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선의 세계오지기행]〈8>티베트 마나사로바호수 성스러운 호수여… 번뇌 씻게하소서 입력 2007-11-09 13:26:00, 수정 2007-11-09 13:26:00 한번 돌면 한 생애에 지은 죄가 소멸된다고 전해오는 힌두교 최대 성지 해발 4500여m에 위치 온통 땅에 엎드리는 오체투지의 순례자들 줄이어
티베트 서쪽 고원 카일라스산 남쪽 자락에 성스러운 하늘 호수, 마나사로바가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 호수를 ‘마팜유초(Mapham Yutso)’라 부른다. 초는 호수라는 뜻이고, 마팜은 누구에게도 정복당하지 않는 존엄한 존재라는 뜻이다. 티베트 전통 종교인 뵌교에서는 카일라스산을 아버지로, 마나사로바 호수를 어머니로 여긴다.
 내가 이 신비한 호수를 알게 된 것은 티베트 카일라스산 여행 때였다. 라싸에서 알게 된 몇몇 여행자와 함께 차를 빌려 그 산으로 떠났다. 카일라스로 가는 길은 해발고도가 5000m 가까이 됐고, 아주 험해 자동차로도 나흘이나 걸렸다. 푸석푸석한 길은 계속 무너져 내렸고 강물은 넘쳐 길을 막았다. 사막 길에서는 자동차가 수시로 모래에 빠져 발목을 잡았다. 우리 차를 몰던 티베트인 타시는 아주 유능한 운전사였다. 길에 빠져 있는 차를 만나면 차를 꺼내 함께 떠났고, 고장난 차가 서 있으면 차를 고쳐 출발시켰다. 티베트고원에서는 타시가 모는 차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인도 순례자가 타고 온 차가 계속 말썽을 일으켜 번번이 타시의 도움을 받았다. 인도 순례자는 아예 우리 차와 함께 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동행이 되었다. 인도의 대부호라는 그는 아내와 함께 성스러운 호수 마나사로바를 향해 순례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이 호수는 내게 각인되었다. 그의 행렬은 호사스러웠다. 우리와는 달리 그는 아예 트럭 한 대에다 온갖 야영 장비와 부식을 싣고 다녔다. 차가 서면 티 테이블을 설치하고 요리사는 휴양지 호텔 테라스처럼 테이블보를 깔고 차를 끓여 내왔다. 이 인도인 곁으로 티베트 순례자들은 온몸을 땅에 엎드리는 오체투지의 기도를 하며 순례의 길을 갔다. 카일라스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모습은 이같이 각양각색이었다. 그는 인도 내 대부분의 성지는 순례를 다했고, 이제 마지막으로 힌두 최대의 성지인 마나사로바 호수와 카일라스산을 순례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다며 아주 행복해했다. 그가 들려 준 호수 신화는 이러했다. “먼 옛날 열두 명의 고행자들이 명상과 기도를 위해 티베트고원까지 왔다. 그러나 고원에는 그들 고유의 세정식을 할 만한 곳이 없었다. 그들은 신성의식을 다 할 수 있도록 브라흐마께 기도했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거울과 같은 마나사로바 호수가 창조됐다. 호수의 중앙에는 시바의 상징인 황금 남근상이 솟아올랐다.” 성스러운 호수 마나사로바에 왔다. 호숫가에 있는 추쿠 사원 옥상에 올라 호수를 바라보았다. 남쪽에는 7000m가 넘는 구를라만하타산이 그 자락을 호수에 담그고 있고, 북쪽에는 호수에 솟은 시바의 남근이 옮겨 가 변했다는 카일라스 봉우리가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두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거대한 산정호수 마나사로바에 흘러든다. 이 호수의 수면은 해발 4588m다. 힌두교에서는 카일라스 봉우리를 시바신의 성스러운 남근으로 여기고, 이 호수는 거대한 연화지(蓮花池), 즉 여성을 상징한다. 카일라스와 연화지의 사랑, 자연이 만들어 낸 에로스한 공간이다.
 | ◇카일라스 가는 길에 만난 티베트 유목민. | 이 호수에는 네 줄기 강의 발원지가 있다. 강의 발원지에는 각각 말, 사자, 코끼리, 공작을 닮은 천구(泉口)가 있다고 한다. 마첸허는 티베트의 젖줄인 얄루창포강이다. 이 강은 티베트을 적시고 네팔로 넘어가면 브라마푸트라로 이름이 바뀐다. 스첸허는 라다크 지방을 지나 아라비아해로 흘러드는데, 이 강이 그 유명한 인더스강이다. 쿵초허는 네팔로 넘어가 카르날리강이 되고, 인도로 넘어가면 갠지스강이 된다. 인도인 정신의 상징인 갠지스가 발원하므로 이 호수는 곧 갠지스의 어머니인 것이다. 시바신이 살고 있는 카일라스산과 마나사로바 호수에서 흘러나온 갠지스를 성스럽게 여기는 것이 인도인들에게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힌두교도들은 갠지스에서 몸을 씻으면 모든 죄를 씻을 수 있으며, 죽은 자의 뼈를 강에다 뿌리면 극락왕생한다고 믿는다. 갠지스는 간디의 화장한 유해가 뿌려진 곳이기도 하다. 마나사로바 호수 곁에는 락사스 호수가 있다. 그러나 그 호수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고 한다. 티베트 운전사 타시는 락사스 호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외로운 영혼이 모여드는 호수이니 그 호수를 오래 쳐다보지 마라. 호수가 당신을 호숫가에 붙잡아 둘지도 모른다.” 얼마나 외로움에 지쳤으면 사람들의 발목을 잡아두려 하는가, 나는 오랫동안 그 외로운 락사스 호수를 바라보았다. 한낮의 마나사로바 호수는 바람 한점 없이 잔잔하다. 호숫가를 따라 걸어 보았다. 호수는 바다처럼 넓었다. 이 부근에서 조개 화석들이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티베트 고원이 바다였을 고대의 시간을 생각해 본다. 내 살아 온 짧은 시간들이 순간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는 또 다른 시간들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말을 타고 호수 둘레를 돌던 순례자들이 차가운 호수에 몸을 적신다. 순례자들은 호수의 물을 마시고 그 물에 몸을 씻는다. 호수의 둘레는 100㎞ 정도이며, 한 번 도는 데 사흘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한 번 돌면 한 생에 지은 죄가 소멸된다고 한다. 그들은 이 호수에 몸을 씻음으로써 죄의 짐을 벗고 탄생의 순간과 마찬가지로 손상되지 않은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나도 용기를 내 호수에 몸을 담가 보았다. 수정같이 차갑고 맑은 기운이 온몸을 정화시켰다. 성스러운 호수, 만년설 봉우리, 저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진정한 순례자가 되어 있었다. 여행작가 ≫여행정보 티베트 라싸∼아리 간 로컬버스가 있다. 이 버스는 여름이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다니지만 시간표가 일정치 않다. 여행자들 대부분은 라싸에서 차를 빌려 카일라스로 향한다. 지프로 3∼4일 걸린다. 눈이 녹는 3월 이후에야 통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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