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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3> 아날로그와 디지털

진정한 예술은 시간의 흐름과 이야기를 담아야

# 모든 것은 손으로부터

우리가 흔히 쓰는 십진법은 사람의 손가락 수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에 비해 이진법은 0과 1, 두 개의 숫자만을 이용하는 수 체계인데, 컴퓨터에서는 논리의 조립이 간단하고 내부에 사용되는 소자의 특성상 편리하기 때문에 이것을 사용한다. 디지털 신호 또한 기본적으로 이진법 수들의 나열이다. 이처럼 현대문명을 이끄는 컴퓨터와 디지털의 출발점이 되는 이진법은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라이프니츠가 동양사상의 음(+), 양(-)의 원리에 영향을 받아 발명한 것이다. 결국 이진법은 대립하는 두 가지 양태, 즉 있음과 없음과 같이 상반된 상태를 나타내는 두 가지 기호로 이루어졌으므로, 이러한 원리에 근거해 십진법을 모르는(말하자면 손가락이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존재들에게도 유효할 것이라는 예상 하에 외계인에게 보내는 메시지(1974년 푸에르토리코에 위치한 아레시보 천문대에서 은하계의 구상성단 M13에 마이크로파로 발사한 아레시보 메시지)에도 이용되었다.

디지털(digital)이라는 용어도 알고 보면 수를 센다는 의미에서 손가락(라틴어 digit)에서 나온 말이다. 디지털은 단속적이고 정확하며, 이를테면 바늘로써 연속적으로 시간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시 ·분 ·초 등으로 구획하여 문자를 표시하는 전자시계처럼 데이터를 한 자리씩 끊어서 다루므로 애매모호한 점이 없고 정밀도를 높일 수 있다. 반면 아날로그는 연속적이고 모호하며 전압이나 전류처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물리량을 나타내는 일이다. 단속적이고 숫자를 세는 디지털과 반대의 성질을 갖고 있다. 대체로 디지털은 새롭고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아날로그는 모든 단어 앞에 ‘낡은’이라는 단어와 같이 붙어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연속적이고 경험이 포함되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것은 우리가 늘 도덕책에서 읽었던 바른 생활의 기본일 텐데, 어쩌다 저것이 낡음의 제일 앞자리에 앉게 되었을까? 픽사의 완벽한 디지털 애니메이션도 꽤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하야오의 셀 애니메이션이 훨씬 좋던데….

# 고민과 실수의 과정도 건축이다

◇루이스 칸이 설계한 솔크 연구소(The 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Research) 1965, 미국 라욜라(La Jolla)
20년이 조금 넘은 이야기이지만 내가 설계사무실에 처음 입사했을 때 제일 먼저 회사에서 나에게 준 것은 ‘홀더’라고 도면 그리는 연필과 얼마 전 퇴사한 사람이 몇 년 썼다는 약간 낡은 스테들러사에서 나온 대형 연필 심갈이였다. 그 시절은 도면을 그릴 때 컴퓨터가 갓 도입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어서 앞서가는 사무실은 이미 제도판을 치우고 컴퓨터를 들여놓기 시작했고, 조금 낡은 생각을 가진 사무실은 그래도 도면은 연필로 그려야지 하며 샤프펜슬로 도면을 그렸고, 아주 낡은 생각을 가진 사무실은 “요즘 애들 약아서 도면을 샤프로 그려…”하며 혀를 끌끌 차대면서 뭉툭한 홀더로 도면을 그리던 시절이었다. 나는 자청해서 제일 낡음으로 들어갔고 선 하나를 긋고 연필심을 다듬고, 선 하나 긋고 연필심을 다듬으며 연필가루 때문에 연탄장수처럼 코밑이 시커매지면서 도면을 그렸었다.

