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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광부

1960, 70년대 대표적인 산업재해로는 광산 갱도 붕괴 사고를 꼽을 수 있다. 당시 가정과 산업 현장에서 쓰인 연료는 대부분 석탄이었다. 석탄을 캐내는 과정에서 한 해에도 몇 차례씩 갱도 사고가 발생해 숨지는 광부들이 허다했다. 1967년 8월 충남 청양 구봉광산에서 발생한 양창선(당시 35세)씨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언론은 연일 호외를 발행하며 지하 120m 갱도에 매몰된 양씨의 구조작업 과정을 보도했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비서관을 사고 현장에 보내 독려했다. 양씨는 온 국민의 관심 속에 매몰된 지 15일 9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당시로서는 매몰 사고를 겪은 뒤 생환한 경우로 세계 최장 기록이었다. 매몰사고가 잦은 것은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한 단면이었다.

광부는 산업 근대화에 없어서는 안 될 역군이었다. 하지만 검은 탄가루 등 먼지 속에서 일하는 데다 붕괴사고 등으로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열악한 작업환경 탓에 기피 직종의 하나였다. 양씨의 매몰기록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15일 17시간(377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된 박승현(여·당시 19세)씨에 의해 깨진다.

매몰이라는 극한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연구 결과는 없다.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사례를 분석한 결과 지진으로 매몰됐을 경우 닷새(120시간) 동안 살 수 있는 확률은 5.8%에 불과하다. 24시간 이내에 구조되면 80.5%가 살아남지만 72시간(21.8%)을 고비로 생존율이 뚝 떨어진다. 3일을 넘기면 탈수현상을 일으키거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극한상황에 맞닥뜨리면 인체는 스스로 몸의 대사를 낮춰 에너지 소비를 최소로 줄이는 등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한다는 게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지금까지 붕괴나 지진 등으로 매몰된 상황에서 인간의 생존한계는 20일 정도였다. 강진이 휩쓸고 지나간 지 15일째인 어제 중국 쓰촨성 3개 광산에 매몰된 광부 24명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중국 당국의 긴급구조 작업이 이들에게 집중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은 재난 현장에서 생환의 기적을 일궈낸다면 뭇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들이 빨리 구조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병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