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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판매 사활… 1호차 마케팅 승부 걸어라"

업체들 ‘고객 유혹 전략’ 후끈
신뢰감등 이미지 각인 배우 등 유명인 선정
소비자에 친숙함 전달 위해 일반인 기용도

#. 지난 9일 청와대. 국내 첫 양산형 고속전기차 ‘블루온(BlueOn)’이 공개됐고, 곧이어 시승행사도 열렸다. 시승차의 첫 주인공은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은 블루온을 타고 청와대 경내를 돌았고, 이 모습은 언론을 통해 국내외에 전파됐다. 전 세계 친환경차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대통령의 블루온 1호차 시승을 통해 국산 전기차의 뛰어난 기술력을 과시했다는 평가다.

#. 지난 8일 GM대우의 준대형 세단 ‘알페온’ 1호차 주인공으로 ‘2010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한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현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이 선정됐다. 바로 전날엔 차범근 전 수원 삼성 감독이 폴크스바겐의 대형세단인 ‘뉴 페이톤’ 홍보대사로 위촉되고 1호차 키를 건네받았다. 국민 스포츠인 축구의 스타 감독들을 1호차 주인공으로 선정해 대중의 인기와 신뢰를 동시에 거머쥐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자동차업계가 최근 신차 중의 신차로 불리는 ‘1호차’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1호차는 신차가 팔릴 때 고객에게 가장 먼저 인도되는 차를 일컫는다. 요즘 인기 있는 신차들은 대부분 계약이 밀려 있어 한두 달씩 기다리는 것은 기본인 만큼 1호차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1호차 주인공이 어느 정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느냐에 따라 신차의 성패가 갈린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1호차 마케팅 속에 숨은 1인치를 살펴봤다.

◇허정무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단 감독이 지난 8일 경기도 부평 본사 GM대우 홍보관에서 준대형 세단 ‘알페온’의 1호차 고객으로 선정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GM대우 제공
◆고객의 신뢰도를 높여라

고객 입장에서 차는 주택 다음으로 목돈이 들어가는 제품이다. 고객의 지갑을 열려면 신뢰가 필수다. 차급이 대형화할수록 더 그렇다.

GM대우가 준대형 세단 알페온 모델로 허 감독을 뽑은 이유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국민의 바람대로 16강의 염원을 이룬 허 감독의 이미지가 미국과 중국 등 해외 판매에서 큰 성공을 거둔 뒤 국내에 상륙한 알페온과 일맥상통한다.

독일차 폴크스바겐이 플래그십(기함) 모델인 신형 페이톤 1호 고객이자 홍보대사로 차 전 감독을 선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축구선수로 활동하던 당시, 역대 세계 최고의 리그로 명성을 떨쳤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공격수로 맹활약을 하며 독일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혔다.

지난해 3월 출시한 현대차 대형세단 에쿠스는 ‘CEO들의 영원한 스승’으로 불리는 곽수일 서울대 경영대 명예교수를 1호차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곽 명예교수는 서울대 경영대학장, 한국 경영정보학회 회장, 한국 경영과학회 회장을 지냈고, 26세에 국내 최연소 교수로 강단에 올라 40년 이상 제자들을 가르쳐 왔다. 그동안 1만여명의 제자들이 거쳐갔고, 이 중 1000여명이 CEO에 올랐다.

◇차범근 전 수원 삼성 축구팀 감독이 지난 7일 서울 광진구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고급 세단 ‘뉴 페이톤’의 신차발표회에서 1호차 주인공으로 선정된 소감을 말하고 있다.
폴크스바겐 제공
◆이미지를 각인시켜라


지난해 9월 출시한 현대차의 쏘나타 1호차 주인공은 영화배우 장동건이다. 1993년 데뷔 이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친구’, ‘태풍’ 등 다수의 영화작품에서 2529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대한민국 대표 영화배우다. 현대차는 그의 이미지가 1985년 1세대부터 6세대에 이르기까지 국내 최고 브랜드로 성장해 온 쏘나타와 맞다고 판단했다. ‘대표 세단=대표 배우’란 이미지를 고객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지난 7월 신형 아반떼의 1호 시승자로 피겨퀸 김연아를 선정하고, 일산 킨텍스에서 시승식을 했다. 현대차는 김연아가 세계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이자 젊은 세대들에게는 우상이며 패션 아이콘인 점을 감안, 20∼30대가 주고객인 준중형차 아반떼 1호 시승자로 뽑은 것이다.

기아차는 지난해 11월 출시한 K7의 1호차 주인공으로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를 선정했다. 기아차는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성악가 조씨가 국내 준대형차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갈 K7의 이미지가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국내 첫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지난해 7월 출시한 현대차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와 기아차 포르테 하이브리드 LPi의 1호차 주인공은 각각 이만의 환경부 장관과 조동성 서울대 교수였다.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가 지난 7월 현대차 신형 아반떼의 1호 시승자로 선정된 직후 아반떼와 함께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친숙함을 심어라


GM대우는 알페온 이전까지 1호차 마케팅에 일반인들을 주로 기용했다. 차량을 순차적으로 계약하는 고객 순으로 첫 고객에게 인도되는 차가 1호차가 된다는 나름의 원칙을 지켜왔다. 토스카 프리미엄6, 윈스톰 맥스, 베리타스, 라세티 프리미어,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등의 1호차의 경우 계약 순서에 따라 첫 고객에게 인도해 1호차 키를 건네받은 주인공은 모두 일반 고객이었다.

준중형과 중형차가 주력인 르노삼성 역시 일반인을 1호차 주인공으로 선정, 고객들에게 친숙함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최근 출시된 뉴SM5 택시의 1호차 주인공으로 18년 무사고 택시기사 김종호(42)씨를 선정했고, 앞서 작년 뉴SM3의 출고를 시작하면서 1호차 주인으로 대전지법 홍은기(여·26) 판사를 뽑은 바 있다.

쌍용차의 경우 지난해 ‘체어맨 W’을 내놓았을 때 1호차 주인공으로 IT업체 썬트로닉스의 박철순 사장(현 MBC애드컴 사장)을 선정했다. ‘회장님’ 차답게 견실한 중견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타깃으로 설정한 것이다. 앞서 쌍용차는 2005년 엔트리급 스포츠 유틸리티차량(SUV)인 액티언 1호차를 20대 여성 고객에게 전달했고, 또 다른 SUV인 카이런 1호차 주인공으로는 일반 화가를 선택했다.

◆1호차는 어떤 혜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1호차의 주인공들은 어떤 혜택을 받을까. 차 값은 공짜일까. 아니다. 무료로 증정됐을 것이란 일반적 예상과 달리 행사 참석과 사진 촬영 등에 대한 보답으로 약간의 할인을 해줬을 뿐 정상적으로 판매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단 하나의 예외는 2006년 기아차의 ‘뉴오피러스 1호차’의 주인공이 된 미국 프로풋볼(NFL)의 한국계 스타 하인스 워드다. 이때 기아차는 워드가 혼혈인을 돕는 장학재단을 설립할 때 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차량을 기증했다.

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