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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리뷰] 소리 죽이기

소리파동 간섭 이용 소음 줄여
잠수함·자동차 등 기술에 응용

최근 천안함 사건으로 주목받고 있는 북한 소형 잠수함을 살펴보면, 꼬리 부분에 커다란 프로펠러 외에 작은 것 하나가 더 장착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잠수함의 생명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적지에 침투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소형 잠수함은 두 개의 추진 프로펠러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각각의 프로펠러가 만든 와류를 서로 상쇄해 회전 소음이 감쇄되도록 설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소음 감쇄 원리는 군사기술 분야 여러 곳에 적용되고 있다.

최정훈 한양대 교수·화학


군용 헬리콥터를 볼 때 빠르게 회전하는 꼬리 회전날개가 높은 소음을 만들기 때문에 적진 침투시 적군에게 노출되기 쉽다. 그러므로 아파치 헬리콥터는 꼬리 회전의 두 날개 축을 다른 각도로 배치해 회전으로 생성된 소리 파동 위상이 서로 간섭현상을 일으켜 소음이 줄도록 설계돼 있다.

이처럼 소리 파동의 간섭 현상을 이용한 감쇄기술은 군사분야 외에도 생활 및 산업 현장 등 주변 곳곳에서 응용되고 있다. 예컨대 소음이 심한 공장에서는 작업자들에게 청각뿐만 아니라 집중력 장애를 일으켜 많은 산재를 유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공장 내부에 실시간으로 소음에 반대되는 위상의 음을 발생시켜 소음을 감소시킨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자동차 구매시 내부의 정숙성이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실내로 이입되는 소음의 대부분은 주로 엔진이나 타이어에서 발생한다. 자동차 제작회사에서는 소음을 실시간으로 측정한 후 반대되는 위상의 음을 발생시켜 소음을 파동 간섭에 의해 상쇄시키는 기술 개발과 적용에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일부 휴대전화, 헤드폰 등에도 이와 비슷한 감쇄 방법으로 주변 소음을 제거해 깨끗한 소리를 듣도록 하고 있다.

파동 간섭에 의한 현상은 선박 기술에도 응용되고 있다.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역위상의 진동으로 상쇄하거나 대형 선박 앞머리 부분의 둥근 돌기, 즉 구상선수에 의해 생긴 파도가 선박 선수에서 생긴 반대 위상의 파도와 서로 파동 상쇄가 일어나 선박이 전진할 때의 파도를 없애 저항이 감소되고 배의 속력이 증가돼 에너지 효율을 증가시킨다.

또한 빛에 의한 파동의 간섭 현상은 자연에서도 흔히 관찰된다. 보석의 일종인 오팔과 새 깃털 및 나비 날개의 아름다운 무늬, 그리고 문어 등의 생물체 위장기술도 그 예이다. 비눗방울이 알록달록하게 여러 가지 색깔로 변하는 것은 비누막의 두께가 계속 변함에 따라 특정 파장의 빛이 서로 상쇄 또는 보강 간섭이 일어나는 것에 기인한다. 최근 빛에 의한 파동의 간섭 원리를 응용해 카멜레온처럼 주변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색깔이 변하는 물질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 화학자들이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연구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빛에 의한 파동 기술이 실용화되면 군사적 위장기술이나 센서 및 영상 등의 분야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우리나라 1만원 지폐의 숫자를 보는 각도를 달리하면 여러 가지 다른 색깔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폐가 다른 색깔로 변하는 것은 위조 방지 인쇄를 위한 시변각 잉크 및 첨단 과학기술 중 하나인 홀로그램 기술에 의한 것으로 빛의 파동 간섭 현상의 좋은 사례이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파동에 의한 간섭현상은 물리 분야 외에 신소재, 분석기술, 조선, 기계, 전자공학, 건축, 토목, 의학 등 수많은 분야에서 핵심적인 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도 파동의 간섭 현상을 창의적으로 잘 응용하면 깜짝 놀랄 만한 첨단 과학기술이 탄생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정훈 한양대 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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