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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문화도시 랜드마크’ 경쟁

중동·아시아, 오페라하우스 건립 열풍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 베이징의 ‘국가대극원’.
‘건물 하나가 도시 전체를 바꾼다.’ 지금 세계는 랜드마크(land mark)를 앞세운 ‘문화도시’ 경쟁이 한창이다. 랜드마크 하면 두바이의 ‘버즈 두바이’를 비롯한 초고층 건물이 먼저 떠오르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건물도 문화도시를 담보하진 못한다. 문화도시의 랜드마크는 문화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복합 문화공간인 오페라하우스다. 유럽뿐만 아니라 오일 달러를 등에 업은 중동과 신흥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아시아 국가들이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뛰어들고 있다. 미술관이나 문화예술센터도 각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각광받고 있다.

◆오페라하우스 건립 ‘열풍’=미국 뉴욕의 카네기 홀,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모두 세계 첫손에 꼽히는 오페라하우스들이다. 오렌지 껍질을 연상시키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호주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1973년 완공 이후 지금까지 연간 400만여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더 웅장하고 화려한 오페라하우스가 속속 완공돼 이들의 명성을 위협하고 있다. 독일 바덴바덴의 ‘축제극장’이 첫손에 꼽힌다. 바덴바덴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온천탕으로 유명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1998년 옛 중앙역 부지에 축제극장이 들어서면서 ‘문화도시’로 탈바꿈했다. 이 극장은 최적의 음향과 건축 디자인으로 단숨에 오페라 명소로 자리 잡았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설계된 바덴바덴 중앙역 청사의 파사드(건축물 정면)를 그대로 살리고 대합실을 매표소와 로비로 사용했다. 프랑스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극장(2700석)에 이어 유럽에서 두번째로 많은 객석(2500석)을 자랑한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과 공동으로 오페라를 제작, 연간 100여회 공연하고 있다.

지난 4월 문을 연 노르웨이 오슬로의 국립 오페라하우스는 세계 건축물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평가된다. 총 건축비 7500억원이 투입된 이 건물의 특징은 피오르 해안으로 완만하게 빠져들도록 사선으로 만들어진 하얀 대리석 지붕이다. ‘마법의 양탄자’같이 생긴 이 공간은 시민들이 그 위에서 산책하거나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 오슬로의 트론드하임 성당 이후 700여년 만에 건립된 최대 규모의 문화 건축물이다.
◇화려한 꽃 모양으로 ‘금속 꽃’이라는 별명을 지닌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지난해 12월 모습을 드러낸 중국 베이징의 오페라하우스 ‘국가대극원’은 독특한 건물 모양과 규모가 자랑거리다. 6년간 3600억원이 투입된 국가대극원은 2만여개의 티타늄 판과 1200여개의 유리판으로 뒤덮여 있고, 인공호수 위에 세워져 마치 우주선이 물 위에 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동서 길이가 212m, 남북 길이가 144m로 2398석의 오페라하우스, 2019석의 콘서트홀, 1035석의 드라마센터가 있는 세계 최대 공연장이다. 
◇열대과일 두리안의 껍질을 본떠 만든 싱가포르의 복합문화시설 ‘에스플라네이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도 ‘중동의 문화 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 인공섬에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곳은 2500석 규모의 오페라하우스와 800석 규모의 극장, 6성급 호텔 등이 들어서는 두바이 종합 문화지구로 조성된다.
◇평범한 온천휴양지를 ‘문화도시’로 변화시킨 독일 바덴바덴의 축제극장.

◆건물 하나가 도시를 바꾼다=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물 하나가 도시 전체를 바꾼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공업도시였던 빌바오는 1980년대 중반 실업률이 35%까지 치솟고, 도시를 가로지르던 네르비온 강은 공업화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빌바오 시 당국은 성장 방향을 공업에서 문화·서비스로 수정했고, 1900억원을 투자해 1997년 구겐하임 미술관을 완공했다. 활짝 핀 꽃 모양에 3만3000여개의 티타늄 조각을 붙여 ‘금속 꽃’이라 불리는 이 건축물은 낮과 밤, 날씨에 따라 다른 빛깔을 낸다. 세계 건축가들은 “쇠퇴하는 빌바오를 되살리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괴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지난해 이곳을 다녀간 관광객은 100만명을 넘어섰다.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의 사디야트 섬에 건립될 공연예술센터 조감도(2013년 완공 예정).

프랑스 파리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퐁피두 예술문화센터는 파리 북부 레알지역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추진한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1977년 건설됐다. 건물 철골을 그대로 드러낸 듯 설계한 파격적인 외관은 당시 세계 건축계에 충격을 던졌다. 27개월간의 보수공사를 거쳐 2000년 1월 재개관한 이후 이곳에는 연간 1000만명 이상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가 동·서양 공연예술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2002년 완성한 복합문화시설인 에스플라네이드도 세계적인 명물로 떠올랐다. 특히 열대과일 두리안의 껍질을 본뜬 독특한 건물이 관광객들을 매혹시킨다.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는 2013년까지 사디야트 섬에 아부다비 공연예술센터를 비롯해 루브르 박물관 분관,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 등 각종 문화예술 시설을 건립할 예정이다.

신정훈 기자 h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