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 '역사에서 길을 찾다'] <22>불후의 고전명작 '춘향전' 뒤집어 읽기 로맨스 즐기다 1년만에 장원급제, 이도령은 천재? 입력 2008-09-23 16:20:22, 수정 2008-09-24 10:52:25  | ◇출발하는 암행어사를 묘사한 그림. |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도 어느덧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가을이 다가왔다.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로 지칭되는 가을.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일반 백성들까지 책을 빌리거나 필사해서 읽는 일이 흔해졌다. 무슨 책을 가장 많이 읽었을까? 요즘도 명절이 되면 심심찮게 특집극으로 편성되는 고전소설 ‘춘향전’은 조선시대에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이도령과 춘향의 사랑 이야기와 부패한 사또 변학도에 대한 통쾌한 복수 등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되는 요소들이 다양하게 구성된 ‘춘향전’. 조선 후기 창작된 이래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소설 ‘춘향전’에는 독자들의 흥미를 위해서 역사적 상황이 아닌 사실들이 자주 등장한다.
#1. 단기간에 과거시험 수석합격, 이도령은…
많은 사람은 춘향전의 스토리를 그대로 믿으면서 이것이 역사적 실제인 것처럼 해석해 버린다. 여기에는 중요한 함정이 있다. 춘향전 또한 허구적 상황을 담은 소설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시대의 소설에도 허구와 과장이 적절히 놓이면서 그럴듯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가장 있음 직한 상황들을 배경으로 설정하면서 말이다. 과연 춘향전에는 어떤 허구적 상황들이 숨어 있을까. 소설의 내용에서 역사적으로 맞는 장면들과 그렇지 않은 부분들을 춘향전 내용을 짚어 보면서 살펴보자.  | ◇남원 광한루와 오작교의 옛 사진. 남원시청 제공 | ‘춘향전’에서는 퇴기(退妓)의 딸 춘향과 남원부사의 아들로 잘나가는 양반집 선비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신분의 벽을 허물은 남녀의 결합이라지만 신분사회가 무너져 가는 조선 후기 사회에서도 그리 쉽지 않은 상황 설정이다. 우리는 청춘남녀의 만남을 생각할 때 먼저 결혼을 염두에 둔다. 소설에서는 주인공 둘의 연령을 똑같이 ‘이팔청춘’ 즉 16세로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결혼을 생각도 할 수 없는 나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법적으로 혼인에 전혀 하자가 없었다.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에는 ‘남자 15세, 여자 14세가 되면 혼인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규정이 있고, 일상생활에서 지켜진 예법인 ‘주자가례’에도 남자는 16∼30세, 여자는 14∼20세를 혼인 적령기로 기록한 것을 보면 춘향과 이도령의 나이는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에 전혀 문제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혼인 연령에서 무사히 조선의 법망을 빠져나간 춘향과 이도령의 다음 이야기. 이도령이 춘향과의 만남 후 1년여 만에 과거에 장원급제한다는 설정은 과연 가능할까?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3년마다 한 번씩 뽑는 식년시(式年試)와 특별한 경우 실시하는 별시(別試)로 구성되어 있었다. 문과 급제자가 33인이니 식년시라면 3년에 전국에서 33인이 뽑히는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만큼 힘든 관문이었다. 과거길을 일컬어 영광을 보러 간다는 뜻으로 ‘관광(觀光)길’이라 한 것 역시 과거가 치열했던 시대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또 문과에 급제하려면 소과에 해당하는 생원시나 진사시를 거쳐 성균관에서 일정기간(대개 4∼5년) 수학해야만 했으니 기간으로 보아 이몽룡이 문과를 거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 ◇출발하는 암행어사를 그린 풍속도. | 그렇다면 조선 후기에 널리 시행된 별시(別試)에 합격했을 가능성이 남는다. 이몽룡이 별시를 치렀을 가능성은 당시의 시험문제가 ‘춘당춘색 고금동(春塘春色 古今同)’으로 나타나 이 시험이 창덕궁 춘당대에서 실시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시험 후 바로 왕이 급제자들을 시상했다는 기록이나, 이몽룡이 진사나 생원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그가 별시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별시라 해도 천하의 인재가 모여드는 과거시험에 서울에 올라간 1년여 만에 수석합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처녀가 그네 뛰는 것을 충분히 감상하고 적당한 로맨스를 즐겼던 위인이 말이다. 물론 점찍은 자신의 여자 춘향을 위해서라도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을 터이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소설 속 이도령은 흔치 않는 천재임에 틀림없다.  | ◇평생도 중 ‘삼일유가’ 묘사 그림.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한 이는 어사화를 머리에 꽂고 사흘 동안 시험관과 선배 급제자, 친척을 방문했다. | #2. 자기 고향의 암행어사가 될 수 있나?
