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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왕의 월드 스코프] 잉카제국의 옛 도읍지… 영화의 자취 곳곳에 남아

>>페루 쿠스코
톱니를 맞추듯 쌓아 올린 석축, 수차례 대지진에도끄떡없이 원형 유지

◇옛 잉카제국의 도읍지였던 쿠스코는 고원에 자리하고 있다. 쿠스코의 시내 중심지는 잉카시대의 초석과 그 위에 건설된 스페인의 건축물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리마를 떠나 숨가쁘게 안데스산맥을 넘어온 조그만 프로펠러 비행기는 미처 고도를 낮추기도 전에 고원의 활주로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비행기에서 내려오니 강렬한 햇살이 태양의 제국을 찾은 이방인의 피부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서늘하고 메마른 공기는 방문객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고지대에서 오는 가벼운 현기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활주로를 걸어 나오자 황량한 바위산 아래 갈색과 백색이 어울린 넓은 도시가 펼쳐졌다. 그것은 안데스의 고원에 생겨난 정연한 통일성이었다. 

◇장터에 모인 인디오들.
쿠스코는 옛 잉카제국의 도읍지였다. ‘태양의 제국’이라고 불리며 신비스러운 문명을 건설한 잉카제국의 중심지로서 쿠스코는 아직도 찬란한 영화의 자취를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잉카인들에게 쿠스코는 세계, 나아가 전 우주의 중심이었다. 쿠스코란 이들의 말로 ‘배꼽’이란 뜻이다.

쿠스코는 페루의 안데스 고원 분지에 위치한 평균 해발 3400m의 고도로서 수도인 리마로부터 동남쪽 580㎞에 위치하고 있다. 11세기 말 그 형태를 나타내기 시작한 잉카제국은 12세기 초반 무렵에는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에 걸쳐 5000㎞에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했다. 수도는 쿠스코로 정했다.

1533년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의 운명을 바꾸고 만다. 전쟁과 침략에 익숙한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번영을 구가하던 잉카제국은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잉카인들은 산속으로 쫓겨나고 쿠스코에는 스페인의 새 도시가 건설됐다. 오늘날 쿠스코는 원래 잉카시대의 초석과 그 위에 건설된 스페인의 건축물이 어울려 독특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점이 쿠스코를 특별한 도시로 보이게 하는 주된 이유이다.

잉카인들이 세운 석조물을 가리켜 “면도날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정교한 돌 구조물은 쿠스코와 인근의 유적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사각형의 석축을 쌓는 것이 아니라 돌을 여러 면으로 나누어 톱니를 맞추듯 쌓아 올라간다. 이 석축 기술은 잉카인의 독특한 공법으로서 외부의 강한 충격에도 흔들림이 없이 그 모양새를 그대로 유지한다. 수차례 페루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스페인 사람들이 지은 건축물은 크게 망가졌지만 잉카 사람들의 석축 건물은 피해 없이 원형을 유지했다.

쿠스코에는 잉카의 유적뿐 아니라 스페인 사람들이 남겨놓은 아름다운 건축물도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잘 정돈된 거리를 따라 갈색 기와를 얹은 백색의 건축물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스페인 형식의 도시 구조는 중앙에 아르마스 광장을 두고 시작한다. 아르마스 광장이 있는 곳은 잉카제국 시절에도 도시의 중심이었고 당시 광장의 바닥은 300㎞ 떨어진 해변에서 실어온 황금빛 모래로 깔려 있었다고 한다.

◇쿠스코를 보호하던 잉카시대의 성곽.
광장에 면한 대성당은 잉카의 신전 위에 세운 것으로 갈색 석조의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다. 지붕에는 남미에서 가장 큰 종이 있고 그 울림은 40㎞ 밖의 깊은 계곡까지 울려 퍼진다고 한다.

쿠스코에서 가장 특이한 거리는 아마도 로레토 거리일 것이다. 로레토 거리는 잉카의 석조구조가 남아 있는 가장 긴 직선의 거리이다. 길 중심에 수로가 있어서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뚜껑을 씌워 놓았다. 한낮이면 좁은 거리는 빛과 응달이 함께하는 가운데 무표정한 인디오들이 그림자를 벽에 그리며 걸어간다. 길고 좁은 골목, 빛과 그림자, 이곳만은 외부와는 단절된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 기묘한 느낌이 든다.

