 살고 싶어요. 시장통에서 사주쟁이 노릇을 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다 보면 뭔가가 나올 것 같아요.” .

사실 ‘죽음 항해’ 작업은 그의 아이덴티티 바꾸기 연구 작업 맥락에서 보면 ‘영매되기’이다.

“죽은 것들과 산 자들의 사이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이 제 미술작업인 셈이지요.”

그는 ‘죽음’ 작업의 연속으로 다음 달 몽골 남고비사막 레지던스에 참가한다. “저는 ‘음유 영매’가 되어 직접 만든 류트를 들고 고양시 구제역 매몰지 91곳을 돌며 죽은 것들의 이야기를 듣고, 몽골로 가서 그 이야기를 바람에게 들려 줄 작정입니다. 그곳 초원은 삶과 죽음이 싱싱하게 연대하며 산다 하지요. 그곳의 건강한 주검들의 이야기 또한 잘 듣고 와서 한국에 부는 바람에게도 전해 줄 셈입니다. 현대미술 장르로는 퍼포먼스지요. 사진과 동영상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는 무당에게 신이 내리듯 작업신이 내리기를 바란다.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