장원급제 후 이도령이 바로 암행어사로 나가는 것도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다. 대개 과거에 급제하면 종9품이라는 최하위직에서 출발하는데, 장원급제인 경우에 한해서만 종6품직에 임명되기도 했다. 따라서 장원급제자는 동기생보다 보통 4∼5년 정도 승진 시기가 빠르다. 암행어사로 파견될 수 있는 최소한의 직급이 종6품직으로 이것도 가능한 설정이긴 하지만, 과거에 급제한 신참에게 왕의 밀명을 받아 암행 업무를 수행하는 암행어사로 파견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이도령이 남원에 파견된 사례에서는 소설적 허구의 극치를 이룬다. 조선시대에는 상피제(相避制)가 엄격히 적용되어 자신의 출신지에 암행어사를 파견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연고지역에 파견을 나가 안면이 있는 벼슬아치들의 청탁을 받는다면 공정한 암행의 업무를 어찌 수행할 수 있겠는가. 상피제의 적용은 부정과 청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조선시대 내내 지켜졌다.
특히 암행어사의 파견지를 결정할 때는 추생이란 엄격한 추첨제도를 적용했다. ‘추(抽)’는 뽑는다는 뜻이며, ‘생은 나무껍질로 만든 ‘제빗대’란 뜻으로 직접 제비를 뽑아 왕명을 받아 감찰할 지역을 정하게 했다. 요즘도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제비뽑기’란 ‘잡다’의 명사형인 ‘잽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데, 한자로 표현하면 요즘도 흔히 쓰는 추첨(抽籤)이라는 말이 된다. 춘향전의 배경이 되는 조선 후기 전국의 군현은 대략 400여개에 달했다. 물론 상피제의 적용으로 이도령은 남원으로 갈 수 없었지만 추첨에 의한다 할지라도 남원에 갈 수 있는 확률은 400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춘향전’은 소설이니까 작가는 춘향이가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남원으로 암행어사 이도령을 파견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추첨으로 암행어사가 그 부임지를 뽑으면 봉서(封書:암행어사가 수행할 임무를 적은 명령서)에 그 지역의 이름을 써 주었다. 그러나 봉서는 현장에서 바로 개봉하는 것이 아니고, 동대문이나 남대문 밖을 벗어나면 열어볼 수 있게 하였다. 그만큼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한 것이다. 암행의 임무를 맡은 어사는 봉서와 함께 왕이 친히 하사한 마패(馬牌), 그리고 유척(鍮尺)을 소지하고 암행길에 나서게 된다. 마패에는 역마(驛馬)가 그려진 숫자대로 공식적으로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증명서의 기능과 함께 출도(出道) 때 암행어사의 신분을 증명해 주는 증명서의 기능을 하였다. 현재 전해지는 마패는 대부분 말 2마리가 그려진 2마패의 형태로, 일반적으로 2마패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척은 지방의 관리가 형구(刑具)를 함부로 사용하는지와 도량형의 통일 여부를 파악하여 세금을 제대로 징수하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尺)로서, 바로 변사또와 같은 수령들의 임의 법 집행 증거를 확보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 ◇암행어사의 봉서 개봉을 묘사한 행적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제공 | # 3. 사또는 초법적 존재인가?
이제 춘향이가 변사또의 탄압을 받는 장면으로 들어가 보자.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영화로 제작된 춘향전에서는 춘향은 머리가 헝클어진 채 긴 칼을 목에 두른 처참한 상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낸다. 도대체 얼마나 잘못했기에 춘향은 역모나 살인을 저지른 대역죄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일까. 이 역시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거의 나타날 수 없는 설정이다. 지방의 치안과 풍속을 책임져야 할 사또, 지방의 수령이 이처럼 함부로 법을 집행해도 되는가. 소설 속의 구성은 특히 조선시대 지방관들 모두를 부패하고 여성을 노리개로 삼는 인물로 몰아가는 위험성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수령이 함부로 사법권을 집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단지 자신에게 수청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에 칼을 씌우는 형벌은 더더욱 집행할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의 목을 그대로 내놓은 사또가 아니라면 말이다.
 | ◇영화 ‘춘향뎐’에서 이몽룡의 어사 출두 장면. |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도 삼심제(三審制)가 엄격히 시행되었으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의 법적 제도가 완비되었음이 잘 나타나고 있다. 최근 여성에게 출산휴가를 주는 모성보호법이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조선시대에 이미 노비(奴婢)들에게까지 출산휴가를 줄 만큼 나름의 인권 보호책이 수립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춘향전에서는 사또의 잔혹성을 부각시키고 이를 통쾌한 복수로 연결하기 위해 변사또를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법 집행과 고문을 일삼는 인물로 묘사했지만, 이러한 설정은 자칫 조선사회의 법 집행과 형벌제도가 나름의 짜임새를 갖추고 있으면서 인권 보호를 위한 여러 조치들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하게 하여 은연중 법률의 사각지대임을 보여주고 있다.
고전소설이건 현대소설이건 모두 그 시대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 소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시대의 부조리와 모순을 과감히 폭로하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대리만족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점에서 춘향전은 수령의 부패와 탐학, 청춘남녀의 사랑, 선비의 출세와 여성의 절개 등 조선 후기 사회에서 중시되던 덕목과 사회상을 적절히 반영하면서 그 시대인들의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설에서 설정된 장면들이 모두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보다 극적인 효과를 담아내기 위해 과장되고 허구적인 장면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된 것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고전소설에 담긴 이러한 허점(?)들을 과감하게 파고들 때 역사소설을 읽어보는 재미가 보다 더해지지 않을까?
건국대 사학과 교수 shinby7@konku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