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3> 아날로그와 디지털 진정한 예술은 시간의 흐름과 이야기를 담아야 입력 2010-02-23 16:41:27, 수정 2010-02-23 23:28:35 # 모든 것은 손으로부터
도면은 약간 두꺼운 트레이싱지에 그리는데, 크기는 대개 A1 사이즈이고 조금 큰 건물은 A0 사이즈로 그리기도 했다. 제도판에 매달려 도면을 그리고 틀리면 지워서 다시 그리고 하면서 도면이 나달거릴 정도로 몇 달간 그려서 완성해 나갔다. 그렇게 그린 도면작업의 마지막 공정은 나달거리는 도면의 모퉁이를 테이프로 보강해서 청사진을 뜨는 일이었다. 파란 감광지에 찍혀 나오는 도면에는 뚜렷하게 찍혀져 있는 선들 아래로 지우개로 지웠던 자국들이 희미하게 배어나온다. 그 몇 달간의 고민의 흔적과 그 몇 달간의 실수들이 마치 희미한 흉터처럼 남겨진 채, 도면은 ‘설계의 총체적 산물’로서 의연하고도 장엄하게 현장으로 실려간다. 그런 것이 아날로그일 것이다. 요즘은 마지막 결과물만이 대형 출력기에서 자판기 커피처럼 쉽게 뽑혀 나온다. 고민과 실수의 흔적이란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가구나 마감재의 치수는 데이터베이스에서 골라 삽입하면 되고, 선을 잘못 그리면 되돌아가는 명령어를 입력하면 그만이다. 오랜 경험과 기억으로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달되던 정보와 자료들은 용량 두둑한 하드 디스크의 메모리에 쌓여 있다. 그 도면에는 익명성이 가득하다.
# 손으로 그린, 시간이 담긴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는 일, 혹은 사람의 손으로 돌을 쌓는 일 같은 그런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일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은 일의 숙련도를 차치하고 시간의 흐름, 혹은 마음이 쌓이는 것 모두가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과 노동이 얼마나 신성하며 경건한지를 알게 해준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 방학이면 공사 현장에서 일당 서 푼 받으며 철근을 나르는 일이나 ‘반네루(패널)’를 나르는 일을 했었다. 한 번은 응봉동 산비탈을 몽땅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는 현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속한 팀은 어마어마한 경사를 밀어내면서 생긴 무지막지한 축대 아래서 옹벽 거푸집을 짜는 일을 했었는데, 그 옹벽 거푸집을 짜는 목수는 사실 그다지 장인정신이랄지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낡아 너덜거리는 재활용 나무 거푸집 패널에 검은 기름을 바르고 날라서 옹벽의 틀을 잡아나가는 목수들은 정말 거칠었고 2시간마다 소주를 한 병씩 마셔대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아침은 나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아침 일찍 현장에 도착한 목수들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기 전 입고 온 깨끗한 옷차림으로 임시로 만든 나무 작업대에 앉아서 단정하게 자신들의 연장을 닦고 다듬었다. 그들의 모습은 무척 경건한 의식을 행하는 사제 같았고, 나는 옆에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며 지켜봤다. 의식이 끝나면 그들은 옹벽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그때 쌓아올린 토목 옹벽을 지금도 가끔 지나갈 때 경건하게 쳐다본다. 나는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손에는 시간이 들어가 있고, 마음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히 A4 용지 정도 크기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흔히 보았던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였는데 내용은 부모와 아들, 그렇게 세 식구가 모여서 자리를 짜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유난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돌아앉아서 일하는 아들의 등 부분에 뚜렷이 남아 있는 붓 자국이었다. 유려하게 칠해지지 않고 붓자국이 뚝 끊어졌다가 이어서 그어져 약간은 어설픈 붓질이었는데 교과서에 실린 해상도가 낮은 그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가의 자국이었다. 나는 그때 김홍도가 몇백 년 전 어느 시간에 붓을 들고 물감을 묻혀서 종이에 찍는 시간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마치 각자 점유하고 있는 역사적인 시간에 다른 공간이 부유하다가 우연히 겹쳐지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이후 그 느낌 때문에 이런저런 옛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들을 찾아다녔는데, 예술이 혹은 손으로 만든 것들이 전해주는 감동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 디지털의 옷, 아날로그의 몸 나에게 시공 중인 어떤 큰 건물의 사진이 한 장 있다. 그 사진 속의 장소인 LA에 있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유명한 원로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의 작품이다. 사진 속의 장면은 폭격으로 건물이 내려앉은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비정형적인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철골을 기워서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게리나 자하 하디드(Zaha Hadid,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건축가)의 건축은 농담이 진담으로 되듯이 그 상상력이 기술을 너무 앞지르고 있어서 그것을 쫓아가느라 시공하는 사람들이 발에서 쥐가 나고 있다. “이건 어때?” 하며 자꾸 던져주고 있는 그 공간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저 모두들 열광하며 열심히 컴퓨터로 건축을 그려내고 있다.
건축가 김수근은 벽돌을 많이 사용했다. 붉은 벽돌, 검은 벽돌, 파벽돌 등 다양한 벽돌을 통해 독특한 양감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그 방법은 무척 집요했다. 장충동에는 김수근의 말기 작품인 경동교회가 있다. 여럿이 모여서 가운데에 놓여 있는 무엇인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관념적으로 알고는 있는 유럽 중세의 어느 고성을 보는 것 같기도 한 이 건물은 거친 표면을 표현하기 위해 벽돌들을 일일이 반씩 쪼개서 붙였다고 한다.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고, 작위가 흘러넘치기는 하지만…. 빛이 부딪힐 때의 면이 좋다. 과정이 보이고, 벽돌이 하나하나 인식된다. 의도했건 안 했건 이 건물이 도드라지는 이유이다. 비정형 건축이 대세인 디지털 시대에 지붕은 경사지붕이 좋은 것이고 외벽은 시간이 지나도 낡아지지 않는 벽돌이 최고이고, 모형을 내 손으로 만들고 스케치를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아날로그적인가? ‘사실 지금 건축이 있어?’ 하는 이야기나 ‘디지털은 개뿔?’ 하는 이야기나 모두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랄지, 자신의 시간에 대한 집착이라든지 하는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하는 것은 건축이건 예술이건 노래건 춤이건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담기고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야 진정한 가치가 생긴다는 아주 원론적이고 고답적인 이야기이다. 과정과 이야기가 담기는 것이야말로 그것이 디지털이건 아날로그건 형식을 뛰어넘는 ‘아 프리오리(a priori:인식이나 개념이 후천적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그것에 논리적으로 앞선 것으로서 부여된 것)’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가온건축 공동대표, ‘서울풍경화첩’ 공동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