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윤의 아시아 문화기행] 印 국경도시 와가 견원지간 印·파키스탄 국경폐쇄식 관람객 ‘북적’ 입력 2009-07-23 16:54:59, 수정 2009-07-23 18:10:16
내가 처음 육로로 넘어본 국경은 인도·네팔 국경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까지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방금 자대 배치를 받은 신병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출국심사가 끝나고 ‘웰컴 투 네팔(Welcome to Nepal)이라는 문장이 붙은 대형 아치에 금 하나 그려진 것을 보고 어찌나 허탈하던지…. 그저 금 하나 차이로 나라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말과 문화가 바뀌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도 신기한 일이지만, 휴전선에 100만이 넘는 군대가 포진한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그 두려움이 당연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귀순용사라는 사람들이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왔을 때, 뚫었다는 그 사지(死地)가 고스란히 국경의 이미지로 다가온 탓이다. 우리 세대에게 국경은 무서운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은 분단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너희도 합쳐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하면 인도인은 인도인대로, 파키스탄인은 파키스탄인대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냥 이대로가 행복해요랄까? 평화적으로 나라가 나뉘었기에 우리와 같은 다양한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들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구 대비로 힌두교가 우위인 주는 인도연방에 가입했고, 이슬람교가 우위인 지역은 파키스탄에 속했다. 어떤 주는 지배자는 이슬람교를 믿는데 주민의 인구구성이 힌두교라 문제가 된 지역도 있고,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인도의 동쪽과 서쪽 끝에 매달린 벵골과 펀자브주는 인구 대비가 애매하다는 이유로 반으로 쪼개지는 와중에 쌍방 학살이 일어나 50만 가까운 사람이 죽기도 했다. 그뿐인가. 카슈미르 문제는 두 나라를 세 차례나 전쟁의 소용돌이로 밀어넣었고 2002년에는 핵전쟁 직전까지 가며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이런 과거사를 알면서도 인도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가야 하니 내 발길은 두렵기만 했다. 처음 인도를 지나 파키스탄으로 갈 때의 출입국 관리소 질문을 잊지 못한다. 인도 측 출국심사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 파키스탄은 위험한 나라야.” 파키스탄 측 입국심사관은 더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인도를 어떻게 생각하니?” ![]() 눈치껏 그가 원하는 답변을 했고, 그는 방그레 웃으며 내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며 특유의 굴리는 발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파키스탄 넘버르 원(Pakisthan Number One)” 이런 이상한 질문공세는 나의 여행 경력을 아는 두 나라 사람에게서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파키스탄 사람은 내가 인도를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해했고, 인도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때마다 노련하게 정치적인 답변을 했다. 물론 나에게 사기를 치는 인도인에게는 파키스탄으로 꺼지라는 뜻의 ‘짤로 파키스탄!’이라는 욕을 인정사정없이 해주었지만…. 세 차례의 전쟁,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이 두 나라에 2002년부터 시작된 전통(?)이 있다. 우리로 치자면 판문점쯤 되는 국경도시 와가(Waga)에서는 매일 오후 4시 특이한 이벤트가 벌어진다. 양측의 국경수비대가 만나 자국의 국기를 하강하는 국경폐쇄식을 일반에 개방한 것이다. 건조하고 살벌했던 국경폐쇄식은 이내 부드러워졌다. 관객이 생기자 군인들이 과장하기 시작했다. 양측의 군인들은 각자의 남성미를 최대한 발산한다. 상대방을 눈알이 빠질 것처럼 노려보고 기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더욱 더 절도 있는 동작으로 국기를 내리기 위해 과장된 제식을 시행한다. 심지어 태권도의 발차기를 연상할 정도로. 모든 행위가 연극적이다. 국기를 하강할 때 더욱 더 자국의 국기가 오래 게양되게 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더니 결국은 두 나라가 동시에 똑같은 속도로 내리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흥미 있는 국경폐쇄식은 곧바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을 이끌었고, 급기야 양국은 국경폐쇄식이 잘 보이도록 펜스를 설치했다. 브라보! 외국인이야 재미있는 볼거리지만, 애국심에 충만한 인도인과 파키스탄인들은 다르다. 누구는 울고 누구는 흥분한 채 ‘인도여 영원하라’, ‘불멸의 파키스탄’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혼란스럽고 우스꽝스러운, 하지만 진지한 인도인 덕분에 대놓고 웃지는 못하는 나는 그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국경폐쇄식 내내 안면근육의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폐쇄식이 끝난 후 자리를 뜨는 인도인들의 얼굴은 환했다. 이 성격을 알 수 없는 매스게임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나 할까. 인도 측 통계로도 펜스가 생긴 이후 서로간에 대한 적대감이 오히려 줄었다고 하니, 인도인들의 기발함은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셈이다. 요즈음 휴전선에는 다시금 서로 비방하는 방송이 재개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시민단체에 의해 남한이 북한으로 삐라를 뿌리는 세상이다. 다시금 흉흉함이 몰려오고 있다. 그때마다 느낀다. 우리도 휴전선에서 서로 펜스를 설치하고 이런 국가 응원전 아닌 응원전을 개최하면 어떨까. 꼭 남북한 문제가 아니어도, 각자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이 모여서 스트레스를 풀다 보면 좋은 세상 오리라 믿는 건 그저 여행만 한 덕에 내가 세상을 너무 낭만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일까. 심각함을 엉뚱하게 풀어내는 인도와 파키스탄 사람들의 현명함에 존경을 표한다. 여행작가 >> 가는 길 인도·파키스탄의 국경이 마주하고 있는 와가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인천에서 델리로 간 후, 델리에서 시크교의 성지인 암리차르까지 기차를 이용해야 한다.(7∼12시간) 암리차르에서 와가로 가는 버스는 암리차르 역 앞에서 출발하는데 약 30분이 소요된다. 주말에는 와가 국경으로 인파들이 몰려서 북새통이지만, 외국인 여행자의 경우 여권만 제시하면 VIP 관람석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세속주의 국가인 인도는 펜스에 남녀가 함께 앉지만, 이슬람국가인 파키스탄은 펜스도 남성, 여성이 구분되어 있어 두 나라의 문화가 다름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