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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원의 영화속 성 문화]보르히아… 가장 聖스럽지 못한, 가장 性스러운 교황

친딸마저 자신의 노리개로 삼은 ‘탐욕의 화신’ 알렉산데르 6세

[이허브] 발렌시아의 추기경 로드리고 보르히아가 교황 알렉산데르 6세로 선출된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보르히아는 자기 딸 루크레치아마저 희생시킨다. 주변 공국 유력자와의 정략결혼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목적이 달성되면 사위를 살해하여 다시금 딸을 다른 곳으로 시집보낸다. 여기에는 밀라노 스포르차 가문의 사위도 포함된다. 

한편 차남 후안으로 하여금 분열된 이탈리아를 통일하려는 계획을 추진하지만 뜻하지 않은 후안의 피살로, 그 임무는 장남 체사르에게 맡겨진다. 아버지 못지않은 권모술수와 잔인함으로 결국 이탈리아의 지배자로 등극하는 체사르. 그러나 루크레치아를 두고서 알렉산데르 6세와 체사르 간에 벌어진 근친상간과 정략결혼 그리고 피의 숙청과 배신을 통해 유지하려던 권력의 끈은 서서히 한계점에 다다른다. 그와 아들 체사르의 악행과 음모가 세상에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의 원성과 정적(政敵)이 늘어간 것이다. 결국 하녀가 독을 넣은 음식을 먹고 사망한다. 

알렉산데르 6세교황의 죽음 이후 보르히아 가문의 영광은 사그라지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체사르도 적의 칼에 쓰러진다.

 


안토니오 에르난데스가 연출한 스페인 영화 ‘보르히아’(Los Borgia, 2006)는 가장 타락한 교황으로 악명 높은 알렉산데르 6세(1492~1503 재위)를 소재로 한 일종의 역사 드라마이다.

JB 듀로젤의 ‘가톨릭의 역사’에는 르네상스기의 교황들이 여색을 탐하는 형편없는 인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보니파키우스(1294~1303 재위)는 질녀를 첩으로 삼았으며 율리우스 2세(1503~1513 재위)는 방탕한 끝에 매독에 코가 떨어지고 보행을 못할 지경이됐다. 르네상스 최후의 교황인 파울루스 3세(1534~1549 재위)도 귀족 부인을 강간하고 도망간 전력이 있으며 둘째 누이와 근친상간을 범했다. 그러나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음탕한 교황이 바로 알렉산데르 6세이다.

본명이 로드리고 보르히아(Rodrigo Borgia)인 그는 교황 칼릭스투스의 조카라는 혈연을 이용해 추기경이 됐으며 이미 그때부터 방탕한 생활로 유명했다. 그가 주최하는 야회에는 상류계층의 유부녀와 처녀만을 초청하고 성의(聖衣)를 입은 채 닥치는 대로 간음을 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알렉산데르 6세의 애첩으로 등장하는 줄리에타는 추기경 시절부터 데리고 있던 시녀였다. 그리고 간간이 나오는 섹스 장면도 빙산의 일각이며 실제 그의 성적 탐욕은 섹스중독자에 가까웠다. 오죽하면 어느 소녀는 교황과 밤새 10차례의 성행위를 견디지 못해 죽었다는 비화마저 전해지고 있을까. 그러나 알렉산데르 6세를 음탕함과 잔혹함으로 악명을 떨치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그의 친딸 루크레치아를 자신의 권력욕과 음욕의 대상으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교황 선출에 필요한 과반수 15표를 얻기 위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추기경 제럴드를 매수코자 겨우 열두 살 된 루크레치아를 수청 들게 했다. 한 표를 얻기 위해 어린 딸을 희생한 아버지도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성상납 조건을 받아들인 제럴드의 나이가 당시 95세라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더욱이 보르히아는 루크레치아를 범했으며 이러한 사실을 공공연히 알렸다. 영화에서는 주변 인물들의 대사로 부녀간의 근친상간을 짐작할 수 있으나 실제로 스스럼없이 그 관계를 밝혔던 것이다. 특히 1549년 루크레치아와 스포르차 가문과의 혼인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낳은 애를 자신의 아이라고 공개적으로 교황칙서로 인지하기도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 다음 교서에는 그녀의 오빠인 체사레를 아이의 아버지로 기술했다는 것이다. 만일 이 두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루크레치아는 아버지와 오빠를 상대로 동시에 근친상간하면서 임신했다는 추론이 성립된다. 분명한 점은 체사레도 아버지처럼 지독한 호색한이고 누이 루크레치아를 향한 사랑이 거의 병적이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체사레가 질투에 불타 그녀의 남편을 비롯해서 성관계를 맺은 남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장면은 모두 실제 사실이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하듯이 근친상간과 정략결혼 그리고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된 보르히아 가문의 몰락을 보면 세상사 허무함을 다시 느끼게 한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황으로 알려진 알렉산데르 6세와 호색한으로 악명 높은 체사레를 달리 보는 시각도 있다. 알렉산데르 6세는 예술을 사랑하여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를 비호하였으며 그 결과 이탈리아에서 초기 르네상스의 꽃을 피우게 하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마치 찬란한 고대 아테네 문화의 성립을 위해 주변국 폴리스로부터의 착취가 기반이 됐듯이 보르히아의 능란한 수완과 카리스마가 서양 근대 예술 발전에 공헌한 것이다. 특히 체사레는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이상적인 군주의 전형이다. 비록 체사레가 누이와 근친상간할 정도로 호색한이지만 그의 이러한 비도덕적인 행실은 지엽적 문제라는 것이다. 오히려 군주에게는 군주의 도덕이 있듯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냉혹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군주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마키아벨리가 종종 인용하는 여우와 사자의 특성을 모두 지닌 인물이 바로 체사레 보르히아에 해당된다고 하니, 결국 인물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의 잣대에 따라 제각각으로 달라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 / 한국성문화콘텐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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