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

[글로벌 시민사회로 가는 길] 누리꾼들 인터넷 윤리 확립·끊임없는 자율정화 급선무

악플… 스토킹… 음란물 게시… 갈수록 수법 다양·지능화
피해자들 불안·스트레스 극심
타인 배려하는 이해심 아쉬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누구나 순식간에 치명적인 고통을 겪을 수 있다. 한번 벌어지면 원상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요즘 호환, 마마, 전쟁보다 더 무섭다는 사이버 폭력 얘기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 등 어느 나라보다 뛰어난 인터넷 인프라와 강력한 온라인 문화를 자랑한다. 문제는 ‘악플(악성댓글)’, ‘신상털기(신상정보 추적·공개하기)’ 등 인터넷의 역기능 역시 세계 최악 수준이라는 것. 연예인 등 유명 인사에 국한됐던 피해범위도 일반인으로 점차 확산돼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광범위해진 사이버 폭력

26세 김지현(가명)씨는 최근 모든 인터넷 동호회를 탈퇴하고 미니홈페이지까지 폐쇄했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김씨가 이용하는 게시판마다 악성 댓글을 남기며 괴롭혔기 때문. 김씨 홈페이지 방명록과 자주 이용하는 게시판 등에 김씨가 글을 올릴 때마다 ‘더러운 XX 같은 년, 내가 니 나체사진을 가지고 있는 거 알지’,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 ㅎㅎ’,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두고 보자’ 등의 댓글을 계속 남겼다. 이 때문에 김씨는 극심한 불안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시중은행 박모 과장 역시 최근 고통을 겪었다. 은행 홈페이지 게시판에 한 여성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사용하는 주부입니다. 얼마 전에 은행에 예금을 출금하고자 은행에 들렀다가 이름은 모르겠는데, 작은 키에 마르고 안경을 쓰고 있던 과장이 직원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습니다.…그렇게 해서 어디 직원들한테 상사 대접이나 받겠습니까? 이런 XX 같은 놈은 회사에서 매장돼야 하고, 삼청교육대에서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박 과장은 상부에 당시 상황을 설명해야 했고 주위의 수군거림에 한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듯 시달려야 했다.

이처럼 인터넷이 모든 일상의 중심이 된 요즘 세상에선 일반인도 사이버 폭력 피해자 목록에 오를 수 있다. 게다가 그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특정인에 대한 ‘허위’ 글이나 명예에 관한 ‘사실’을 인터넷에 게시해 대중에게 공개하는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적인 글이나 욕설을 댓글 등으로 다는 ‘사이버 모욕’ ▲특정인에게 원하지 않는 접근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거나 성적 괴롭힘을 행사하는 ‘사이버 스토킹’ ▲음란물을 퍼뜨리는 ‘사이버 음란물’ 등이 주요 사례로 꼽힐 수 있다.

무엇보다 사이버 폭력은 피해 확산이 빠르다. 익명성 때문에 가해자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원상 회복은커녕 피해자 가족이나 지인까지 괴롭힘을 당하는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악플비율 11.9%

대표적 사이버 폭력 유형이 된 악성 댓글, 즉 악플은 얼마나 될까. 인터넷진흥원이 2009년 한 해 동안 국내 주요 포털에 올라온 기사와 각종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분석한 결과 악플 비율은 11.9%로 나타났다. 정치분야 기사에 악플이 가장 많았으며 연예, 사회 분야 기사도 악플러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됐다. 악플 유형은 욕설이 전체 악성 댓글의 39.9%로 가장 많았으며 조롱이 28.1%, 비판이 26.9%를 차지했다.


◆사이버 폭력의 원인과 대책


전문가들은 사이버 폭력이 횡행하는 가장 큰 원인을 인터넷 윤리 의식의 부재에서 찾는다. 인터넷 문화 발전에 걸맞은 인터넷 윤리가 확립되지 않아 많은 이들이 큰 죄의식이나 문제 의식 없이 쉽게 사이버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 역시 이러한 윤리의식 부재에 한 역할을 한다. 또 서로 얼굴을 마주볼 일이 없다는 비대면성, 시·공간적 무제약성 등 인터넷만이 갖는 여러 특성이 역설적으로 각종 사이버 폭력의 주요 원인이다.

사이버 폭력이 끼치는 폐해는 커지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 마련은 쉽지 않다. 이미 인터넷 실명제와 이용등급제 등 인터넷 역기능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또 자율성이 중요한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일일이 감시하며 모두 법으로 다스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가장 큰 원인이 윤리의식의 부재인 만큼 올바른 인터넷 윤리에 대한 이용자들의 이해를 높이며 자율적인 정화 작용을 유도하는게 최선이라는 전문가들 의견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어떤 행위들이 다른 이용자에게 불편과 부담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과 인터넷 역기능에 대한 법적 처벌 규정에 대한 이해 증진을 통해 사이버 폭력을 자율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