도면은 약간 두꺼운 트레이싱지에 그리는데, 크기는 대개 A1 사이즈이고 조금 큰 건물은 A0 사이즈로 그리기도 했다. 제도판에 매달려 도면을 그리고 틀리면 지워서 다시 그리고 하면서 도면이 나달거릴 정도로 몇 달간 그려서 완성해 나갔다. 그렇게 그린 도면작업의 마지막 공정은 나달거리는 도면의 모퉁이를 테이프로 보강해서 청사진을 뜨는 일이었다. 파란 감광지에 찍혀 나오는 도면에는 뚜렷하게 찍혀져 있는 선들 아래로 지우개로 지웠던 자국들이 희미하게 배어나온다. 그 몇 달간의 고민의 흔적과 그 몇 달간의 실수들이 마치 희미한 흉터처럼 남겨진 채, 도면은 ‘설계의 총체적 산물’로서 의연하고도 장엄하게 현장으로 실려간다. 그런 것이 아날로그일 것이다.

요즘은 마지막 결과물만이 대형 출력기에서 자판기 커피처럼 쉽게 뽑혀 나온다. 고민과 실수의 흔적이란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가구나 마감재의 치수는 데이터베이스에서 골라 삽입하면 되고, 선을 잘못 그리면 되돌아가는 명령어를 입력하면 그만이다. 오랜 경험과 기억으로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달되던 정보와 자료들은 용량 두둑한 하드 디스크의 메모리에 쌓여 있다. 그 도면에는 익명성이 가득하다.

◇솔크 연구소. 거푸집을 잘못 시공한 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는 콘크리트 벽.
미국에서 ‘건축가 중의 건축가(Architects Of Architects)’라고 불리는 루이 칸(Louis I. Kahn)은 솔크 연구소를 시공할 때 거푸집을 잘못 다루어서 콘크리트 벽에 생겨난 자국을 때우지 말고 그냥 두라고 직원에게 이야기했다. 그 상처도 역시 집이 지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했다. 낭만적이다. 혹은 지나치게 아날로그적이다.

# 손으로 그린, 시간이 담긴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는 일, 혹은 사람의 손으로 돌을 쌓는 일 같은 그런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일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은 일의 숙련도를 차치하고 시간의 흐름, 혹은 마음이 쌓이는 것 모두가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과 노동이 얼마나 신성하며 경건한지를 알게 해준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 방학이면 공사 현장에서 일당 서 푼 받으며 철근을 나르는 일이나 ‘반네루(패널)’를 나르는 일을 했었다.

한 번은 응봉동 산비탈을 몽땅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는 현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속한 팀은 어마어마한 경사를 밀어내면서 생긴 무지막지한 축대 아래서 옹벽 거푸집을 짜는 일을 했었는데, 그 옹벽 거푸집을 짜는 목수는 사실 그다지 장인정신이랄지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낡아 너덜거리는 재활용 나무 거푸집 패널에 검은 기름을 바르고 날라서 옹벽의 틀을 잡아나가는 목수들은 정말 거칠었고 2시간마다 소주를 한 병씩 마셔대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아침은 나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아침 일찍 현장에 도착한 목수들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기 전 입고 온 깨끗한 옷차림으로 임시로 만든 나무 작업대에 앉아서 단정하게 자신들의 연장을 닦고 다듬었다. 그들의 모습은 무척 경건한 의식을 행하는 사제 같았고, 나는 옆에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며 지켜봤다. 의식이 끝나면 그들은 옹벽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그때 쌓아올린 토목 옹벽을 지금도 가끔 지나갈 때 경건하게 쳐다본다.

나는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손에는 시간이 들어가 있고, 마음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Walt Disney Concert Hall), 2003, 미국 LA.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이었던 그림 이야기를 하나 해보고자 한다. 지금은 철거된 옛 중앙청 자리에 박물관이 있었다. 나는 그 적막하고 깊은 공간이 좋아서 특별히 그림이나 도자기에 관심이 생기기 전부터 줄곧 들락거렸는데, 늘 그 공간은 나 이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마 지금도 평일에는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간중간 가끔 그림이나 도자기를 들여다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감동은 없었고, 대부분 ‘교과서에서 봤던 그림들이겠지’ 하는 생각에 대충 훑어보기만 했었다.

