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경 “혼신 다한 노래인생…여한이 없다” ‘내 인생은 나의 것’ 입력 2007-12-07 16:36:13, 수정 2014-05-07 21:31:41 “요즘 방송 활동 때보다 더 바쁘고 일 많아져 가수로서 열심히 살아온 것 결실 맺는 것 같아 감사 사랑하는 남편과 딸 있어 너무 행복하고 어딜 가나 알아보고 ‘챙겨주는’ 이웃들 있어 오히려 미안할 지경 주말에는 항상 가족과 골프 치고 지인들과 만든 ‘예인’ 모임선 불우이웃도 도와 밤무대 일 때문에 더 많이 못 놀아주는 딸에게 미안하지만 하루라도 노래 안하면 감각을 잃어버려 음악의 끈을 놓지 못해 ”
시원한 가창력과 함께 역동적인 모습으로 ‘그대 모습은 장미’를 노래하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여가수 민해경(45·본명 백미경). 가냘픈 외모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카리스마와 에너지를 발산하며 매혹적인 눈빛으로 무대를 압도했던 그의 모습이 20년이 흐른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 외에도 ‘사랑은 이제 그만’ ‘보고 싶은 얼굴’ 등 숱한 히트곡을 낸 그는 이제 한 시대를 풍미한 정상급 스타로 각인돼 대중의 가슴 한 편에 오롯이 남아 있다. 11년 전, 다섯 살 연하의 사업가와 전격 결혼을 발표해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민해경. 그 후로 소식이 잠잠하다가 근래에 ‘열린음악회’와 ‘7080콘서트’ 등 방송무대에 간혹 나와 노래하는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났다. 진한 회색 원피스에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하고 다소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약속장소에 나타난 그가 왠지 차갑게 느껴졌다. 무대를 통해서만 봐왔던 그의 카리스마가 일상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걸까. 아니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귀찮아서일까. 그에게 더 이상의 아쉬울 것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런 오해도 잠시뿐.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그에 대한 인상은 반전으로 돌아섰다. “별로 할 얘기가 없는데, 오빠가 자꾸 나오라고 하네요. 예전에 인터뷰를 해보면 제가 한 말이 의도와 다르게 너무 과대포장되고, 하지도 않은 말들이 기사로 나와 마음을 상하게 했어요. 그런 게 싫어서 지금은 인터뷰를 아예 하지 않아요.”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평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던 인터뷰에 대한 불만을 여지없이 털어놓는다. 매니저이자 친오빠인 백성기(52)씨는 공연 외에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이런 동생을 의식한 듯 조심스레 인터뷰 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제가 좀 쌀쌀맞게 보이죠? 언젠가 방송에 출연했는데, 사회를 본 배철수씨가 저한테 ‘건방지게 노래할 수 있는 걸 타고났다. 그런 게 너무 자연스럽고 민해경이니까 어울린다’는 말을 하더군요.” 완벽하고 대담한 성격 탓일까. 남들은(다른 가수) 무대에 오를 때마다 긴장된다는데, 그는 여태껏 한 번도 떨어 본 적이 없단다. 남한테 신세지기 싫어해 무슨 일이든 가급적 혼자 해결하는 편이다. 그래서 겉으론 강하게 보이지만, 속내는 부드러운 여자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에 그는 “방송활동을 할 때보다 일이 더 많아지고 바쁜 게 신기할 정도”라며 “가수로서 최선을 다하며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게 결실을 거두게 돼 감사할 뿐”이라고 답했다. 그는 서울 인근의 야간업소 출연과 행사 등으로 하루가 무척 바쁘다. 가끔 최명길, 김보미, 김진아 등 드라마 ‘명성황후’ 팀 연기자들과 함께 만든 ‘예인’ 모임에도 나가 식사를 하며 불우이웃도 돕는다. 평상시에는 집안에 일하는 아줌마를 두고 있지만, 이른 아침부터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등교시키고 사업가인 남편 출근을 챙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건강을 위해 오전 9시쯤 S호텔 피트니스센터로 향한다. 오후에는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학원에 보내고 집에 있을 땐 옆에서 숙제도 도와준다. 저녁 늦은 무렵 나이트클럽 출연시간에 맞춰 집을 나선다. “딸이 어렸을 땐 몰랐는데, 점점 크니까 밤무대 일을 그만두라고 해요. 저녁엔 혼자 심심하니까 엄마랑 같이 있었으면 한다니까요.” 그는 방과 후에는 되도록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엄마로서 저녁 늦게까지 놀아주지 못하는 딸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에 당장 밤무대 일을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인터뷰 중에 딸 아이가 요즘 치과에 다니는데 잠깐 다녀와도 괜찮겠느냐며 양해를 구했다. 10분쯤 지나 레스토랑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병원에 잘 갔다왔다”며 “원장님이 가수라고 치료비를 받지 않아 미안해 죽을 지경”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백화점이나 시장에 가서 뭐 좀 사려고 하면 ‘가수 민해경’ 왔다며 증정품도 앞다퉈 주고 물건값도 많이 깎아 줘요.” 