‘12각의 돌’. 돌 하나가 쿠스코의 명물이자 잉카인의 지혜를 말해 주고 있다. 종교 예술 박물관을 지탱하는 석축의 초석 중에는 ‘12각의 돌’이 하나 있다. 돌의 모양을 12각의 복잡함으로 도전하여 주변의 돌과 서로 톱니를 맞추듯 정확하게 접합시켜놓았다. 우선 외부 충격에 강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일설에 의하면 당시 왕족의 숫자인 12를 상징하거나 1년 12개월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잉카제국 시절의 석축이 그대로 남아 있는 로레토거리.
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지 시장은 흥미롭다. 쿠스코 중앙시장은 아침 일찍부터 붐빈다. 시장은 상당히 큰 규모로서 그것을 둘러싼 노점도 무수히 많다. 말 그대로 바늘에서부터 황소까지 없는 것이 없어서 항상 시민들과 인근 마을의 인디오들로 붐빈다. 반면 이곳은 좀도둑이 많기로 악명이 높다. 만약에 카메라를 옆에 느슨히 걸고 시장 구경에 정신을 판다면, 다음날 그 카메라는 중고상에 헐값으로 나오기 십상이다.

쿠스코 인근의 마을에서 열리는 3일장, 5일장에서는 인디오들이 직접 제작한 수공예품, 가사도구, 화려한 색상의 직물들이 눈길을 끈다. 페루가 관광지로 각광받으면서 인디오들이 그들의 수공예품과 라마, 알파카 등의 가축에서 얻어지는 모직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시작하고 그것이 그들의 농업에서 얻어지는 수입보다 월등함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쿠스코 골목 곳곳에는 인근의 마을에서 모여든 인디오들이 길에 벌여놓은 좌판들이 즐비하다.

찬란한 문명과 대제국을 건설한 잉카인들의 후예들은 오늘날 이렇듯 수수한 모습으로 삶을 이어간다. 해가 서산에 걸리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잉카의 후예들은 좌판을 거두어 그들의 가장 친한 가축이자 가족인 라마와 함께 수레를 타고 산너머 마을의 집으로 돌아간다. 흙으로 지어진 소박한 집에는 노부모가 준비해놓은 양고기 수프와 삶은 감자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라마의 울음소리와 희미한 호롱불의 그림자 속에서 인디오들은 하루를 마감한다.

다시 아침이 밝아오면 쿠스코를 찾은 이방인들은 서둘러 역으로 향한다. 아침 일찍 떠나는 산악열차를 타고 마추피추로 가기 위해서다. 스페인 침략자들을 피해 도망가던 잉카인들은 쿠스코의 남쪽 첩첩 산중에 비밀의 공중도시를 건설하였다. 마추피추는 신비로운 잉카문명의 절정이며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나도 선잠에서 일어나 그들과 함께 산악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여행작가

〉〉가는 길

우리나라에서 쿠스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페루까지 직항노선이 없으므로 미국의 LA나 애틀랜타, 휴스턴 등의 대도시에서 페루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페루의 수도 리마까지는 페루항공이나 미국 메이저 항공사들이 운항하고 있다. 리마에서 쿠스코까지는 페루 국내항공이 매일 운항하고 있다.

〉〉기후

쿠스코는 고지에 위치한 만큼 햇빛이 강하고 밤낮의 기온차가 심하다. 사실 쿠스코의 위치는 적도에 가까운 열대지방이라고 할 수 있다. 지도를 보더라도 같은 위도에 브라질이 자리하는 것으로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워낙 고지대이기에 일년 내내 선선한 기후가 계속되고 밤에는 꽤 춥다.

〉〉고산증

쿠스코에 도착하면 이내 공기가 희박함을 느끼게 된다. 산소부족으로 인한 현기증은 사람들 대부분이 느끼는 현상인데 첫날에는 무리하지 말고 몸을 적응시키는 것이 좋다. 여행객이 쿠스코에 도착하면 대부분의 호텔에서는 차 한잔을 권한다. 녹차와 비슷한 마테 코타차로서 고산증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이것은 코카나무의 잎을 말린 것인데 마약인 코카인의 원료이기도 하다. 적당히 마시고 또 절대로 국외로 가지고 나가서는 안 된다.

〉〉태양의 축제

매년 6월 24일에는 잉카의 의식을 재현하는 ‘태양의 축제’가 열린다. 전통 축제로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축제로서 이때 쿠스코는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붐빈다. 쿠스코의 동쪽에 있는 사크사이와만 요새 광장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