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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 이어 핵재앙이라니… 더는 못 버텨" 필사의 탈출

후쿠시마 탈출 끝없는 행렬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폭발과 화재가 계속 되면서 이 지역의 주민들이 방사능 노출 위험을 피해 대탈출에 나서고 있다. 후쿠시마의 수돗물에서는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검출됐다.

16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후쿠시마현에서 외부로 연결된 도로마다 피난민을 태운 자동차가 수㎞씩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공항과 버스터미널에도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후쿠시마발 ‘엑소더스’에 원전에서 240㎞ 떨어진 도쿄 시민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후쿠시마현에서 남쪽 이바라키(茨城)현으로 향하는 국도 6호에는 이른 아침부터 자동차가 몰려들어 정체를 빚었다. 이바라키현 진입로에서는 방호복을 입은 방사선 기사와 경찰관, 현청 직원 등이 차량을 붙잡고 한사람씩 방사능 오염 정도를 체크했다. 이 때문에 평소 3~4시간이며 주파할 수 있었던 거리를 가는 데 10시간 이상 걸렸다.

피난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와키시에 산다는 한 주부(58)는 “이바라키현 미토(水戶)시로 가는 중”이라면서 “친척 11명이서 4대로 나눠타고 탈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바(千葉)현의 친척 집으로 가는 중이라는 한 자영업자(56)는 “아침 9시에 일가 10명이서 집을 나섰다”고 말했다.

도쿄 방향인 남쪽 국도가 정체되자 일부 주민들은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때문에 후쿠시마현 북쪽의 야마가타(山形)현으로 향하는 국도도 혼잡이 빚어졌다. 국도변의 한 편의점 직원(50)은 “15일 점심시간을 지나면서 차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면서 “서쪽 니가타로 탈출하는 방법이나 안전한 피난처를 알려달라는 손님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피난민들의 차량은 침구와 옷가지, 세면도구 등 다급하게 챙긴 생활필수품으로 가득했다. 친척들이 2~3대의 차에 분승해 동반 탈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후쿠시마 공항에는 이른 아침부터 항공권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행렬이 100m까지 이어졌다.

가족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지 못하고 후쿠시마현 내 피난소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제1원전에서 65㎞ 떨어진 후쿠시마시 종합운동공원 체육관의 피난소에 몰려 있는 이재민 3000여명은 원전상황을 전하는 TV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임신 5개월의 아내와 함께 피난왔다는 미나미소마(南相馬)시의 회사원 와타나베 다쿠야(渡部拓也·22)는 “더 멀리 도망치고 싶지만 가솔린이 없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친척 등 13명과 함께 원전에서 서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다무라(田村)시 인근의 반다이아타미(磐梯熱海) 온천가로 피신한 한 남성도 “더 멀리 가고 싶어도 휘발유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쓰나미로 집을 잃었다는 회사원 아베 미쓰루(59)는 “쓰나미에서 겨우 건진 목숨을 원전 방사능 유출에 잃고 싶지 않다”면서 가족 5명과 함께 친가로 피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녀 3명과 함께 피난소 생활을 하고 있는 주부 사토 레이카(佐藤麗華·37)는 “방사능 유출 뉴스를 본 한국이나 호주의 형제로부터 탈출하라는 연락이 왔다”면서 “방사능이 앞으로도 계속 증가한다면 국외로라도 도망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일본 후쿠시마현 재해대책본부는 후쿠시마 시내 수돗물에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원자력센터의 현지 지소가 이날 오전 실시한 수돗물 간이검사 결과, 물 1㎏에서 요오드-131이 177베크렐, 세슘-137이 58베크렐 검출됐다. 일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정한 섭취기준은 물 1㎏당 요오드가 300베크렐, 세슘이 200베크렐이다. 수돗물에서 방사성 물질인 요오드와 세슘은 통상 검출되지 않는다. 후쿠시마현은 “전문가에게 정밀조사를 의뢰함과 동시에 정부와 협의해 현내 전 지역의 수돗물 분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동진 특파원 bluewin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