스타로 인정해주는 흐뭇함에다 세상사는 이점까지 많다는 그는 가수활동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 주었다. “‘논개’ 부른 가수 이동기씨 아시죠? 한번은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위반으로 걸려 딱지를 끊게 되자 경찰관에게 가수라며 봐달라고 했나 봐요. 경찰관이 얼굴을 모른다며 히트곡이 뭐냐, 노래를 직접 불러 보라고 했더니 이동기씨가 차 밖으로 나와 오른손을 아래위로 흔들면서 ‘몸 바쳐서, 몸바쳐서’만 계속 불렀다는 일화가 있었대요.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웃기죠. 호호호.” 그는 얘기 중에도 계속 휴대전화로 눈길을 돌리며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다. “연애한 지 10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한 남편과 아직도 신혼처럼 지내고 있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남편이 애정의 표시로 하트 모양 문자를 100개나 보내왔다”고 부부 금실을 은근히 자랑한다. “주말에는 항상 가족과 골프를 치러 가요.” 딸이 골프를 할 줄 아느냐고 묻자 그는 “저보다 야드가 더 나간다”며 운동실력을 뽐냈다. 그는 “노래만큼은 정말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여한도, 후회도 없다”면서 “노래를 안 하면 금세 음을 잊어버려 손을 놓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글 추영준, 사진 김창길 기자 yjchoo@segye,com >>그녀는 민해경은 1962년 서울 구로구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가정형편은 그리 넉넉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 고전무용과 가야금을 배우며 자랐다. 중학교까지 일반 학교를 다니다 국악 전공을 위해 국악예술고에 진학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대중가요 가창력도 남달랐다. 고2 때 곽규석이 사회를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에 학생 신분을 감추고 참가해 대상을 차지할 정도로 노래 실력은 뛰어났다. 나이를 속이고 출전한 게 뒤늦게 들통 나 당시 상은 받지 못했다. 그는 고교 졸업 후에도 가수가 되겠다며 청계천에 있는 아마존 극장식 클럽에서 노래했다. 함께 출연했던 가수 박경애(2004년 작고)의 권유로 프로덕션 ‘패밀리’에 소속돼 1980년 ‘누구의 노래일까’라는 곡으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다. 그해 발표한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3개월 만에 TBC방송국의 신인가수왕 자리에 올려놓았다. 당시 인기 가수였던 노사연을 위협할 정도로 이 노래의 반응은 대단했다. 2년 후 김현준과 부른 듀엣곡 ‘내 인생은 나의 것’으로 가요톱텐 연속 4주 1위에 오르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 무렵 돌연 ‘금지곡’ 판정을 받아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이 노래가 방송을 타면서 아이들이 “자기 인생이 있다”며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청소년들에게 반발감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금지당지했다. 그는 1983년 무대를 일본으로 옮겨 활동하다가 3년 만에 돌어와 ‘사랑은 이제 그만’ ‘미니 스커트’ ‘그대 모습은 장미’ ‘보고 싶은 얼굴’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등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냈다. 허스키하면서도 시원한 목소리와 매혹적인 눈빛으로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는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1990년대에는 ‘블랙 타이거즈’라는 4명의 백댄서와 함께 무대에 올라 섹시댄스가수의 면모를 보여줬다. 전성기 시절에는 말레이시아 ABU국제가요제(90년)에 출전해 대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한때 미사리 카페촌에서 활동했던 그는 200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밤업소 출연과 행사 등으로 요즘 바쁘게 보내고 있다. 1996년에는 다섯 살 연하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딸 이유빈(10·초등4)과 함께 강남에서 살고 있다. 민해경의 언니(48)와 남동생도 현역 가수로 활동 중이다. 추영준 기자 yjchoo@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