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

"명장의 손길로 한국남성 멋쟁이로 만들것"

맞춤정장 분야 외길 영진 INC 노완영 대표

 

[이허브] 

“명장의 손길과 컴퓨터의 조화로 젊은 남성들의 어깨를 가볍고 부드럽게 감싸주고 싶습니다.”

국내에 처음으로 남성정장에 비접착(非接着) 제조방식을 도입해 주목받았던 영진INC의 노완영(52) 대표가 패턴 시스템 오더(Pattern System Order) 캐릭터 맞춤 정장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는 어떤 체형의 사람이 입어도 잘 어울리는 패턴을 개발, 개인마다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실루엣을 찾아내는 혁신적인 제조공법이다. 

16일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 영진INC 본사에서 만난 노 대표는 지금의 경영 상황이 과거 10년 전 IMF 구제금융 당시보다 더 심각해, 또다시 어두운 터널을 헤쳐나가야 하지만 결코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써 전통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정장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브랜드명 카호시는별이란 뜻으로 어둔 밤하늘에서도 반짝이는 별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그의 의지가 담겨있다.

사실 그가 남성정장을 만드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기호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넉넉지 않은 집안 살림에 좋은 옷을 골라 입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양복점에 걸려 있는 빛깔 좋은 정장을 보면 발걸음을 멈추고 꼼짝없이 서서 오랫동안 쳐다보곤 했었죠. 옷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양복점에 걸린 옷을 입어보고 싶은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20대에 국내 최대 남성정장 제조업체인 제일모직에 입사해 생산·기획 등 정장라인의 과정을 두루 거쳤다. 그리고 패션 선진국인 이탈리아와 프랑스, 일본에서 차례로 기술연수를 받았다.

선진 정장기술을 터득한 그는 지난 1995년 경기도 안양에 국내 최대 규모의 남성정장 OEM공장을 세웠고,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따라하기 힘든 기술을 접목시켜 탑 브랜드 제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양복 겉감과 안감 사이에 넣는 심지를 본드로 붙이는 기존 방식과 달리 손바느질로 연결하는 비접착 기술과 옷깃 바깥부분에 바늘로 한땀 한땀 수를 놓는 스티치(Stitch)기법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그가 만든 정장은 부드러운 선과 가벼운 착용감 때문에 큰 호평을 받았고 대기업의 간판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도 대량생산되는 정장에 비접착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것은 제일모직과 그가 운영하는 영진INC 밖에 없다.

노 대표는 독립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IMF구제 금융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오히려 선진기술 습득과 고급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기회로 삼았다.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외국의 패턴 전문가와 양복제조 명장을 스카우트했지요. 실례로 일본 정장 패턴분야에서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고꾸와 요지가즈씨를 기술고문으로 영입했는데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15년간 평균 경력이 20년이 넘는 양복 기술자를 100여 명을 확보하는 등 이 분야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그였지만 늘 가슴 한구석에 떨쳐버릴 수 없는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양복쟁이는 TV에 출연한 유명인사의 옷매무새만 봐도 누구의 작품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립니다. 제가 만든 옷을 대통령과 재벌총수, 유명연예인이 입고 있는 것을 종종 봐 왔지만 전혀 기쁘지가 않더군요."
 
그는 지난해 비로써 자신의 브랜드를 가진 제대로 된 젊은 정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다짐으로, 서울 대치동과 신촌, 건국대 앞에 카호시라는 간판을 걸었다.

매장을 열자마자 10여 년 전과 같은 불황에 또다시 직면했지만 그는 결코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력이 뛰어나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기업은 불경기에 더욱더 빛을 발한다는 굳은 믿음 때문이다.

"국내 신사복엔 가격 거품이 너무 많이 끼어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백화점들이 그린 프라이스(가격정찰) 제도를 도입했다고 하지만, 소비자에게는 아직까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화점에서 정상가격에 구입한 고급 양복을 가지고 오면 카호시 매장에서는 절반값에 동일한 소재로 맞춰 주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카호시에서는 고급 순모제품이 30만 원대로, 백화점 판매가격의 40% 수준이다. 이처럼 맞춤 정장 가격을 낮추고 제품의 질을 높이는 데는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대한민국 모든 남자들이 멋쟁이가 되도록 하고 싶다'는 그는 20여 년의 세월은 이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한 연습 기간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양복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고객과의 신뢰. 그래서인지 카호시는 문을 연지 불과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구입고객 가운데 90%가 재구매를 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수백개의 남성 맞춤 정장 매장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맞춤 정장시장은 혼탁해졌습니다. 저가경쟁이 일어나 저급한 원단을 사용하고 패턴과 봉제의 기본마저 상실한 맞춤 정장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맞춤 정장 시장은 과거 개인사업가나 대기업 임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것이 수년 전부터 20∼30대 젊은층으로 확대되면서 매년 10%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 그는 맞춤 정장 시장이 아무리 확대되고 가격이 싸진다 해도 신뢰할 만한 브랜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고객의 판단은 냉정하고 정확합니다.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고 화려하게 광고하면 일시적으로 많은 고객확보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두 번을 속아 주지는 않거든요. "

옷이 좋아 이 길을 선택했고 이제 사랑하는 이웃들과 함께 나누려는 생각으로 맞춤 정장 브랜드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그는 힘든 사회생활로 처진 남성의 어깨를 제대로 된 정장을 만들어 감싸주고 싶다고 말했다.

임삼미 기자 sml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