어느 날 우연히 A4 용지 정도 크기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흔히 보았던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였는데 내용은 부모와 아들, 그렇게 세 식구가 모여서 자리를 짜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유난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돌아앉아서 일하는 아들의 등 부분에 뚜렷이 남아 있는 붓 자국이었다. 유려하게 칠해지지 않고 붓자국이 뚝 끊어졌다가 이어서 그어져 약간은 어설픈 붓질이었는데 교과서에 실린 해상도가 낮은 그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가의 자국이었다. 나는 그때 김홍도가 몇백 년 전 어느 시간에 붓을 들고 물감을 묻혀서 종이에 찍는 시간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마치 각자 점유하고 있는 역사적인 시간에 다른 공간이 부유하다가 우연히 겹쳐지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이후 그 느낌 때문에 이런저런 옛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들을 찾아다녔는데, 예술이 혹은 손으로 만든 것들이 전해주는 감동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 디지털의 옷, 아날로그의 몸

나에게 시공 중인 어떤 큰 건물의 사진이 한 장 있다. 그 사진 속의 장소인 LA에 있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유명한 원로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의 작품이다. 사진 속의 장면은 폭격으로 건물이 내려앉은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비정형적인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철골을 기워서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게리나 자하 하디드(Zaha Hadid,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건축가)의 건축은 농담이 진담으로 되듯이 그 상상력이 기술을 너무 앞지르고 있어서 그것을 쫓아가느라 시공하는 사람들이 발에서 쥐가 나고 있다. “이건 어때?” 하며 자꾸 던져주고 있는 그 공간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저 모두들 열광하며 열심히 컴퓨터로 건축을 그려내고 있다.

◇김수근이 설계한 경동교회. 파벽돌을 일일이 쌓아올려 만든 아날로그적 건축의 전형적 모습이다.
그래서 요즘 설계는 컴퓨터 그래픽 회사에서 다 하고 있다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나는 건축 조감도의 컴퓨터 그래픽을 진정으로 싫어한다. 특히 우리나라 건축계를 갉아먹는 삼류극장 간판 같은 조악한 그래픽들을, 그 느끼함을) 그리고 저 중성적이고 탈시간적이며 탈중력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결국 최고의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건물을 때워서 기워내고 있다. 중광 스님이나 성철 스님은 사상의 실천을 위해 옷을 기워 입었다는데, 저들은 왜 공간을 저렇게 기워서 만드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건축가 김수근은 벽돌을 많이 사용했다. 붉은 벽돌, 검은 벽돌, 파벽돌 등 다양한 벽돌을 통해 독특한 양감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그 방법은 무척 집요했다. 장충동에는 김수근의 말기 작품인 경동교회가 있다. 여럿이 모여서 가운데에 놓여 있는 무엇인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관념적으로 알고는 있는 유럽 중세의 어느 고성을 보는 것 같기도 한 이 건물은 거친 표면을 표현하기 위해 벽돌들을 일일이 반씩 쪼개서 붙였다고 한다.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고, 작위가 흘러넘치기는 하지만…. 빛이 부딪힐 때의 면이 좋다. 과정이 보이고, 벽돌이 하나하나 인식된다. 의도했건 안 했건 이 건물이 도드라지는 이유이다.

비정형 건축이 대세인 디지털 시대에 지붕은 경사지붕이 좋은 것이고 외벽은 시간이 지나도 낡아지지 않는 벽돌이 최고이고, 모형을 내 손으로 만들고 스케치를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아날로그적인가? ‘사실 지금 건축이 있어?’ 하는 이야기나 ‘디지털은 개뿔?’ 하는 이야기나 모두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랄지, 자신의 시간에 대한 집착이라든지 하는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하는 것은 건축이건 예술이건 노래건 춤이건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담기고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야 진정한 가치가 생긴다는 아주 원론적이고 고답적인 이야기이다. 과정과 이야기가 담기는 것이야말로 그것이 디지털이건 아날로그건 형식을 뛰어넘는 ‘아 프리오리(a priori:인식이나 개념이 후천적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그것에 논리적으로 앞선 것으로서 부여된 것)’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가온건축 공동대표, ‘서울풍경화첩’ 공동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