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 13개월 장애인에게 꿈을 캘리그라퍼 강병인씨 입력 2011-05-23 15:41:07, 수정 2011-05-23 15:48:18
 | 지난해 크리스마스 즈음 서울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장애인을 위한 캘리그라피 디자인 학교의 수업 중 캘리그래퍼인 강병인 씨(앞줄 왼쪽 두번째)와 제자들이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쓰인 캘리그라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봉사 중증 지체장애인 5명 제자로 키워왼쪽 발가락으로 붓을 쥐고 교실 바닥에 펴놓은 한지 위에 또박또박 ‘푸른자전거’를 쓰고 있는 뇌병변 1급 오성학(25) 씨. 그를 바라보던 캘리그라퍼 강병인(49) 씨가 말한다. “자전거가 굴러가는 느낌을 살려봐. ‘전’의 ‘ㄴ’을 둥글게 굴리니 바퀴 느낌이 나지? ‘ㅓ’를 더 길게 빼면 자전거 모양의 일부를 글씨에 담을 수 있고” 강씨가 직접 자전거 느낌이 물씬 나는 손 글씨를 선보이자 오씨의 입에서 환한 미소와 함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서울 마포구가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지난해 3월부터 약 13개월 간 장애인을 위해 마련한 캘리그라피(Calligraphy, 디자인과 전통서예를 바탕으로 새로운 글꼴을 만드는 미술장르) 디자인 학교의 수업 풍경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캘리그래퍼인 강씨는 개인의 재능을 사회에 기부해 6명의 장애인들을 제자로 키웠다.
강씨의 제자는 역도선수이자 장애1급인 서경원 씨, 뇌병변 1급으로 구족글씨를 쓰는 오성학 씨, 지적장애 2급인 강양욱 씨, 뇌병변2급 정해룡 씨, 지체3급 김부기 씨, 뇌병변2급 박동순 씨다.
홍대 앞에 연고를 둔 강씨는 2008년 마포구에 자원봉사의 뜻을 밝혔고, 지난해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매주 목요일 3시간씩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마포캘리그라피학교를 운영하면서 6명의 장애인들에게 캘리그라피 이론과 실제, 포토샵 등을 무료로 가르쳤다.
강씨가 수강생으로 둔 이들은 미술과 서예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20~30대 장애인들로 특히 생활이 어려운 이들을 우선 선발했다. 강씨는 “제자들에게 단점은 곧 장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며 “장애를 극복하는 것보다는 즐기면서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또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한 학생도 있었다”며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열심히 따라와 준 수강생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손글씨 솜씨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 ‘희망’이 19일부터 오는 25일까지 마포구청 로비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장애2급 강양욱(39) 씨는 “아직 실력이 부족해 부끄럽다”며 “처음엔 글씨 쓸 때 구도가 맞지 않아 종이를 접어서 접은 선에 맞춰 썼지만 지금은 종이를 접지 않아도 된다”며 “예전엔 선생님한테 꾸중 듣는 횟수가 많았다면 지금은 칭찬도 종종 듣는다”고 말했다.
강씨와 마포구는 올 한해도 이들을 대상으로 캘리그라피 이론·실기교육을 계속하고 내년쯤에는 관내 디자인 기업과 연계해 캘리그라피 사회적기업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강씨는 “어떻게 보면 이분들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며 “혼자서 써낼 수 있는 능력 기반이 다져지지 않으면 한순간에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만큼 끝까지 애정을 가지고 돕겠다”고 말했다.
로컬마포 = 김장수 기자 oknajang@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